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0% 장애인…‘그들’을 ‘우리’안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장애인의 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09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 12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 수는 224만 7천명이다. 이는 2000년부터 연평균 11.2%씩 꾸준히 증가한 수치로,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장애인을 포함하면 400만명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10%가 장애인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제정하고, 이후 1주일을 장애인 주간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장애인의 날,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 지난 20일은 제30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매년 장애인의 날이 돌아오면 각종 매체에서는 다투어 장애인 관련 내용을 다룬다. 방송에서는 장애인 특집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편성하고, 신문에도 장애인 관련 기사들이 실린다. 이날은 그 어느 때보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있는 날이다. 또 이날 장애인들은 온갖 행사에 손님으로 대접받는다. 각 지자체며 각종 기관에서 개최하는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동원되는가 하면, 고궁이나 놀이공원 나들이 행사, 축하공연 등에 단체로 초대받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장애인들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자신들이 주인공인 진짜 생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날이 아니라 철저히 대상화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에 오래전부터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여전한 보여주기 식의 잔치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고, 날짜도 세계장애인의 날에 맞추어서 바꾸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장애인의 날은 12월 3일 =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세계장애인의 날은 12월 3일이다. 1992년 10월 14일 유엔총회에서 12월 3일을 세계장애인의 날로 매년 준수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는 1982년 12월 3일에 제7차 유엔총회에서 장애이슈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장애인의 통합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식을 증가시키기 위한 UN장애인10년(1983-1992)을 선포하고, 그 실천전략인 ‘장애인에 관한 세계행동계획(World Program of Action Concerning Disabled Persons)’을 채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포되었다.

중요한 것은 유엔으로 하여금 1981년 세계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게 추동하고, 12월 3일을 세계장애인의 날로 만든 동력이 바로 장애인당사자라는 것이다.

1980년을 전후해서 장애인당사자들은 장애 문제가 인권의 문제이며, 지역과 시간을 망라하는 보편의 현상이기 때문에 장애유형을 포괄해서 강력하게 결속할 필요성을 느껴왔다. 이는 장애인들의 권리신장과 인권회복을 위해 장애인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당사자들은 장애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온 유형별 세분화나 서비스의 다양화가 당면한 현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장애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장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장애인당사자이며 장애 유형을 포괄하는 국제연대가 문제해결의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한 장애인당사자들은 국제연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즉 세계장애인의 날은 다른 누군가가 장애인에게 선물로 준 날이 아니고, 바로 장애인당사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인권현실을 바꾸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 일구어낸 의미있는 날이다. 이는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메이데이가 있고, 여성들에게 여성의 날이 생기게 된 배경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것이 국내에 도입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왜곡된다.

재활의 날, 형식적으로 장애인의 날로 탈바꿈 = 4월 20일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1970년 국제재활협회 이사회(테헤란 개최)의 권고에 의거해서 1972년부터 ‘재활의 날’로 정하고 매년 기념 행사를 치러 왔던 날이다. 이날이 장애인의 날로 정착된 것은 1976년 제 31차 유엔총회에서 1981년을 ‘세계장애인의 해’로 선언하고 세계 각국에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장애인의 해 한국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사업을 벌이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로 보건사회부가 4월 20일에 ‘제1회 장애인의 날’ 행사를 주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4월 20일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1982년부터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주관으로 ‘장애인재활대회’라는 명칭 아래 기념식을 개최하였던 것이다.

1991년에 정부가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제?개정하면서, 장애인복지법 제43조의 규정에 ‘국가는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하여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 주간을 설정한다’고 명시함으로써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이 되었다. 1991년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구성된 14개 민간 장애인단체의 모임인 ‘장애인복지단체협의회’ 회원 단체들이 ‘재활의 날’ 전통을 잇기로 결의, 1991년 4월 20일을 ‘제11회 장애인의 날’로 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전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이 아닌, 재활대회가 개최되었던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로 지정된 과정에는 장애인당사자의 참여가 배제되고, 장애인의 권익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장애인을 재활의 대상, 치료의 대상,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문가 그룹과 정부가 손을 잡고 장애인의 날의 정신을 화석화시킨 것이다.

장애인이 주인되는 날로 = 장애인은 장애인의 날 딱 하루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년내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많은 장애인들과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오래전부터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동원되기를 거부하면서 노동권, 교육권, 이동권 확보를 위해 스스로 조직한 집회나 행사를 개최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임시이사회 날이자 재활의 날이 형식적으로 탈바꿈한 4월 20일은 장애인에게 아무 의미도 없고, 역사적 맥락도 없다. 누군가 지정해준 엉뚱한 날에 누군가 대신 차려준 민망한 생일상을 받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오는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에는 장애인들이 직접 주관하고, 전 세계 장애인들과 함께 신명 나는 축제를 벌일 수 있는, 진정으로 장애인이 주인공인 장애인의 생일상이 차려지기를 기대한다.


김지량 기자  editor12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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