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교회·지연암도 이주…70여 가구 남아
고양삼송지구 506만8759㎡에 있는 원주민들의 가옥수는 2300여호 정도였다. 이를 포함하여 무허가 건축, 비닐하우스, 공장 등 지장물 조사의 대상이 되었던 가구수를 다 합치면 6500여호에 이르렀다. 이중 현재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가구 수는 70여가구 정도다. 98%이상이 모두 떠난 상황이다. 이제 곧 철거가 집행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떠나야만 할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떠나지 못하거나 마지못해 떠나는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오금동 무허가비닐하우스에서 15년간 의류공장을 운영하던 강정순씨(52세)는 현재 고양시를 돌며 돼지풀을 뽑는 희망근로 작업으로 하루 번 돈 3만5000원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강씨는 무허가 공장이라는 이유로 상가부지는커녕 영업손실보상도 받지 못했다. 지장물 보상비만 받고는 공장 기자재를 옮겨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가 없다. 강씨는 현재 병든 아들, 시동생과 함께 3식구가 살고 있다. 강씨는 한 때 평화시장에 의류를 납품해오면서도 틈이 나면 공장을 합법한 영업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허사였다고 한다. 강씨는 “15년 동안 공장을 가동하며 한때는 5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였는데 점점 기울더니 이제는 공장 안에 있는 기계를 다 버리고 갈 처지에 놓였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덕양구 오금동 321-7번지에 위치한 한길교회는 마지못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경우다. 한길교회는 김영두 목사가 2년간의 필리핀 선교활동을 마치고 1992년 귀국한 뒤 필리핀과 가나 국적 외국인노동자 4명을 신도로 받아들이면서 출발해 이후 전국 각지의 외국 노동자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던 곳이다. 한길교회에 모여든 신자가 한때는 4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외국인노동자들의 사랑방’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몸이 아픈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면서 가나정부로부터 1999년 일본주재 가나대사의 방문을 통해 감사 메시지를 전해 받은 바 있다.

한길교회 김영두 목사(65세)는“한길교회가 여기에 들어선 이후 주위의 오금동 주민들의 민원이 많았지만 그래도 버텼는데 이제는 떠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토지공사측은 “한길교회는 무허가구조물인 비닐하우스에서 종교활동을 하고 있어 공사규정상 종교용지특별공급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행정대집행을 위한 수차례의 계고장을 한길교회에 보냈다. 김 목사는 현재 관산동의 마굿간을 개조한 공장을 임대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 목사는 “정식 건물은 비싸서 못 얻고 1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공장을 임대해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흥동 가시골에 위치해 있으며 일명 선녀보살로 알려진 민호정씨가 거주하는 지연암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연암은 점집이기도 하지만 도당굿 등 마을사람들과 함께 굿을 보는 장소로 마을사람들에게 유명해졌다. 그러나 지연암이 무허가건물이고 민호정씨가 지연암이 위치한 땅의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실지로 보상으로 받은 것은 지장물 보상이 전부다. 선녀보살의 신딸이라는 여성(44세)은 “지장물 보상으로 받은 돈으로는 어디가서 반쪽자리 집도 못얻는다”며 서러워했다. 문제는 영업보상이다. 법령에 의하면 허가나 인가, 신고 등이 필요한 경우 이를 이행하고 일정한 장소에서 영업에 필요한 관련시설을 갖추고 허가받은 사항대로 영업하고 있는 경우에 한해 영업보상이 이뤄진다고 규정한다.

지연암은 한양컨트리클럽 골프장 입구로 옮겨갈 계획이다. 신딸은 “지금 옮겨가려는 곳은 컨테이너 3개를 이용해 새로 집을 지어야 하고 또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며 “추석이후 며칠동안만이라도 여유를 줘도 되는데 주공은 계고장으로 계속 엄포를 놓는다”고 말했다. 그는 “100억원의 보상을 받고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다. 개발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하늘과 땅처럼 벌려놨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