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옛 역사서에 우리 민족은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부르고 춤추니 이를 무천이라한다.(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라고 적고 있다. 현대식으로 옮기자면가을 추수가 끝나면 큰 축제를 열고 여기서 사람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음식(안주)을 먹으며 각종 문화예술공연을 즐겼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축제는 이렇듯 술과 음식, 문화가 함께 어울려 추수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준 자연에 감사하는 행사였다.
70년대 80년대만 해도 마을축제에서 마시는 술은 의례 막걸리였다. 막걸리는 농사철에 힘을 돋우는 농주(노동주)였으며, 축제 때 함께 즐기는 나눔의 술이고, 일반인들이 값싸고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서민주였다. 막걸리에는 이렇듯 함께 ‘어울림’과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긴 술이다.
막걸리는 고두밥과 누룩, 물을 섞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발효되어 맛을 내는 술이다. 외국의 민속주인 포도주나 맥주가 포도와 호프만이 재료가 되는 반면에 막걸리는 쌀만을 고집하지 않고 밀이나 조, 고구마 등 수없이 다양한 곡물이 사용된다. 막걸리는 와인이나 맥주처럼 특정 재료로 만든 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누룩과 물과 곡물이 어울려 맛을 내는 그 오묘한 작용이 있어 비로소 막걸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된 곡물 외에 약간의 다른 재료가 첨가되면 그 맛과 향이 달라지는 막걸리가 된다. 그래서 잣막걸리, 유자막걸리, 인삼막걸리, 울금막걸리 등 새로운 맛의 막걸리가탄생한다. 막걸리의 재료의 포용성은 그 어떤 술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런 막걸리에 다시 과일 쥬스를 섞으면 요즘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좋아하는 막걸리 칵테일이 된다.
우리는 왠지 어려움을 겪거나 괴로움이 있는 친구를 대하면 “소주 한 잔 하자.”라고 말한다. ‘쓴 소주를 붓는다’는 시 구절에서도 소주의 이런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났거나 축하할 일이 있는 친구
에게는 “우리 막걸리 한 잔 할까?” 하는 말이 쉽게 나온다. 막걸리는 이렇듯 감사와 긍정을 담은 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주로 막걸리를 찾는다.
1970년대 술 판매량의 70%대에 달했던 막걸리가 2004년에 4%대로 사망 직전에까지 갔고 최근 몇 년 전부터 급속한 신장세를 보이며 현재 12%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막걸리가 부활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많은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다. 빈부의 갈등,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 지역 갈등과 종교 갈등, 그리고 단일민족에서 다문화 가정을 포함한 타 민족의 수용 등 숱한 갈등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포용과 어울림, 조화와 융합, 긍정과 감사의 정신은 이런 갈등을 해소할 가장 좋은 치료약이다.
‘대한민국막걸리축제’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인사동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되었다. 지금처럼 막걸리가 잘 나가는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양조장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막걸리의 부활을 꿈꾸며 축제는 시작되었다. 쌀 소비를 늘여 잉여쌀로 고통받는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지금의 막걸리의 부활에는 국민들의 입맛에서 멀어진 막걸리를 가까이 하게 한 ‘대한민국막걸리축제’도 한몫을 했다고 감히 자부한다. 막걸리에 담겨 있는 정신은 바로 우리 시대의 갈등을 치료할 치유제이다. 이제 우리는 막걸리의 부활에서 막걸리 정신의 부활로 나아가야 한다.
2003년에 고양으로 옮겨 온 ‘대한민국 막걸리축제’의 여덟번째 행사가 오는 11월 6일과 7일 양일간 호수공원 입구 일산문화공원에서 열린다. 이 축제의 자리에서 옛 선조 때부터 그랬듯이 감사와 어울림, 조화와 융합의 정신을 담은 음주가무를 즐김으로서 막걸리에 담긴 정신의 부활을 꿈꾸어 보자.
/윤주한 대한민국막걸리축제 위원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