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흔들리는 아파트 위상, 이제는 대안을 고민할 때
‘아파트 도시’ 고양시 재건축, 리모델링 성공 여부가 도시 미래와 직결
아파트 붐이 가라앉고 있다. 아파트가 재산증식을 위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었던 시대가 가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는 점차 낡아가고 있다. 아파트는 감가상각을 안고 가야하며 언젠가 리모델링, 혹은 재건축을 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그러나 리모델링과 재건축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투여되는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이윤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아파트거래시장이 받쳐주어야 한다. 지금 부동산 침체로 봐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심각한 딜라마가 있다.
고양신문 1000호를 맞아 기획특집으로 대표적 주거문화였던 아파트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아파트 시대 이후’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는 것을 시사함과 동시에 미래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아파트 도시 고양시의 숙명
통계청의 2005년 기준‘거처의 종류별 가구분포’자료에 따르면, 전국 총가구수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41.7%로 나타났다. 이 비율을 경기도에 한정하면 49.3%다. 고양시는 무려 61.3%다.
고양시는 아파트 거주 비율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다. 이 비율에서 고양시보다 높은 곳은 용인시(69.1%), 군포시(66.8%), 남양주시(61.7%)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고양시의 16만9439가구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2005년 이후 입주가 시작된 행신2지구, 식사지구, 덕이지구뿐만 아니라 향후 입주가 시작될 삼송지구, 원흥지구 등을 감안하면 아파트 거주 비율이 더 높아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고양시의 아파트 거주 비율이 80%에 육박하며 이는 국내에서 최고로 높은 비율”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말하자면 고양시는 아파트 천국이라 일컬어졌던 대한민국에서도 대표적‘아파트 도시’다.
고양시가 아파트 비율이 높은 도시라는 의미는 이 수많은 고양시의 아파트들이 노후화되었을 때 대형 슬럼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파트 도시인 고양으로서는 이 문제를 숙명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첫입주 아파트 2030년 후 재건축 가능
현재 아파트 노후화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재건축, 리모델링 2가지가 대표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아파트 도시’ 고양시가 아파트의 내구연한이 다 되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일까.
재건축 허용 건축연한은 지어진 시기에 따라 다르다. 재건축은‘경기도 도시 및 주거 환경정비 조례’에 의해 규정되는데, 1983년 12월 31일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지은지 20년이 지나면 재건축이 가능했다. 유영봉 경기도 주택정책과장은 “83년 이전에는 건축 공법이 그 이후에 비해 우수하지 못했고 콘크리트 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재건축 허용을 준공 이후 20년으로 정했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20년으로 정했기 때문에 멀쩡한 집들이 허물어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1984년 1월 1일 이후 지어진 아파트는 정해진 산식에 의해 재건축 허용 연도가 결정된다. 그 산식은 ‘20년 + (준공연도 - 1983) * 2’다.
고양시의 경우 1992년 8월 31일 일산신도시의 강촌마을 768가구가 첫입주를 시작했다. 따라서 강촌마을 92년 준공 아파트의 경우, 이 산식에 대입해보면 ‘‘20년 + (1992 - 1983) * 2 = 38 ’이 된다. 강촌마을 768가구는 준공연도인 1992년으로부터 38년이 지난 2030년에 재건축이 허용된다. 앞으로 20년 후 재건축이 가능한 셈이다.

전용면적 60% 증축도 리모델링?
이러한 재건축 외에 노후화된 아파트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 리모델링이 대두되고 있다. 리모델링은 주택법상 준공 후 15년이 경과된 건축물에 대해 가능하다.
당초 리모델링은 재건축이 경제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노후화된 건물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리모델링이 경제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건축 연한이 안되어 하자가 생겨나는 집에 계속 살아야 하는 경우 리모델링은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리모델링 역시 문제점을 표출하고 있다. 현행 주택법은 리모델링시 일반분양 없이 기존 아파트 전용면적의 30% 내에서 증축이 가능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세대증축이 허용됨으로써 리모델링은 아파트 내부를 수리해 고친다는 원래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낡은 배관시설, 난방시설을 교체하는 수준을 넘어 세대증축뿐만 아니라 단지전체가 전면개조에 가까운 변신을 리모델링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임태모 국토해양부 주택정비과장은 “서울의 몇몇 아파트 단지의 리모델링 현장을 국토해양부 직원들이 보고 난 후 깜짝 놀랐다”며 “재건축과 별반 차이 없는 규모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리모델링시 세대증축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전용면적 30% 내에서 증축이 가능한 현 주택법을 고쳐 전용 85㎡ 이하 아파트의 경우 면적 60% 이내까지 증축을 허용하고 전체 가구수의 10% 내에서 일반분양이 가능토록 하자는 주택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이처럼 아파트 입주민들이 리모델링을 하는데 있어 세대증축을 요구하는 이유가 있다. 증가하는 가구수의 일반분양 수입만큼 수익성이 개선돼 입주민 부담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유영봉 경기도 주택정책과장은 “예를 들어 20층 아파트라면 그 위에 3층 정도 더 증축해서 분양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리모델링 비용을 상쇄한다고 조합원들은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침체되면 리모델링도 어려워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주택거래시장 활성화가 전제되어야 성립된다. 주택 시장 자체가 얼어붙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기존 리모델링 추진에 찬성하고 있는 사람도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위원은 “비용 대비 효과가 리모델링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데 투여되는 비용에 비해 재산가치를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쟁점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유영봉 과장은 “서울의 한 아파트의 리모델링의 경우를 보면 세대당 평균 2억원 정도 부담하고 작은 평수는 9000만원에서 1억 7000만원 정도 부담했다”며 “당시는 부동산 시장이 비교적 활기차던 시절이라 아파트가격이 더 오르리라 예상하고 3.3㎡당 300만원 가까이 부담했는데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뒷받침되지 않아 오히려 1억원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리모델링시 세대증축에 대해 달갑지 않은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세대증축을 위해 무조건 아파트를 높이 지으면 일조권이나 주거환경을 망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안전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세대증축 요구에 대해 국토해양부는 지난 4월 LH공사 산하 토지주택연구원에 의뢰해 ‘공동주택 증축 리모델링 시 안정성 평가’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그 결과는 올해 말에 나올 계획이다.
노후화된 아파트 도시속 흉물 되나?
그동안 한국에서 아파트의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아파트 1채를 자산 증식의 보증수표로 여겼다. 전상인 환경대학원 교수는 주택이야말로 사회적 불평등의 대표적 요소라고 단정짓는다. 전 교수는 주택에 소유여부 뿐만 아니라 거주여건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고 급기야 주택계급을 형성시켰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붐은 기본적으로 정부 주택정책에 촉발됐다. 정부는 1980년대 말 서울의 기형적인 인구집중현상, 부동산 가격 폭등 등 사회적 불안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200만호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1989년 4월 일산 등 5개 지역에 대규모 신도시 건설안을 발표했다. 본지 창간호에서는 당시 주민들은 농지의 택지화에 따른 생활터전 상실, 토지매각자금 등 주민들의 희생의 댓가로 신도시 건설이 이뤄진다며 일산신도시의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21년이 흐른 후 이제는 또 다른 고민을 떠 안아야 한다. 아파트 노후화 문제다.
고양시에서 아파트 노후화에 해결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일산 탄현마을 3단지가 지난 7월 리모델링추진위를 만들고 건설사에 시공참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아파트의 노후화는 지속되는 데 경제성이 낮아져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아파트의 가격 거품이 서서히 빠지면서 제대로된 아파트의 가격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의 노후화에 따라 슬럼화가 진행되어 도시속의 흉물이 되고 말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파트는 단독주택과 달리 단위면적당 밀집도가 높아 슬럼화 될 경우 엄청난 대단위로 진행된다. 실제로 집값 하락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지역민들의 반대에 의해 한 곳으로 모여진 임대아파트의 경우 슬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저물고 있는 아파트 투기 시대
아파트 건설이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주택개발의 방향이 아니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토지를 기반으로 하는 주택에 비해 아파트는 ‘붕 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위원은 “아파트를 바로보는 시각에 있어 현재 전환시점에 와있다”며 “아파트가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번지고 있으며 아파트 투자에 기반한 사업들이 서서히 쇠퇴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아파트 공급과잉과 아파트 소비자의 투기열풍이 맞물려 이뤄놓은 아파트 가격 폭등이라는 기형적 주택거래시장이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며 “더 이상의 아파트 건설은 기존의 아파트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거환경연구원 김태섭 실장은 “지금까지 철저히 주택거래시장의 논리에 의해 용적율 등 사업성을 담보할 수 있었던 최적의 주거형태가 아파트였다”며 “한국사회에서 지난 30년간 개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아파트 건설업자는 수익을 최대한 창출했고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아파트 소유자는 최대한 시세차익을 노렸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아파트에 대한 투자 수요는 떨어질지 몰라도 낡은 아파트에 대한 대체 수요는 미래에도 여전할 것”이라며 “다만 대체수요를 충족시킬 대안으로 지금까지의 고층 아파트를 지양하는 대신 다주택, 연립주택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는 사업타당성을 어느 만큼 확보할 수 있느냐다”라고 말했다.
나대지에 단독주택·저층 호화주택 현실성 없어
대표적 주거문화였던 아파트의 생명력에 최대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변창흠 세종대 도시부동산 대학원 교수는“아파트 노후화와 맞물리면서 시장이 침체되었다고 해서 아파트의 시대는 갔다고 하는 것은 성급한 논리”라며 “도시기반시설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나대지에 단독주택만을 짓거나 혹은 저층으로 초호화 주택을 건립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아파트 외에 다른 주거 형태로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현재로선 찾을 수 없다.
지금까지 주택거래시장의 패턴을 해체할 수 있는 강력한 대변혁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을 떠올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변 교수는 이어“아파트의 내구연한에 최대한 의존하면서 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완화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개입해 제도적 인센티브 줘야
변 교수와 달리 정부의 개입에 의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사실 짧은 기간동안 집약적인 성장을 해오던 한국사회는 급증하는 주택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아파트를 정책적으로 도입했다. 정부 아파트 정책의 대표적인 것이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 발표된 이후 정부는 고양 일산, 안양 평촌, 부천 중동, 군포 산본 등 수도권 5개 지역에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을 하면서 아파트 붐에 일조한 면이 있다.
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위원은 “정부정책에 의해 아파트 시장이 어느 정도 기형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정부도 책임이 있다”며 “정부가 대단위로 아파트가 노후화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영선 연구위원은 정부가 개입하는 방법으로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제시했다. 윤 연구위원은 “특별법이 되었든 제도적 인센티브가 되었든 방법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며 “첫째, 노후화 해결을 위한 사업에 있어 정부가 거둬들이는 조세를 경감시키는 방법, 둘째, 금융정책에 의해 저비용으로 노후화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를테면 저리 융자 같은 것을 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