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표팀 강민수 선수 부모님 강선구·이혜영씨

▲ 백마중학교 출신 강민수 선수의 어머니 이혜영(사진 왼쪽)씨와 아버지 강성구(사진 오른쪽0)씨는 대표 선발 과정의 마음고생을 전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 대표선발전에서 누구보다 마음 졸이며 천국과 지옥을 오갔을 가족이 있다. 바로 강민수 선수.
서초구에서 태어나 일산신도시가 생기자마자 이곳 고양시에서 자리잡은 이후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국가대표이다. 사정상 2년간 잠시 강릉에서 생활하고 다시 거주지를 정해야 했을 때에도 어디로 가고 싶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당연히 일산”이라고 답했을 정도.

어렸을 때에는 그저 평범한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남의 밭에 고추 파종해놓은 걸 뽑으며 놀기도 하고 또 학생회장에 입후보 할 정도로 친구들한테 인기있는 아이였죠”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축구에 눈을 떴다. 당시 축구부도 없이 활동했던 강 선수의 단번에 알아본 것이 당시 백마중학교 축구부의 한덕수 감독. 덕분에 백마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닮아 큰 키를 자랑했던 강 선수. 아버지 강성구(59)씨는 “70cm짜리 키재기 자를 만들어놨는데 중학교 졸업하기도 전에 못쓰게 됐죠. 그 이후로는 알아서 자라라고 내버려뒀어요”



체격만큼 남다른 실력으로 중학교 2학년부터 주전으로 뛰기 시작하면서 고양고등학교 축구부 창단멤버로 진학했던 강 선수는 이듬 해 강릉금강기에서 준우승하면서부터 스카웃을 위해 관전하고 있던 감독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로 프로 진출한 강 선수는 18세부터 국가대표로 축구선수로서 이상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잘해줄지 몰랐다는 부모님은 강 선수가 축구선수로의 꿈을 확고히 다진 시기를  2002한일 월드컵 확정으로 온 국민이 들떠있었던 1998년으로 예상한다. 어머니 손수 싸주신 김밥을 들고 잠실 축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친선게임마다 관전을 하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 이혜영(51)씨는 “당시에는 아무 말 없었는데 그때 그 경기들을 보면서 진짜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하더라고요”

아버지, 어머니는 강 선수를 그저 ‘고마운 아들’이라고 말한다. 항상 힘들어도 당신들 속상할까봐 힘든 내색도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두 분 역시 절대 먼저 묻지 않는다고. 다만 어쩌다 스포츠 뉴스을 눈 여겨 보다 살짝 지나가는 웃는 모습을 보고 잘 지낸다고 안도한다. 이런 말을 하자 본인은 힘들어서 숨을 크게 쉬는게 웃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고.

이번 대표선발 과정은 강 선수 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힘든 나날이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발탁 될 거라 믿어왔죠. 탈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동안을 울었어요” 어머니 이혜영씨는 그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아버지는 강성구씨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게 바로 축구라는 것을 알았어요. 순간 못하면 탈락이라는 것을. 부디 본인에게도 좋은 공부가 됐길 바랍니다”

그리고 6월 1일, 곽태희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금 출전 기회를 잡게 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휴대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고. “서로 민망해서 연락 못했던 분들이 일제히 축하 전화를 주시더라고요. 충전해놓은 휴대폰이 저녁까지 버티지 못할 정도에요”라며 웃는다. 어머니 이혜영씨는 “탈락 소식을 듣고 계속 몸이 안좋아 어디 아픈건 아닌가 싶었는데 씻은 듯이 다 나았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심 뒤늦게 외로이 타국으로 떠나보낸 아들이 안타까운 것이 부모의 심정이다. “FA컵 우승, 아시안컵, 올림픽에 월드컵 출전까지, 리그 우승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수만명의 축구인들의 꿈을 달성한 것 만큼 욕을 먹어도 좋으니 다치지 말고 잘만 하고 와줬으면 좋겠어요” 라며 간절한 소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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