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대 살아가는 국토를 몸으로 보면, 땅은 근육이고 실개천은 실핏줄, 강은 큰 핏줄입니다. 몸이 건강하려면 핏줄이 몸 구석구석까지 산소와 영양을 고루 실어 날라야 합니다.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면 피가 흐르지 못하고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지고 맙니다. 그러니까 피는 맑아야 하고 혈관에도 이상이 없도록 해야겠죠. 나라 땅도 건강하려면 작은 하천이든 큰 강이든 물이 깨끗해야 하고 물길이 막히거나 좁아들거나 하면 안 됩니다.
강을 깨끗하게 하려면 쓰고 버린 물을 모아 깨끗하게 걸러 내보내야죠. 하수관로를 하수처리장까지 연결해서 더러워진 물을 모아 처리하든지, 각자 정화시설을 갖춰놓고 원칙대로 돌려서 맑게 한 뒤 내보내야 합니다. 시설을 갖추지 않거나, 갖춰놓고도 전기 스위치를 꺼 놓거나 하면 아무 소용이 없죠. 문제는 여전히 눈가림식으로 대충대충 하는 곳이 많다는 겁니다. 돼지나 소, 닭이나 개를 많이 키우는 곳에서도 제대로 배설물을 처리해야 하는데 몰래 땅에 묻거나 하천으로 흘려보내거나 하면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죠. 올봄에 경기도 안성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온 골짜기가 이런 식으로 오염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자기 편한 대로,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환경을 더럽히는 얌체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강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한 법이 여럿 있습니다. 법에 따라 이런 얌체들을 잡아내 따끔하게 벌을 주고 다시는 얌체 짓 못하도록 하면 될 텐데요, 법을 집행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무리 봐도 굼뜨기만 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실 물을 대주는 강, 더위 식혀주는 바람, 아름다운 풍광, 따스한 햇볕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연 환경입니다. 누구든지 이런 자연 환경을 독차지할 수도 없고 망가뜨려서도 안 됩니다. 환경이 망가지면 피해는 모두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환경은 우리가 모두 함께 누리는 것이기에 ‘공유재산’이고, 우리에겐 공유재산인 환경을 동등하게 누리고 살 권리인 ‘환경권’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환경을 소중히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 일이나 공부 때문에 직접 환경을 지키는 일에 나서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맡겼습니다. 공공의 재산인 환경을 잘 부탁한다는 뜻에서 ‘공공신탁’이라고 하죠. 우리가 세금을 내고 시장과 대통령을 뽑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이든 대통령이든 환경을 잘 지켜야 하고 혹시라도 환경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펴려면 시장은 지역 시민들에게, 대통령은 나라 전체 국민들에게 묻고 뜻을 살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강을 살리겠다는데, 방해하지 말라고”, “강이 언제 죽었냐고”합니다.
우리 고장 고양시를 흐르는 공릉천의 아름다운 자연을 시가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원앙이가 떼로 모여들 정도로 생태계가 뛰어난 공릉천을 레저 명소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큰비 오면 물에 휩쓸릴 둔치에 꽃밭을 꾸미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산책로 자전거 길을 만들겠다면서 파헤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4대강 살리기'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4대강에 보를 16개 세우고, 5억7천만㎥의 흙모래를 파내는 일이 중심입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고 강변을 잘 정비해서 국민들에게 녹색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고 정부는 강조합니다. 환경단체와 많은 학자들은 하천 생태계와 경관이 망가지고 강물이 오염돼 ‘하천 죽이기’ 결과를 빚을 것이라며 반대합니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도 다수 국민이 사업에 반대하거나 적어도 신중하게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2012년(이명박 정부 임기 내)까지 사업을 마치겠다고 서두릅니다. 보다 못해 신부님, 수녀님, 스님, 목사님들까지 말리고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성직자들에게 경고하고 나섰군요. 정부가 열 올리는 4대강 사업 홍보는 놔두면서 반대 운동만 문제 삼는 게 선거 심판으로서 공정한 일이냐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공릉천과 4대강은 지금 우리들의 것이면서 우리의 뒤를 이어 이 땅에 살아갈 미래 세대의 것이기도 합니다. 미래 세대의 환경재산을 우리는 잠깐 빌려 쓰고 있을 뿐입니다. 시장과 대통령은 우리와 미래 세대 공동의 환경재산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환경재산이 더러워지고 망가지는 걸 방치하기만 해도 직무유기에 해당되는데, 하물며 청지기들이 주인 뜻을 거역해가며 앞장서서 탕진하고 망가뜨린다면 이건 대체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성경에 ‘정의(正義)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구약 아모스 5:24). 구절 그대로만 새겨 봐도 강은 흐르면서 땅을 고루 적셔줘야 자연의 섭리에 맞고 정의로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흐르는 강을 흐르게 두는 것, 미래세대에게도 흐르는 강을 물려주는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소중한 환경재산인 강을 청지기들이 멋대로 파헤쳐 놀이터로 만들고 흐르는 강물을 가로 막는 것이 옳은지 바로 보고 판단하는 것도 주인의 정의로운 책무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청지기 일 맡겨달라고 우리 앞에 손들고 나섰습니다. 주인의 뜻을 성실하게 받드는 착한 청지기를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주인의 정의로운 책무입니다.
박수택/SBS 논설위원, 고양환경운동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