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초등학교 46회 동문, 동창들 "키작고 생각이 많았던 아이"

스스로를 ‘열등감을 먹고 자라난 괴물’이라고 표현한 김기덕 감독.
한국영화계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던 김기덕 감독이 다시 우뚝 일어섰다. 그를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밀어 준 곳은 한국이 아닌 세계 영화계였다. 김기덕 감독이 활짝 웃었다. 화도 아픔도 씻고 “제 영화도 좀 많이 봐달라”고 경쾌하게 부탁한다.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고양에서 유년시절을 오랫동안 보냈다. 두메 산골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고양으로 이주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기 훨씬 전인 69년경 논밭뿐인 일산으로 이사온 김기덕 감독은 일산초등학교 46회생으로 졸업했다. 일산초교 동창들은 김 감독을 ‘키가 작고 생각이 많았던 아이’ 혹은 ‘눈이 똘망똘망했던 아이’로 기억했다.
일산초교 46회 동창인 최창균씨는 “기덕이의 사촌형인 김기창이 먼저 일산초교로 전학오고 곧이어 기덕이도 와서 같이 어울렸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래처럼 까부는 아이가 아니었다. 쭈그리고 앉아 하나의 사물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기덕이가 생각난다”고 얘기했다.
3년전 김기덕 감독의 아버지가 숨졌을 때 일산복음병원에서 장례를 치렀다.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참여한 최창균씨는 “유명 영화감독이라 장례식에 스타가 많이 올 줄 알았는데 일부러 영화판의 아는 측근들만 초대하는 걸 보고 허위의식 없는 진지한 친구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조재현씨를 통해 김 감독을 알게된 김덕주(고양 거주)씨는 “일산에서 가끔 술자리를 해도 차분한 성격이었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 감독이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갔었는데 그 그림실력이 데뷔작 ‘악어’에서 나온 벽화에서 표출됐다”고 말했다.
오랜 공백을 딛고 단숨에 세계 영화계의 거장으로 올라선 김기덕 감독의 영화같은 삶에 고양에서의 어린시절 추억이 담겨있다는 사실이 흐뭇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