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빛 광성교회 정성진 목사
평화누리 이사장, 6년동안 1만여 교인 늘어

“6년 전 덕이동으로 옮겨오면서 지역활동을 줄였죠. 주일 교인만 1만여명이 넘으니 담임목사로서 다양한 교인들을 고려해야하니까요. 환경운동연합 활동은 끝까지 하려 했는데 4대강 문제가 터지니 어느 한편을 들 수가 없더군요.”
덕이동 ‘거룩한빛 광성교회’ 정성진 담임목사(56세)는 최근 뜸했던 지역활동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6년 전 정발산 광성교회 시절 정 목사는 “지역에서 쓰임이 있다면 감사한 일”이라며 적극적인 지역활동을 했다. 고양시 두레생협 이사장, 고양시 16대 공선협 대표, 민주당 고양시장후보경선 선거관리위원장, 고양시 환경운동연합 대표가 정 목사의 주요 경력이다. 목회자로서 자칫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정치행사에서도 정 목사는 본인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될 수밖에 없는 시장, 국회의원 후보 토론회를 정 목사가 이끌면 후보나 정당에서도 두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여와 야, 진보와 보수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바른 판단력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정성진 목사를 6년여 동안 지역에서 보기가 어려웠다. 마지막까지 맡았던 고양환경운동연합 대표직도 이명박 정부 들어 4대강 문제가 논란이 되자 접었다. 지역에서는 그의 역할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교회 담임자로서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정 목사는 교회에 전념했다. 덕분에 광성교회는 지역에서 1만여명 교인에 선교원, 평생교육원, 노인요양홈, 어려운 이들을 위한 쿰치유센터, 해비타트, 파주노인복지관, 사회복지법인 등 다양한 지역봉사로 영역을 확대해왔다. 2005년부터는 대안학교인 광성드림학교를 초등, 중등과정까지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 저신용자들을 위한 미소금융, 해피뱅크를 일찍부터 운영해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교회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교계에서 그의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개신교에 대한 사회의 불신에 대해 정성진 목사는 “이유 있다”며 “개혁을 위한 칼을 들겠다”고 말했다.
“5월말에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개혁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사회도 그렇지만 교회의 양극화가 너무 심각합니다. 큰 교회는 커지고, 작은 교회는 몰락하죠. 개혁을 요구하는 한편, 작은 교회들을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광성교회에서는 지역의 12개 작은 교회들을 30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지원 교회는 교단에 상관없이 선정한다. ‘성경에는 교단이 없기 때문’이란다.
“내가 민중신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교회가 세속적으로 가는 모습이 너무 창피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한번도 성장을 목표로 잡거나 방향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만큼 교인들이 늘어난 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능력을 주신 거겠죠. 무엇보다 목사가 가난하고, 검소하면 교인들이 좋아하죠.”
정 목사는 다소 늦은 나이인 29세에 민중신학을 공부하고 자신의 배움을 실천하기 위해 폐광이 있던 충북 음성으로 내려가 목회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과거’를 잊지 못하기에 정성진 목사는 ‘부끄러움 없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해왔다. 교회의 슬로건은 ‘한국교회 개혁의 모델이 되자’로 잡았다.
정 목사는 스스럼없이 본인의 급여를 공개했다. 월 480만원을 받고 있고, 퇴직금을 받지 않는다. 6년마다 담임목사의 신임을 교인들에게 묻고, 65세 정년에 원로목사 제도도 두지 않았다. 세상에서 담임목사 은퇴 비용이 ‘10억이니, 20억’하는 이야기가 부끄럽기만 하다. 교회 재정에 목사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렇게 한동안 교회 일에만 전념하던 정성진 목사가 최근 지역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고양평화누리 이사장을 맡아 3일 킨텍스에서 취임식을 가진 것이다. 어떤 생각 때문일까.
“앞으로 2가지를 집중하려고 하는데 한가지는 교회 개혁이고, 다른 하나가 평화통일입니다. 작년에 연평도 사건도 있었지만 고양, 파주 지역은 전쟁이 시작만 되면 바로 불바다가 됩니다. ‘나면 끝’이죠. 역사를 100년 이전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평화통일운동을 진보와 보수를 모두 안아가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였다는 고양평화누리는 지금까지 2번의 조찬 포럼을 가졌다. 강사와 참여자 모두 각양각색 다양했다. 정 목사는 지역에서 평화운동의 첫 출발을 금정굴 문제 해결로 희망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그러니까 우리 종교인들이 나서야 합니다. 만델라의 포용은 이야기하면서 왜 우리는 못합니까. 필요하다면 단체, 대표들을 한사람씩 만나서 이야기하면 됩니다.”
정성진 목사가 교회에서 금정굴 문제해결을 위한 설교를 한지는 5년이 넘었다. 정 목사는 지역에서 갈등과 중재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정치와 행정으로 어려운 묵은 갈등을 풀어내는 역할을 바로 종교인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정 목사는 지역과 NGO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내가 시민운동할 때 모 기업으로부터 로비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해결안된 현안이었죠. 시민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이익집단이 되면 안됩니다. 공정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 NGO는 마지막까지 공의를 위한 집단이 돼야죠.”
개혁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표정이 고조되던 정성진 목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교회 4층에서 열린 작은 행사에 참여했다. 평생교육원 수료식에 작은 케이크를 들고 참여한 정 목사는 다시 온화한 목회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