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8400마리 살처분…끔찍한 현장, 스트레스 호소

4500여마리의 돼지들을 처리반 사람들이 직접 몰고가 인근 논에 미리 파놓은 웅덩이에 집어넣었다. 직경 20m~30m, 깊이 4m의 웅덩이를 파고 비닐을 미리 깔았다. 살아있는 돼지들을 몰아넣고 비닐을 밀봉한 후 안락사용 이산화탄소 가스가 주입됐다.
9000여마리의 돼지를 사육하던 구산동 송포양돈단지의 돼지들이 4일 살처분됐다. 4일 현재까지 살처분된 소와 돼지 등이 1만8400마리(고양축산농협 통계)로 그동안 처리된 가축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규모 살처분 이었다. 워낙 살처분할 돼지가 많아 이날은 기존 안락사 처리 약품 대신 이날은 이산화탄소가 사용됐다.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반경 3km 이내에 농가에 실시되는 예방적 살처분이었다.
매몰 현장에 참여한 한 공무원은 “너무 끔찍한 상황이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상황발생 보름 동안 3교대로 살처분과 방역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공무원들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4일 현재 고양시는 고양축협 통계 기준 돼지 1만3400, 젖소 2050, 한우 3289마리가 매몰대상으로 이중 한우와 젖소는 100%, 돼지는 6000여마리가 살처분 됐다. 전체 가축 중 돼지는 67%, 젖소와 한우는 각각 50%가 구제역으로 인해 처리된 셈이다. 사슴 43마리 3농가를 포함해 고양시 전체 80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고양시농업기술센터에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의심신고나 살처분 대상 농가를 제외한 146농가 7564마리에 대한 백신접종이 완료됐다. 2차 접종은 25일 실시될 예정이다.
문제는 구제역 피해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고양축협 관계자는 내유, 관산동 이외에도 현천동 등 덕양구에서도 계속 신고가 들어오고 있어 구제역 상황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유완식 고양시 한우협회 지부장은 “구제역 상황이 종료돼야 피해대책이나 보상 등을 논의할텐데 계속 의심신고가 들어오니 축산농가가 바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심정”이라며 “시세의 최저가격에 맞추어 보상을 해준다면 결국 50%정도밖에 보상을 못 받는다는 계산인데 농가들의 시름이 크다”고 말했다.
고양축협 안만수 상임이사는 “고양시가 이동제한에 묶여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농가들도 소와 우유를 팔지 못해 실질적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축협에서 일단 무제한으로 사료를 공급하고 있지만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몰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방역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의 격무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양시는 매일 600여명의 공무원들이 이동통제초소, 살처분 매몰, 사후처리반, 보건소 방역반, 상황실로 나누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덕양구보건소는 구제역 살처분 현장 참가자와 축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정신건강 문제 조기발견과 치료 등 의료지원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덕양보건소는 축산업 종사자들과 살처분 참여자들에 대한 정신건강 선별 검사를 실시 한 후, 위험군에 해당되는 직원 및 축산농가에 대해서는 2차 정밀진단 후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치료를 실시할 계획이다.

자식처럼 키우던 소와 돼지를 파묻고 돌아서는 축산농가들 역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 3일 설문동에서 키우던 38마리의 소를 모두 살처분한 유오현씨는 “보상해준다는데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지만 키우던 소를 묻고 돌아서는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며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덕양보건소 이명옥 과장은 “살처분 대상 축산농가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바람에 접근 자체가 어려워 정신건강에 대한 실태 파악이 어려운 현실”이라며 “스트레스 장애를 그냥 방치하면 우울증 등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지는 만큼 빠른 치유를 위해서라도 보건소를 방문하여 상담을 요청해달라”고 부탁했다.
고양시는 매몰반과 사후처리반에 대한 전문용역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최근 확산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해서도 별도의 팀을 구성해 운영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