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민족과 연관된 몇 개의 발언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노르웨이의 테러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76명을 죽인 뒤 “잔혹하지만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의원 신도 요시타가는 독도 방문이 좌절되자 “다시 오겠다.”며 돌아갔다. 통일부는 50억원 상당의 수해복구를 위한 대북지원을 결정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차원에서 구호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위의 발언들은 각각 민족과 연관된 말들이다. 다들 스스로의 민족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고, 또한 스스로들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이다고 여겨지는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민족을 위해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각각 스스로의 민족으로부터 공감 받을 만한 점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도 옳고 그름은 있다. 사랑에도 편협과 보편이 있고, 추구 방법에도 이기-자기만 이롭게 하는-주의와 이기이타-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중 편협한 사랑과 이기주의 추구방법은 남을 해치기 때문에 옳지 못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브레이빅의 테러와 신도 일행의 독도방문 기도는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는 편협성과 자신과 자신이 속한 무리의 이득만을 추구하려는 이기주의가 그 행동의 동인이므로 해서는 안 되는 발상과 행동이다. 그러나 대북지원은 인도주의라는 보편적인 사랑과 남과 북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이기이타주의에서 시작되기에 바람직한 발상과 행동에 속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민족을 사랑한다는 동기가 같을 지라도 그 행위의 동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나오게 된다. 같은 물을 먹고서도 소는 우유를 만들지만 독사는 독을 만든다는 유명한 비유처럼 민족이란 단어도 본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지만 어떤 생각과 어떤 방법을 통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유가 만들어 지기도 하고 독이 만들어 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편협한 사랑과 이기주의적 방법추구를 통해 민족을 선동하여 스스로의 욕심을 채운 사람들이 많았기에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도 다문화 사회에 대한 주장들이 거세다.

이런 측면에서 한민족주의를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우리 민족은 본래 단일민족주의가 아니었다. 단일민족주의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단결을 도모코자 일시적으로 대두된 민족주의의 한 갈래일 뿐이다. 우리는 아시아 동북부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오는 수 천년동안 줄곧 말갈 거란 여진족 등은 물론이고 아랍민족 등과도 다문화 사회를 구성하여 동등하게 섞여 살며 함께 어울려 번영을 꾀해 왔다. 엄밀히 말한다면 널리 인간을 사랑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바탕으로 다종족 다문화의 한민족주의를 지향해 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해 한민족의 ‘한’을 정의 한다면 하늘을 상징하는 ‘한’이자 큰 하나를 상징하는 ‘한’이다.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하늘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민족이란 뜻과 여러 종족이 하나의 큰 동아리를 이뤄 사는 민족이란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편협과 이기주의에 바탕 한 민족주의는 배척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편과 이기이타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민족주의는 우리가 실천해야 될 민족주의이다.

김백호(단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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