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올레길-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사연이 있는 길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올레걷기 코스는 6코스다. 6코스는 관산동-대자동-고양동-선유동을 지난다. 이곳은 고양시에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기도 하고, 역사의 패자이지만 민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최영장군', ‘소현세자 후손들', ‘신수영(연산군 처남)', ‘귀성군 이준(28세 때 영의정)' 등의 무덤들과 유적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의 주제를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사연'이라고 붙인다.
걷기 시작은 교통이 좋은 통일로 필리핀 참전비에서 시작한다. 참전비 옆 통일갈비 입구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보자. 처음은 매우 가파르지만 조금만 오르면 넓고 편편한 길이 나온다. 이곳은 길도 넓고, 숲도 울창한데도 지나는 이가 거의 없어 아주 호젓하다. 숲에는 진달래와 벚꽃뿐만 만발하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면 문득 거짓말처럼 보랏빛 붓꽃이 피어있다.
숲의 향기를 맡으며 한참을 가다보면 왼편 산기슭에 현대식 건물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이곳이 미타사다. 미타사가 보이면 곧바로 길이 갈라지는데, 왼편 쪽길을 따라 내려가자. 쪽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또 두 갈래 길이 나오고, 여기서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필리핀참전비에서 고양동 넘어가는 길을 만난다. 길을 건너 주황색 지붕의 주택 뒤로 언덕을 올라간다. 이곳에는 여러 무덤이 있는데, 바로 추노의 원손을 비롯한 소현세자의 후손들 무덤이다.
청나라에 만 8년을 볼모로 잡혀가는 등 비극적 삶은 산 소현세자와 강빈, 그들은 또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후손들은 두고두고 역모에 휘말려서 사대부 집안이 그들 집안과 결혼하는 것만으로 처벌을 받기도 할 정도로 철저하게 탄압을 받는다.
이곳에서 계곡을 따라 난 길을 조금 올라가면 최영장군 묘가 있다. 최영장군 묘에 이르는 길은 차량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숲의 나무도 아주 커서 여름에도 시원하다. 최영장군 묘를 끼고 능선을 오르면 대자산 정상까지 진달래가 만발한 능선길이다. 대자산 정상에는 지나는 이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주민들이 나무 사이에 나무를 이어 간이의자를 만들어 놨다. 이곳에서 오른쪽 밑으로 내려가면 밭이 나오고, 조금 더 내려오면 고양향교가 나온다.

향교가 있으니 이곳이 옛 고양군의 행정중심이리라. 조금 더 내려가면 중국 사신이 머물던 벽제관지가 나오고 비석거리가 나온다. 고양동 입구에서 길을 건너면 2층으로 된 산촌비빔국수집이 나온다. 산촌비빔국수집을 끼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동네가 끝나는 지점부터 비포장길인데, 이곳이 중국사신길이다. 예전에 사신들이 오고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사신길을 넘어 조그만 옛 동네를 지나면 왼편으로 큰 무덤이 나온다. 이곳이 연산군의 둘째 처남 신수영의 묘다. 역사의 패자이니 지금은 모두 잊혀진 이름이지만, 역사에서 그들이 지워진 공간은 또 많은 사색과 상상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신수영 묘 앞으로는 벚꽃 가로수가 예쁜 선유동 안길이다. 마을회관 건너편으로 커다란 신도비가 있는데, 중종의 아들인 해안군이 그 주인이다. 해안군의 무덤 뒤에는 조선 500년 동안의 최연소인 28세에 영의정이 된 귀성군 이준의 묘가 있다. 귀성군 또한 잊혀진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이수광, 다산초당)을 읽어본 이는 많이 들어본 느낌을 받을 것이다. 맞다. 이분이 그 책 첫머리를 장식한 연애사건의 주인공이다.
‘…지난밤, 봄비가 내리더니 연못에 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군께서 이 아름다운 연꽃을 보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세조의 후궁이었던 덕중은 24살의 청년 귀성군 이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결국 들통나 덕중은 교수형에 처해진다. 세조가 죽고 성종이 임금이 되었을 때 훈구공신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귀성군 이준도 귀양보내 죽게 한다.
이곳에서 산길을 오르면 선유동 산책길입니다. 듬성듬성 핀 산벚이 좋다면 이 길로 가고, 빽빽한 가로수 벚꽃이 좋다면 선유동 안길을 따라 늘봄농원까지 나온다. 늘봄농원에서 큰길을 건너 곧장 가면 끝에 군부대가 나온다. 여기서 커다란 냇물을 따라 왼편으로 내려가면 용복원 마을이 나온다. 용복원. 용의 배란 뜻이다. 서오릉이 있는 곳이 용의 머리인 용두동, 용의 꼬리는 파주 용미리란다.
용복원에서 약수터 쪽으로 길을 잡자. 비닐하우스가 하나도 없는 돈들이 아늑한 안동네를 지나 약수터 쪽으로 오르면 능선 맨 끝이 매조산 정상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조금 내려오면 아까 만난 미타사가 나오고, 계속 직진하면 처음 출발한 필리핀참전비가 나온다.
한창 봄이다. 어딜 가나 꽃동산이고 봄동산이다. 그래도 봄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시간을 조금 더 내어 이 길을 걸어보자. 자세한 안내는 ‘고양올레길 만드는 사람들(http://cafe.daum.net/gyolle)을 참고하자.
최경순/고양올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