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시청 앞 언덕에 한 아주머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다. “고양시가 무슨 죄가 있어. 도대체 양심이 있어야지. 매일 곡소리하고, 관까지 가져다놓으니.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라는 거야.”
그랬다. 지난주부터 고양시청 앞에는 검은 관과 곡소리가 등장했다. 초상집을 연상시키는 삼색 줄도 정문과 벽 이곳저곳에 걸렸다. 올해로 8년째 시위를 계속 하고 있는 행신동 철거민 김모씨 부부가 최근 덕양구청의 주거용 천막 철거에 항의하며 시위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28일부터는 단식까지 선언하고 과격한 구호를 관 이곳저곳에 붙였다. 운동가요도 상갓집 곡소리로 바꾸어 매일같이 확성기로 ‘어이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근 상인들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시청 앞길이 흉흉한 분위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고양시청에서는 철거 관련 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씨 부부가 갑작스레 시청으로 들어올 것을 염려해 최소의 문을 제외하고는 입구마다 철문을 닫아 걸었다.
이미 고양신문에서도 여러차례 보도가 되었지만 김씨 부부의 문제는 쉽게 해결이 나기 어려운 사안이다. 시행사인 대명종합건설과 시공사 SK 등과의 중재를 시도해왔던 고양시도 김씨 부부의 요구가 과하고 협상에 임해 보여주는 태도로 인해 번번이 시도가 무산되자 더 이상의 대안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10일 덕양구청은 ‘도로법’ 제45조(도로에 관한 금지행위) 위반 및 ‘행정대집행법’ 제3조에 의거 행신동 SK뷰 아파트 앞 김씨 부부의 천막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실시했다. 구청 공무원과 경찰 등 100여명이 동원돼 천막과 집기 등을 수거했지만 저항이 거세 철거를 완전히 수행하지는 못했다. 어찌보면 천막 철거는 김씨 부부를 자극해 극한의 행동까지 취하도록 만든 셈이 되었다.
공공 거버넌스와 민관 갈등 해결 문제에 대해 저서를 쓰기도 했던 신창현 전 의왕시장은 “시가 더 주고 받을 게 없는 상황에서 갈등 해결은 어렵다. ‘도룡뇽소송’으로 잘 알려진 지율 스님 때의 상황이 그랬다”며 “본인이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생각의 변화가 올 수 있을 때까지 시는 전통적인 방식의 대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소장은 “기다려주는 동안의 피해와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어찌보면 민주주의를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가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신 소장의 지적처럼 지금 김씨 부부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대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 주선, 결렬, 행정대집행의 과정을 거쳐온 고양시의 대처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지금의 상황이 혹시 고양시가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온 결과라면 인근 상인들과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며 기다려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추측하건대 치밀한 분석과 계획의 결과는 아닌 듯싶다.
김씨 부부가 가져다 놓은 관 옆에는 덕이동 분양 예정 아파트 단지 입주 예정자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급격한 변화와 개발이 계속 되어온 고양시. 시청 앞에는 시위가 끊일 날이 없다. 1인 시위중인 덕이동 아파트 분양 관련해서는 일주일전 대규모 시위가 있기도 했다. 1000여명이 넘는 ‘예고된 시위’에 경기도경찰청에서 출동하고, 본청까지 보고가 됐다는 후문이다. 지금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양시 전역에는 크고 작은 갈등과 민원이 있다. 고양신문 제보 전화도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김씨 부부와 관련해 고양시는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한 고려겠지만 이참에 갈등과 위기에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다 큰 틀에서 고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부임하게 되는 시민소통담당관실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리라 여겨진다.
아쉬움은 또 있다. 시가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것과 함께 김씨 부부가 더 이상의 극단적인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지역의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더 이상 조속한 해결을 촉구할 수는 없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불편을 최대한 감수할 수 있는 시간 내에서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 기자명 김진이 편집장
- 입력 2011.03.29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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