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설이 가진 의미를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설에 대해 설명된 옛 문헌인『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경도잡지(京都雜誌)』등엔 “설날 아침에 지내는 제례(祭禮)를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세배를 올린다.”, “떡국을 끓여 먹는다.”, “재액(災厄)을 막는 민속행사를 한다”는 등의 단편적인 내용만 적혀있고 왜 ‘설’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오직 ‘민속 행사로 신수점보기, 윷놀이, 호랑이 그림 붙이기, 연날리기 등이 있는데 이런 행사들은 주로 기복(祈福)과 기원(祈願) 및 벽사의 뜻이담겨 있다.’는 정보를 추가로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위 문헌대로라면 당연히 ‘정조(正朝)’나 ‘원단(元旦)’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게 부르지 않고 왜 설이라고 부를까?필자는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보게 되었다. 해가 새로돋는다는 의미의 새해는 그 의미대로라면 동지(冬至)에해당하는데, 역법을 새로 정하면서 생긴 것이 바로 ‘정조(正朝)’이다.
본지에 이미 게재한 <자연계의 새해 동지>에서 이미밝혔듯이 역대 중국의 천자들은 나라를 열면 통치력(統治曆)을 새로 제정하였다.
하(夏) 상(商) 주(周)의 역법이 대표적이고, 이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이 가운데 하나를 사용했는데, 조선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은 정조(正朝)에는 공식 업무만 행하고 하례(賀禮)를 집전하지않았다. 새해맞이 차례는 동지에 이미 지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조선 왕실은 민간에서 정조에 차례를 지내는 설 풍속과는 조금 달랐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바로 공식 업무 개시라는 이 점이 필자의 생각을 붙들어 맸다. 바로 설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설’이란 ‘설립[立]’에서의 ‘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곧 ‘립(立)’은 ‘세운다’는 뜻으로 ‘역법을 새로 세우다’의 ‘설’이고,‘계획을 새로 세우다’의 ‘설’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설이 립(立)-세우다-의 개념에서 파생된 이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구정(舊正)은 그 의미를 이미 거의 상실한 상황이라는데 있다.
새해의 업무계획을 세워 시작하는 것을 설의 의미로본다면 이미 이런 의미는 신정(新正)이 차지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나 남아 있는 의미는 동짓날 하늘에 지내던 제인 새해맞이 기원제-차례(茶禮)-를 지내는 것인데, 차례를 새해맞이 기원제로 인식하지 않고조상제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 의미 또한크게 왜곡된 실정이다.
설에 생명을 불어 넣는 방법은 없을까?설을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일년 계획을 세우고 우의를 다지는 날로 삼고 차례를 본래의 의미인 새해맞이기원제로 지내면 어떨까.
새해맞이 기원제는 하늘과 땅에 지내는 기원제이기때문에 위패를 낼 필요가 없어 종교적 갈등도 생기지않게 될 것이다. 또한 상차림도 차와 과일만 올리는 「주자가례」의 차례상을 표준으로 삼는다면 음식 장만에허리가 휠 필요도 없고 남녀가나란히 차례에 참석하여 화기애애한 차례를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기원문-축문-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작성한다면 차례의 의미가 한층 더 깊어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