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글 - 장애인고양시뇌병변장애인부모모임의 엄마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의를 갖고 지역 내 장애학교와 주간보호센터 설립의 조기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강재경씨는 남편과 각 방을 쓰고 17살의 아들과 한 방에서 잔다. 가정 불화 때문이 아니다. 아들이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잠을 자면서 뒤척이고 싶어도 엄마의 도움 없이는 이 조차도 힘들다.뇌병변 장애를 앓는 사람들은 예민한 성격 때문에 옆집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 한다. 그래서 집안 식구들은 새벽에 화장실도 가지 않는다. 변기의 물을 내리는 소리에 아들이 잠을 깨기 때문이다.아침 6시가 되면 강재경씨도 다른 주부들처럼 아침을 준비하고 남편의 출근 준비를 돕는다. 그리고 아들의 학교 갈 준비를 도와야 한다. 음식물을 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밥과 음식을 잘게 다져서 먹기 편하도록 만든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한 팔로 안고 젖먹이 아이처럼 밥을 먹인다. 그리고는 씻기고 옷을 입힌다. 아들의 아침 준비를 마치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팔이 저릴 정도로 얼얼해 늘 파스가 붙어있다. 17살짜리 사내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인다는 것이 주부인 재경씨 혼자의 힘으로는 벅차다.아들의 아침 준비를 마치고서야 재경씨의 아침 준비가 시작된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서의 1교시가 아침 9시인데 이렇게 아침 준비를 마치면 8시 30분쯤 된다. 이 학교의 아이들은 같은 이유로 1교시에 늦는 아이들이 많다.학교에 도착해서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면 재경씨는 특별실로 향한다. 그 곳에는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아이들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함께 모여 있다. 아이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시간 동안 재경씨를 비롯한 엄마들은 은행에 가거나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점심 시간이 되면 교내 식당에 모여서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다지고 밥을 먹인다. 그리고 다시 오후 내내 아이들이 끝나기를 기다린다.수업이 끝난 후에 재경씨와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이나 복지시설 등에서 치료를 받으러 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어느 덧 저녁 6시다. 하지만 재경씨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살림을 마치면 밤 11시가 넘는다. 남편이나 다른 비장애 가족들에게 아내로서 엄마로서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에게 하루종일 붙어있어야 하는 재경씨의 고충도 누구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강재경씨는 “멀리 서울까지 이렇게 몇 년째 다니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에 우리 아들 같은 장애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하루 빨리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윤혜숙씨는 분당에서 거주하다가 몇 년 전에 고양시 탄현동으로 이주했다. 이유는 탄현동에 소재하고 있는 홀트장애인학교 때문이었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자녀가 그 곳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그러나 윤씨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홀트에서는 부모가 없거나 의탁할 곳이 없는 장애인들을 우선적으로 수용한다며 이용요청을 거부했다. 윤씨는 또 집 근처에 있는 한 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서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이 곳은 당초에 10명의 정원을 기준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다른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던 윤씨는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면 이 센터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이 주간보호센터에 문의하자 그 사이 정원이 5명으로 줄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면만 돌아왔다. 윤씨는 애초의 정원이 왜 축소됐냐며 항의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10년을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를 이용하며 고생해왔지만 그 고생은 되풀이 될 처지에 놓여있다.주효언씨 역시 서울에 있는 특수학교에 뇌병변 아이를 보내고 있다. 어느 날 비장애 자녀가 학교에서 행사가 있다며 엄마가 학교에 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주씨는 고민 끝에 장문의 편지를 써서 아이 편에 담임에게 보냈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가 있어 학교에 가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쓰면서도 주씨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주씨를 비롯한 이 곳의 엄마들은 비장애 자녀를 돌보지 못하다보니 아이를 학원에 많이 보낸다. 서울에서 집으로 도착할 시간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이렇게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엄마들 20명이 지난 해 12월 함께 손을 잡았다. ‘고양시뇌병변장애인부모모임’을 만들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이들은 모두 고양시민들이지만 고양시에 뇌병변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학교나 기관이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의 현재 가장 큰 바램은 고양시에 뇌병변 장애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특수 학교나 주간보호센터가 마련되는 것이다. 지적 장애인이나 정서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은 많지만 뇌병변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학교나 시설은 부족해 또 한 번의 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부모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황미경씨는 “우리 아이들이 지역에서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 학교나 주간보호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힘을 모으기로 했다”고 말했다.고양시뇌병변장애인부모모임의 엄마들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주부들이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내던질 수 있는 우리네 엄마들이다. 단지 자녀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희생하고 벽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이다.고양시에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나 기관이 있다. 그러나 뇌병변 장애인들은 이런 곳조차 마음대로 이용 할 수 없다.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지적 ·정서 장애인과 달리 뇌병변 장애인들은 타인의 도움이 있어야 이동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이 뇌병변부모모임의 자녀들은 장애 정도가 1∼2급으로 심한 정도가 많아 커다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이동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존의 장애인 관련 시설이나 기관에서는 뇌병변 장애인들이 이용신청을 해오면 예산이나 인력 부족을 이유로 이용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엄마들은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보낼 곳이 없자 서울에 있는 특수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곳은 서울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엄마들은 주소를 서울로 옮기고 아이를 입학시킨 뒤 다시 주소를 고양시로 옮기는 편법까지 감수하고 있다.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양시 인근에서는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없는 실정이다.같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적 장애인이나 정서 장애인들과 달리 지역 내에서 제대로 이용 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서비스가 부족하자 엄마들은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차별’이라며 시정에 대한 불만이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다.황미경 대표는 “지금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장애인들 중에서도 소외 받고 있는 뇌병변 지체 중복장애인들을 위한 특수학교와 주간보호센터 설립이 시급한 이유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애아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