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인화학교를 알고 있었다. 영화 도가니가 나오기 전, 광주의 한 지역신문에서는 성폭력대책위원회의 시위와 학교, 재단 측의 무대응을 연이어 보도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 지원을 함께 받으며 신문도 주고받는 지역신문이었다. “참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도 지역신문이 끝까지 보도를 계속해주는구나”하는 생각.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거기서 멈췄다.
몇 년전 우연히 인터뷰를 하게 된 부부가 있었다. 예술가 부부인 그들은 어려운 형편에도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저녁식사가 길어지면서 나온 대화에서 그들의 아픔을 알게 됐다. 심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큰 딸이 그해 다니던 장애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이다. 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해 집안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이면 남편이 차에 태워 하루종일 어디론가를 다녀야 했다. 딸은 차에서만 얌전해지기 때문이다. 딸은 덩치도 커서 가녀린 엄마가 감당하기 어려워 아빠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문제는 성인이 된 딸이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해야 하는데 딸은 혼자 집에 있을 수도,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다. 결국 부부는 경기도 인근에 사설 장애인 시설에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딸을 맡기고 있었다.
“며칠 전에 딸을 만나러 갔는데 멍이 들어있는 거에요. 그 전에는 딸이 말썽을 부렸다며 면회를 시켜주지 않은 적도 있어요.”
장애인 시설의 석연치 않은 태도에 부부는 애를 태우고 있었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아닌 것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딸을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 엄마보다 아빠가 먼저 주먹을 불끈 쥐며 눈물을 보였다. 몇가지 이야기만으로도 문제가 있는 시설 같았지만 생각은 또 거기서 접었다. 해당 시설이 고양시도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문제제기를 하지도 않는데. 그렇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은 너무 무거웠다.
얼마전 일이다. 시설장에 대한 민원이 제기돼 시의회에서까지 논란이 됐던 장애인시설의 부모들을 만났다. 취재협조는 장애인 부모회 대표에게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15명 남짓한 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취재를 위한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부모들은 앞다투어 설명했다. 부모들은 스스로 애써 진정하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야기의 톤이 점점 높아졌고, 쉽게 흥분했다. 한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부모가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의 주장이 비슷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장애인 부모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모들의 주장과 조금만 다른 질문을 던져도 공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부모들과의 대화에서 정확한 진실은 알아내기 어려웠지만 장애인 부모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맡길 수 없으면, 부모는 일을 할 수 없다. 형제, 가족들이 겪어야할 고통, 그리고 이웃의 시선.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장애가 있는 아동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부모가 진다. 필요한 시설이나 정책, 지원은 언제나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장애인 학교와 시설이 있고, 통합교육을 위해 일반학교에도 다닐 수 있고.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나아진 것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 것일까. 광주시와 광주시 교육청은 3일 광주인화학교의 법인 우석에 대한 ‘특수교육기관 위탁 지정’ 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폐교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인화학교는 물론, 우석법인이 운영하는 인화원과 보호작업장, 근로시설에 대한 폐쇄조치도 이어질 예정이다.
문제는 인화학교에 다니고 있는 22명의 학생들과 시설 수용자들이다. 광주교육청은 2013년 공립 특수학교 개교까지 임시학교 운영, 일반고등학교에 특수학급 신설 등을 고민 중이다. 광주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측은 이번 영화 ‘도가니’로 인한 여론의 관심을 무조건 반기지 않고 있다. 7년 동안 계기가 생기면 여론이 달아올랐다가 꺼지며 ‘기대와 실망’을 여러번 반복했기 때문이란다.
영화 도가니를 이 사회의 잘못된 권력구조에 대한 울분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속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이 가능했던 또다른 이유는 우리의 무심함 때문은 아니었는지.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전 인구의 4.59%인 약 214만8700명으로 추정된다. 기계적인 계산을 한다면 20명이 모인 자리에는 1명 정도의 장애인이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우리의 편견을 피해 어딘가에 숨어 자신들의 소중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