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지난 겨울,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가장 큰 특징인 삼한사온이 사라졌다. 1월 내내 낮에도 영하의 기온이었고, 서울은 40일간 평년 기온보다 2.6도나 낮았다고 한다. 눈은 또 얼마나 자주 왔는지, 겨울 내내 눈이 녹지 않아 따뜻한 봄을 간절하게 기다렸다. 한파와 녹지 않는 눈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 ‘투모로우’를 떠올렸을 것이다. 영화 ‘투모로우’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녹은 빙하가 해류를 변화시켜 북반구에 빙하기가 온다는 설정의 재난영화이다. 영화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많은 사람들이 이상 기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기상이변’은 보통 지난 30년간의 기상과 아주 다른 기상현상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올해의 한파는 기상이변이 맞다.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건설공사를 못한다고 한다. 지난 겨울은 공사가 불가능했던 기간이 27일로 1967년 겨울의 37일 이후 제일 길었다고 한다. 10년단위 연평균 공사 불능일수를 봐도 1990∼1999년 평균 5.3일, 2000∼2009년 평균 6, 7일 등과 비교하여 보면 올 겨울이 얼마나 추웠는지 알 수 있다.
지난 겨울 한파에 대하여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아니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지구가 따뜻해져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린 지구 온난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만,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그렇다. 환경관련 이슈에 대하여 우선 정부의 몰지각과 대기업의 이윤추구를 비판한다. 그럼 지구 온난화는 이들의 책임이고 이들만 바꾸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물론 정부나 기업의 정책이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들, 더 구체적으로 ‘나’는 온난화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도 의무도 없을까?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재생용지 책 ‘노임팩트맨’(콜린 베번 지음)은 환경문제에 대하여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자기부터 바뀌어 보자고 제안한다. 뉴욕에 사는 역사책 저술가인 저자는 부인, 딸과 함께 1년 동안 환경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살아보겠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교통수단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음식은 지역에서 재배되고, 포장되지 않은 재료를 구매해 만들어 먹고, 재활용품이 아닌 소비생활은 안하고, 급기야는 전기도 사용안하기로 한다. 모피코트와 리얼리티 TV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아내를 설득하고, 아이가 아팠을 때 어둠속에서 느꼈던 두려움을 극복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영향력 전혀 없이 나보고 살라고 하면 난 못한다. 위 책의 저자도 노임팩트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에 멀리 계신 부모님을 평생 안 찾아뵙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영향을 미치며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린 가능한 노력도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해, 또 과시적인 소비생활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환경문제만 나오면 정부를 비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어떨까? ‘쓰레기 제로’는 어렵지만, 적어도 포장음식은 안 사먹고 종이컵 제로에는 도전해볼 만하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고, 식재료 구매시 조금씩 사서 다 소비하도록 한다. 아파트에 살면서 전기를 완전히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불필요한 등은 끄고, 전기제품을 사용안할 때 연결선을 빼놓는 정도는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기 전에 이 물건이 없으면 기본생활이 어려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구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사실 모르는 내용은 없다. 나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또는 게을러서 실천을 안 할 뿐이다.
정부는 작년부터 시민들에게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면 인센티브를 주는 ‘탄소포인트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6개월의 시범시행기간 동안 고양시에서는 참여세대가 3785세대로 총세대의 1.21%로 참여율이 저조했다. 물론 ‘탄소포인트제’에 참여하지 않고도 환경영향을 최소화 하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래도 시험이 있어야 공부를 더 열심히 하듯, 우리 맘을 다잡기 위해 한번 참여해 볼 만하다.
환경에 미치는 개인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나하나 쯤이야 하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남에게 큰 피해를 미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짧아진 봄을 아쉬워하지 말고, 잃어버린 봄을 찾아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해 보자.
/박 규 영 전 고양시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