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무인 빨래방. 긴 탁자와 등받이 없는 의자 몇 개. CCTV가 있었지만 나중에 확인해볼 결과 언제나처럼 고장 나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지난달 발생한 화정동 16세 소년, 소녀의 살인사건 현장을 둘러보았다. 사건 당일 3명의 아이들이 술을 먹었다는 무인 빨래방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 밤시간을 제한한다는 문구가 붙었을 뿐이다.
빨래방은 인근 초등학교와 몇걸음 거리에 있었다. 근처에 CCTV는 보이지 않았다. 16세 소년이 소녀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했던 인근 공원을 걸어가 보았다. 단풍이 무르익어 아름다운 공원엔 평소와 달리 인적이 드물었다. 도서관 옆 벤치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청년과 기자의 눈이 마주치자 함께 놀랐다. 여느 때라면 분위기 있어 보였을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정말 낙엽 안에 뭐가 들어있다 해도 확인하기 어려워보였다.
“그 녀석들 맨날 집에도 안가고 요 근처에서 술먹고 다니더라구. 남자 아이 둘, 여자아이 둘. 그때 신고를 했어야하는데. 그랬으면 그런 일 없었을 거 아니야. 요즘 세상이 너무 험해서 다들 수군거리기만 했지, 신고할 생각을 못한 거지.”
인근 상가의 주인은 혀를 차며 이야기를 전했다. 몇 달전부터 남녀 아이들 4명이 혼숙을 하고, 동네에서 술을 자주 먹었다는 것이다. 혼숙을 하고 있다는 집까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취를 감춰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터진 걸 언론을 보고 알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이 주변 탐문조사를 하던 중 16세 아이들에게 술을 판 편의점 직원과 주인이 벌금을 물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소식을 접한 이후부터 담당 기자로부터 취재상황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번 사건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았다. 부모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데도 혼숙을 하는 4명의 아이들. 피해자는 사건 전날까지 학교에 등교했다는데, 보름동안이나 학교는 등교하지 않는 학생을 신고하지 않았다. 살해되기 얼마 전 피해 여학생이 일산경찰서에 실종신고가 됐다가 부모에게 돌아가기 싫어 친구와 살게 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작 살해가 되고 나서는 실종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
사건이 일어난 주변은 상가와 주택이 혼합된 형태의 연립주택 밀집 지역이다. 지하에는 원룸 형태의 단독 세대 거주가 많다. 공원이 많고, 교통이 편리해 임대수요가 많은 지역이다. 이는 당연히 사건과 상관이 없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와 피해자가 어디에 살았는지, 가난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외형적으로 편안하고 살기좋은 마을로 비춰지던 신도시 안에 감춰진 불안과 허점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아닐까 진단해본다. 허점은 무엇일까.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한국에서 그의 저서의 폭발적인 인기에 오히려 당혹해 하며 한국사회가 “경제성장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정작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적, 영적 문제는 다루지 않았고 이런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가정과 사회가 더 이상 안전망이 되어줄 수 없고, ‘안되는 것과 되는 것’의 도덕적인 기준을 부모와 어른들이 말해줄 없다면. 이번 사건을 우리 모두 16세 소년 소녀의 부모가 되어 바라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가슴이 답답하다.
김진이 kjini@mygo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