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장표창 받은 일산5통 최병열 사무장

▲ 싸움이 잦았던 일산5통 경로당을 봉사하며 나누는 곳으로 바꿔낸 최병열 사무장

“술 먹고 주먹질하며 싸우고 난장판이었지. 경찰서에 고발한 것만 열다섯 번이야.”

일산 5통 경로당 윤상섭(77세)회장은 말도 마라며 손 사레를 쳤다. 최병열(74세)사무장이 오기 전, 3년 전엔 그랬다. 부인·자식체면을 생각해서 조심하는 아파트 경로당과는 달랐다. 이곳 노인들은 ‘싸우고 안 오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고발해 봐야 경찰에서는 노인들끼리 싸운 거 합의하라고 할밖에 방법이 없지만 경로당 질서를 세우는 데는 그만이었다.

처음에는 왜 이런 시궁창에 와서 저러냐 말도 많았다.

“이 양반이 오고 싹 바꿔놓았지. 회원이건 아니건 오는 노인들은 다 보듬고 잘해주니까 다들 최사무장에게 감복하더라구.” 윤 회장은 최 사무장이 아니었으면 운영 자체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집에서는 경로당에만 신경 쓴다고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다들 잘한다 해주니 더 잘하고 싶은 거지 뭐” 오전 11시 최사무장의 출근 시간. 경로당을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손길은 바빠진다. 현관문 앞에서부터 담배꽁초며 쓰레기며 보이는 대로 주우며 들어온다. 그의 열성적인 봉사가 소문이 났다. 지난달에는 시장표창을 받았다.

공무원 출신 최병열씨는 서울 서대문구 서부교육청에 교육자료부장으로 근무하다 시의원에 나가라는 주변의 권고가 있어 명예퇴직했다. 하지만, 선배, 후배, 친척에게 시의원이며 조합장, 농협장도 다 양보했다. 그는 송포 초등학교 총동문회장, 고양경찰서 선진질서위원, 일산 5통 경로당에 이르기까지 반듯한 직함보다는 궂은 일을 택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최병열 사무장의 눈에 띄었다 하면 어림없다. 그의 손길이 닿았다 하면 뚝딱뚝딱 어느새 고쳐져 있다. 일산 5통 경로당의 맥가이버인 셈. 지난 8일 일산시장 근처 일산 5통 경로당에서 윤상섭 회장과 최병열 사무장을 만났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경로당 내부는 요모조모 규모 있고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다. 에어컨·냉장고· 세탁기·정수기·커피자판기·혈압측정기까지 없는 것이 없다. 세 개의 방에는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화투며 장기놀이로 시간이 물처럼 흘렀다.

전에는 어르신들이 부엌에서 담배를 피웠다. 비위생적인 환경이었다. 최사무장은 골목에 있던 보일러실을 막아 문을 달고 흡연실로 만들었다. 내친김에 흡연실 내에 조그만 전기장판도 마련해뒀다. 담배피우는 동안 어르신들이 발이 시렵기 때문이다. 화장실 냄새도 환풍기와 방향제를 달아 해결했다. 천장에 물이 새는 것도, 출입문에 모기장을 다는 것도 최 사무장이 한 일. 예전에는 경로당 정문이 철판 문이었다. 컴컴해서 낮에도 불을 켜두어야 하니 전기요금이 낭비됐다. 출입문 상판을 유리로 교체하자 걱정 끝. 이번에도 최사무장의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안 닿은 데가 없다.

‘어떻게 하면 노인들이 편리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할까’ 최 사무장의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밖에 없어 보인다. 소파, 책상, 의자 닥치는 대로 주워왔다. 못 쓸 것 같던 물건도 그의 손을 거치면 새것처럼 변신한다. 김치 냉장고를 비롯해 냉장고만 3대다. 세탁기도 수완 좋은 그가 장만했다. 최사무장이 인근에 재활용품 매장에 떴다 하면 “또 뭐 필요하세요?”가 인사가 된다. “무조건 부탁하고 머리 숙여 얻어오는 거지. 돈으로 장만하자면 엄두도 못 낼 일이지.” 최사무장은 사무실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인근의 마을금고에서 새 의자로 교체할 때 얻어왔다고 자랑했다. 경로당은 점점 늘어나는 살림살이로 반듯해져 갔다. 오래전 십시일반 노인들의 사비를 털어 만든 사설 경로당이다 보니 시에서의 지원금도 많지 않다. 월 55만 6천원. 지원금은 쌀 20킬로그램, 부식비 28~30만원에 주방 아주머니에게 한 달 20만원의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앞으로 어떤 바람이 있으세요?” 그의 바람 또한 오롯이 경로당에 관한 것이었다. “경로당 옛날 건물이어서 새 건물이 들어서면 좋지. 재개발만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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