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서삼릉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1537년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의 희릉을 최초 조영하면서부터 능역이 형성되었고, 1545년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의 효릉이 조영됐다. 1865년 희릉과 예릉 사이에 철종과 철인왕후의 예릉이 자리 잡게 되면서 서삼릉이라 불리게 됐다. 그와 더불어 명종과 숙종 이후 조선말기까지 역대 후궁, 대군, 군, 공주, 옹주 등의 많은 분묘, 그리고 인조의 제1자 소현세자의 소경원이 조성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왕실 묘와 조선 왕실의 태봉으로 부터 이장되어 온 국왕 태실 19기, 폐비 윤씨 및 왕자 왕녀 태실 35기 등 총 54기 등이 집장됐다. 1944년에는 정조의 원자 문효세자의 효창원이 천장됐으며, 해방 후에도 의소세손 의령원, 후궁묘, 왕자묘, 회묘 등이 천장되어 조선왕실 최대의 족분(墳)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서삼릉 훼손의 역사는 멀리 일제가 남기고간 우리민족에 대한 수탈과 정신적 맥을 끊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가까이는 군사독재시절 경제부흥이라는 당근의 이면에 가려진채 서삼릉의 훼손을 시작 아직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서삼릉은 13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능역을 형성하고 있었다. 60년대 중반까지 땅의 소유자는 창경궁이었으며, 국유지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군사정부는 국유지 불하 정책을 시작하였고, 이에 편승하여 서삼릉 능역의 땅 나눠먹기 역사는 시작됐다. 그 시작의 첫 번째로 재계 주요 인사들에 의해 한양골프장, 뉴코리아 골프장이 들어서고, 근대화 정책의 일환이였던 목장(초지조성)과 농협대학이 들어선다. 이렇게 훼손된 능역의 능 행로는 찾아볼 수 없고 능과 능은 분할 고립되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태에 있다.

이러한 서사릉 비공개(효릉, 소경원, 조선왕조 태실 54위 집장지, 연산군 모 폐비윤씨 묘, 왕자왕녀 묘역 22위 후궁 묘역 22위 등)능역의 답사를 위해서는 문화재청 서삼릉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득하는 방법과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비공개 답사중 하나를 선택 후 답사를 할 수 있다.

필자 또한 고양파주여성민우회 회원들과 고양올레대표와 동행하기로 하고, 고양시 ‘향토문화보존회’로 하여 상기와 같은 절차를 거처 허가를 득한 후 비공개 지역의 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가을의 만추에 이루어진 답사는 문화유산과 역사속 주인공과의 만남에서인지 시종일관 진지하게 진행됐다.

떨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와 느낌마저 상쾌했다. 이러한 조선왕조의 능지선정은 풍수를 기본으로 택정하기에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대간 준령에서 뻗은 한북정맥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효릉은 배산임수와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를 두루 갖춘 연화부수(연꽃이만개한)형의 명당지라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서삼릉은 훼손의 정도가 조선왕릉 중에서 제일 심하기 때문에 허가를 득하고 답사를 하여도 축협소유의 초지를 경유하지 않으면 갈수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상태에 놓여있다.

서삼릉으로 귀환하는 일행의 일부가 축협소유의 초지를 경유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축협의 통행 허가를 받지 않는 사유지 경유는 있을 수 없다는 관리자의 엄포섞인 말과 태도는 과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우리의 문화유산 그것도 세계유산을 허가를 받아서 답사를 했는데 날벼락이었다. 이것은 축협의 횡포요 언어도단이며, 적반하장이다. 어찌하여 남의 땅과 소중한 문화유산을 송두리채 집어삼키고 그것도 모자라 뉘우치기는커녕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군부독재자의 말 한마디 교시령에 의해 능역을 파괴시키고 훼손하여 조꺼한 목장사업의 정당성을 지키려는 망령된 행동을 보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지금도 젖소개량사업소 정문에는 60년대 말 대통령이 지시한 교시문을 석비에 새겨 잘 보존관리하고 있다. 현재 서삼릉능역에 존재하는 젖소개량사업소라 불리는 목장조성사업은 60년대의 정책으로 그 용도를 다했기에 더 이상 이곳에 머물거나 사업연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축협목장의 이전을 통해 곧 수백 년을 이어온 고고한 시간 속 서삼릉을 테마로 삼아 올드파크를 조성, 도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아가 시민의 휴식 공간 제공은 물론 관광자원화로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처럼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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