자연 거스르지 않는 300년 농사장월천 동막통한 농업용수 사용 등 치수 발달남원 양씨는 아직까지도 여러 세대가 모여 살면서 각 종 개발로 해체된 집성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300년 가량 송산동 일대에서 거주해온 남원 양씨는 넉넉한 인심으로 주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온 양주식씨부터 제2의 박세리, 호주의 미셸 위로 불리는 골퍼 양희영 선수를 배출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고양신문은 고양시씨족협의회와 함께 집성촌들을 찾아 그들의 삶의 모습과 조상들의 모습을 엿보고자 한다. 고양신문과 고양시씨족협의회의 조사가 완료되는 순서에 따라 지난 21일 남원 양씨를 찾았다. <편집자>사라지는 씨족마을에 대한 기록 ⑧ - 남원 양씨 황주공파 집성촌 송산동취재·조사 | 박기범 기자, 고양시 씨족협의회도움말|남원 양씨 황주공파 고양시 종친회 사진글1. 메인 - 남원 양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송산동 일대의 모습2. 사진2 - 송산동 일대에서 300년 이상을 살아온 남원 양씨의 양재문, 강은숙, 양재찬 회장(좌로부터)3. 사진3 - 남원 양씨 황주공파 사람들이 고양신문과 고양시씨족협의회를 만나 그 동안 송산동 일대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있다.익풍공, 김포에서 고양으로 오면서 정착남원 양씨의 시원은 양을나이며 중조 양우량은 양탕의 후손으로 757년 신라경덕왕 때 큰 공을 세워 남원백에 봉해지면서 남원으로 득관하게 된다. 그리고 양능양(병부공), 양능공(예성군), 양성준(청주파), 양수정(대방군), 양주운(용성군), 양윤위(장영군)을 각각 파조로 하여 대를 이어가고 있다.남원 양씨 세손 13세손인 문양공의 후손이 중심을 이룬 문양공 후손 황주공씨의 후손 중 19세인 응태공의 13세 종손인 양승무의 11대조 대에 이르러 11대조인 익풍공이 김포시 금곡동으로부터 한수이북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으로 정착지를 정하고 농업에 종사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후손 중 일부는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또 일부는 고양시 일산 및 탄현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조상의 묘소는 13대 종손인 양승무의 12대조 이전은 김포시와 성남시에 위치하며 음력 10월에 시향을 모시고 있다. 또한 11대조 이후에는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교하 신도시로 인해 연천군 백학면으로 2007년 이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노루뫼 마을은 1935년 경 남원 양씨 17가구, 경주 김씨 4가구, 전주 이씨 4가구, 밀양 박씨3가구, 달성 서씨 2가구, 온양 방씨 2가구, 남양 홍씨 1가구, 여씨 1가구 등 31가구가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이중에서 남원 양씨는 1700년대 경에 송산동에 들어오면서 300백년 이상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남원 양씨에 송산동 정착과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온다. 남원 양씨는 본래 김포에 살고 있었는데 300년 전 떠꺼머리 총각 하나가 김포에서 헤엄쳐서 이 곳으로 오게 된다. 목이 말랐던 이 총각은 우물을 찾아 물을 마시려 하니 마침 물을 긷고 있던 처녀가 물을 떠주었는데 그 처녀와 결혼해 이 곳에 정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 다스리며 농업 발전과거 이 지역은 생계가 빈약해 초장갓이 25%나 되고 천둥마지며 건파로 농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영찬 고양시씨족협의회 수석부회장은 “이 지역은 비가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었다. 지대가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금방 침수가 되고 비가 안 올 때는 너무 가물어 힘들게 농사를 지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양재문씨는 “비가 얼마나 많이 오는지 보리를 마당에 쌓아놓고 잤는데 밤새 비가 내려 다 휩쓸려 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나 농사는 생계를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남원 양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물을 다스리는 치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발전시키게 된다. 마을의 앞에는 ‘샛강’이라 불리는 하천이 있었다. 이 하천으로 폭이 20미터, 깊이가 3미터 가량돼 연평도에서 나룻배가 들어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나룻배에 발동기를 싣고 다니면서 농지에 물을 공급했다. 양재걸씨는 “봄부터 완둑을 막고 양쪽에 화리를 막아서 대사리까지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재찬 종친회장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이 아니면 비가 제때에 오는 수밖에 없었다. 전체 마을의 20%는 조수로 농사를 해결하고 80%는 건파재배 영농을 했다”고 말했다.이 때문에 남원 양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벼와 더불어 피를 많이 심었다. 조와 콩 등 다른 작물들은 비가 많이 오면 죽어버리기 일쑤였으나 피는 물 속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이 곳 환경에서 잘 견딜 수 있었다.농사를 위해 조수물 동막이 등의 치수작업에는 양주식 할아버지의 노력이 컸다. 양주식 할아버지는 인정이 많아 길을 가던 나그네에게도 음식을 나눠주고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또 끼니때가 되면 산으로 올라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집에는 곡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그의 이런 인품은 마을은 물론 구파발, 무악재 고개 너머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 양주식 할아버지가 산에 올라서 치수 작업을 하자고 소리를 치면 마을 사람들 40∼50명이 몰려와 함께 작업을 했다. 양주식 할아버지는 또 배를 만들어 물건을 싣고 팔러 다니기도 했다. 배가 완성되면 통나무를 배밑에 깔아 배를 큰 물가까지 끌고 나간 뒤 진수식을 갖기도 했다. 양재찬 종친회장은 “양주식 할아버지가 배를 만드는 모습을 어려서 직접 본 일이 있다. 배를 띄우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무사고를 빌며 진수식을 했다. 진수식은 그야말로 마을 잔치였다”고 설명했다.또한 송산동 일대에는 남원 양씨 이외에도 이씨, 박씨 등이 모여서 살다보니 서로간의 묘한 경쟁의식이 있었다. 남원 양씨가 종친회 일에 쓰려고 기금 마련 차원에서 쌀을 모으면 다른 성씨들도 이것을 보고 비슷한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다.면장 등 재직하며 마을발전 힘써남원 양씨는 마을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1946년에는 당시 송포면장이던 양창환씨가 덕이동 경의선 철도부터 구산동 노루뫼까지 6킬로미터의 거리를 폭 5미터로 확장해 주민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1970년 송포면장이던 양재찬씨는 구산동 노루뫼와 구산동 향정마을까지의 굴곡된 길을 폭 4미터, 길이 1.2킬로미터로 확장했고 덕이리 자방동 둑길을 폭 4미터, 길이 300미터로 확장해 지역 주민들의 농사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는 또 국민회의 대의원에 당선된 뒤 1973년에는 농어촌 전화사업 등을 펼쳐 노루뫼, 장월, 뫼뿌리, 탑골 등 6개 마을 210여 세대에 전기가 공급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남원 양씨는 1979년대에 종친회를 구성하고 자금조성을 위해 쌀 한가마씩을 출자해 현재 총 자금 백미 34가마를 모으고 있다. 또한 2005년 6월에는 종친회 임원을 개편했으며 매년 8월에 친목과 단합을 위한 대회를 갖고 있다. 종친회는 이 밖에도 종친묘지를 건설을 추진 중에 있다.또한 ‘제2의 박세리’ , ‘호주의 미셸 위’라고 불리는 골프의 양희영 선수가 송산동 남원 양씨 출신이다. 양희영 선수는 6월에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독일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지난 12일에는 유럽투어 스칸디나비안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직접 제작한 현수막을 내걸며 제 일처럼 기뻐하고 있다. 종친회에서는 양희영 선수가 크게 성장해 가문은 물론 고양시를 빛내는 인물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남원 양씨는 다른 곳과 달리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지금도 28가구 정도가 모여 살면서 집성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화동 등 인근 자연마을이 도시화로 개발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한다.양재문씨는 “아파트가 생기고 개발이 되면 남원 양씨 집성촌도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아파트에서 못 살 것 같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농사를 잃어버린 다른 지역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다 함께 농사를 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함께 모여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했는데 이제는 각자 알아서 자장면이나 시켜 먹는 풍경이 일상화 됐다며 안타까워했다.양재찬 종친회장은 “아파트가 개발되더라도 집성촌은 한 아파트에 모여 살자는 이야기도 우리끼리 해보고는 한다. 우리 남원 양씨 황주공파 고양시 종친회는 앞으로 더욱 친목하고 선조를 모시며 단합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