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다문화가정 한가위 사랑의 송편빚기

한복을 때깔 나게 차려입고 송편을 빚는 모습이 한국의 여느 새댁들과 다를 것이 없다.
“송편 만들기가 재미있어 자꾸 만들고 싶어요. 언니가 잘하셔서 따라 만들었어요.” 한국말이 꽤 능숙한 캄보디아 출신 이이마니(31)씨는 옆자리에 앉은 몽골출신 다리마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송편을 만들며 금세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베트남·캄보디아·몽골, 가깝게는 일본에서 시집 온 결혼 이주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낯선 이국땅에서 이들은 과연 제대로 송편이 빚을 수 있을까. 얼굴색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송편을 만드는 손길은 야무졌다.
추석을 며칠 앞둔 지난 8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서북봉사관 강당에서 외국인 새댁들이 참여한 가운데 ‘다문화가정 한가위 사랑의 송편빚기’ 체험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결혼 이주여성 50명이 참여했다.
성격이 쾌활한 이이마니씨는 송편을 빚으며 “잡채·된장찌개를 좋아하고 김치찌개를 잘 만들수 있어요”라며 “딸아이가 아직 어려 외부활동에 나서지 못하지만 조금 더 크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쉴 틈 없이 자기 생각을 한국말로 표현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곁에 있던 다리마씨는 자신의 개성을 살려 전통적인 모양과는 다른 송편을 만들었다. 채반에 송편들이 수북이 쌓일수록 다리마씨의 얼굴도 차오르는 보름달처럼 점점 더 환해졌다. 필리핀 새댁 아만다(24)씨는 “송편 만들기가 어렵지 않네요”라며 조그맣고 예쁜 송편을 들어 자랑했다. 아만다씨의 친구 김마돈나씨는 시어머니와 만들어본 적이 있어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한국 온 지 9년째인 박은주씨는 “이제 한국인 다 됐어요”라며 이름까지 아예 한국식으로 바꿨다고 했다. 가슴에 단 명찰을 보니 한국이름으로 바꾼 이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그만큼 한국에 잘 적응했다는 뜻이다. 베트남 새댁 응웬티란아씨의 경우에는 한국인보다 한복 맵시가 더 아름다웠다.
올해 초 ‘친정어머니 결연’을 맺은 적십자 봉사원들이 이주여성 곁에서 송편만들기를 돕고 있었다. 적십자 관산동 봉사회장인 최영민씨는 “보통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친정엄마와 딸처럼 커피도 함께 마시고 애가 아프면 도움말도 건넵니다”라고 했다. 최 회장은 “누군가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낯선 곳에서 얼마나 든든하겠나”며 정신적인 의지가 되도록 힘쓴다고 덧붙였다.
권순애씨와 베트남 새댁 원미연씨는 처음엔 1년의 기한을 둔 ‘결연 관계’였지만 2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송편을 빚는 한쪽에서는 친정어머니 결연을 한 사이인지 서로 보듬고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결혼 이주여성들은 새댁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8개월 전에 시집온 후쿠이 유미코(54)씨는 주엽동에 살고 있다고 했다. “열심히 만들었고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며 만족해했다. 결혼 이주여성들은 적십자에서 준비한 한식 점심뷔페와 함께 직접 만든 송편도 먹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이날 만든 송편은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과 나누고, 일부는 포장해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