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행정의 대원칙은 ‘수혜자들이 혜택을 받으면서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천에 이어 고양시에서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수급자, 차상위, 한부모, 조손 가정의 아동? 청소년에게 급식제공 전자카드를 사용하라고 시에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 급식카드네. 너 수급권자냐?’ 급식전자카드는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일입니다. 이 제도는 아동?학부모의 인권을 침해합니다.

지역아동센터는 일반 급식소와는 달리 가정적 분위기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 이용 후 자연스럽게 급식을 제공함으로서 낙인감 심화나, 식권의 훼손, 분실에 따른 불안정한 급식지원 등의 문제를 해결해왔습니다. 급식전자카드제는 아동들이 자신을 빈곤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부정적인 자기정체감과 낙인감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난 이제 평생 일 안 해도 걱정 없어요. 이 카드만 있으면 굶지 않을 테니까요.” 급식전자카드를 받아든 아이가 지역아동센터에 와서 한 이야기랍니다. 소비의식과 무기력감 증대, 이 제도는 제공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급식전자카드제는 가난한 아이들의 생존권인 밥이 카드로 해결할 수 있다는 행정편의주의에서 오는 위험한 발상이며 8살 아이들에게조차 카드를 발급해서 맹목적 소비의 주체로 인식하게 하고, 노동을 안 해도 먹을 수 있다는 무기력감을 증대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카드 안 쓰면, 3500 원은 선생님이 가지시는 거죠?”불신 증대, 이 제도는 지역아동센터 아동과 교사와의 관계를 허뭅니다. 급식전자카드제 시행은 사명감과 헌신으로 일해 온 교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며 하루 시작을 카드 소지 여부에 집중함으로서 아이들과 쌓아왔던 관계를 허무는 결과를 낳습니다.

급식전자카드는 일차적으로 지역아동센터 등 단체 급식소를 제외한 일반 음식점 등을 이용하는 아동들의 종이식권을 대체하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지자체 공무원들과의 업무회의에서 지역아동센터 급식비 횡령에 따른 문제들이 제기되어 지역아동센터를 포함하자는 의견이 개진되어 현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급식비 횡령의 문제는 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의 문제이지 이용 아동? 청소년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들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그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급식전자카드제의 문제는 빈곤 아동의 돌봄 기능을 가지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눈앞에 놓인 몇몇의 현안에만 치중하는 근시안적인 행정편의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5월부터 급식전자카드제를 시행하겠다고 합니다.

서울시에서는 얼마 전 시범사업으로 세 개 구에서 급식전자카드제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두달 후 카드제의 문제점이 속속들이 발견되면서 전 구 도입을 반려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식전자카드제를 시행하겠다는 고양시의 행보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지원은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방임아동에 대한 인권보호 및 생활지도를 포함한 교육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아동의 권리는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하며, 어른들은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복지 대상이라는 이유로 아동의 권리가 빼앗겨져서는 안 됩니다. “수혜자들이 혜택을 받으면서 수치심이나 굴욕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사회복지행정의 대원칙”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급식전자카드제 전면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은영/고양시지역아동센터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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