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지 수목원으로 떠나는 가을여행
박정원 대표, ‘명품 공간’ 만든 이야기

어느순간 눈을 들어보니 하늘이 저만치 달아나있다. 숲과 나무들은 변검 공연이라도 하는 듯 매번 다른 빛깔로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떠나야하는데. 지리산, 설악산의 단풍을 보아야 꼭 가을 여행일까. 수백년 세월을 또아리 틀며 비밀을 간직한 고목과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정원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잠시 여유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곳.
푸른 풀이 있는 연못 벽초지(壁草地) 수목원은 파주시 광탄면에 있지만 고양시민들에게는 매우 가까운 공간이다. 자유로를 타고 가거나, 고양동 방향을 선택해도 30여분 남짓 걸린다. 12만㎡(3만6000평)의 넓은 수목원 안에는 세상사 고통을 숲과 자연에서 치유받은 주인장이 정성껏 가꾸어놓은 갖가지 나무와 연못, 영국식 정원이 넓은 평지에 펼쳐져있다.
아름다운 정원 벽초지수목원에서 박정원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수목원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양신문에 소개되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수목원은 민간에 개방한지 6년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1995년 처음 왔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알렸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대로 만들어놓고 문 열어야 예의가 아닌가 했죠.”


“그때 우리 재무상담을 해준 변호사가 외국으로 도망가라고 했어요. 채무자들과 송사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람들 여럿 봤다며.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랐죠. 당하고 보니 그 조언을 들을 걸 싶더군요.”
재산을 잃은 것도 억울하지만 소송과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 박정원 대표는 지금의 수목원 부지로 혼자 도망을 쳐왔다. 돼지 소 막사 옆에 있었던 작은 관리사택은 파리들이 들끓었다. 하지만 매일 술을 마시고 잠이 드니 상관하지 않고 지냈다고.

"매일 술에 찌들어 사는데 갑자기 나무와 숲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제가 원래 나무나 농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공을 들여 한포기 풀을 심고, 나무를 가꾸니 매일같이 죽을 것같던 마음이 가라앉고 평안해지더군요.”
1995년부터 그렇게 가족과도 헤어져 혼자 나무와 숲을 가꿨다. 벽초지 정원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가꾼 것은 박 대표. 땅도 조금씩 사들이며 혼자 기뻐하고, 치유를 받았다.
“어느날 이웃 사람이 와서 그래요. 이렇게 좋은 곳을 혼자만 갖고 있으면 되겠냐고. 생각도 못했다가 고민을 하게 됐죠.” 친구들에게 수목원이 뭐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아침고요 수목원과 포천 허브아일랜드를 소개시켜 주길래 가게 됐다.
“포천 허브아일랜드에 갔더니 거기 임옥 대표도 참 사연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돌 하나, 풀 한포기 별 것 아닌데 그분은 그걸 얼마나 아름답냐고 칭찬을 해요. ‘이 느낌이구나’ 싶었죠.”
박정원 대표는 ‘명품’을 만들고 싶었다. 입구의 담벼락도 벼루를 만드는 보령의 까만 돌(烏石)로 쌓았다. 좋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 대여섯번씩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잘 모르다보니 수백만원짜리 소나무를 죽이기도 여러차례. 알고보니 물빠짐에 문제가 있었던 것. 실패를 경험삼아 배수시설은 특별히 잘 갖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알리지 않았지만 10~15년 지나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최근에 제주도 한중일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도 한 이성곤 화백과도 인연이 닿아 상설 전시장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태양의신부’ ‘옥탑방 왕세자’ ‘뿌리깊은 나무’ ‘무사백동수’ ‘몽땅내사랑’ ‘꽃보다 남자’ 등 인기드라마에 벽초지수목원은 인기 촬영장소다. 국내뿐아니라 일본, 중국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온다. 방송국 관계자들과 기자들도 자주 찾아와 자체 워크샵 등을 할 만큼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작년 겨울 처음 시도한 야간축제는 환상적인 분위기로 올해도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올해는 규모를 조금 더 늘려 11월부터 벽초지수목원은 몽환적인 꿈에 빠지게 된다. 메인 정원인 퀸스가든의 나무와 각종 조형물에만 형형색색의 은하수 조명 200만개가 설치된다 하니 그 화려함이 어떠할지 기대가 된다.
어려움이 끝났다고? 그렇지는 않다. 수목원을 가꾸면서도 이웃, 관련부서들과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수목원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가까운데도 안내표지판과 도로 정비가 부족하다. 박 대표는 파주시에 여러차례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니 잘되리라 믿는다고.
“새소리에 잠이 깨는 곳이죠. 지리산에 살던 시인이 와서 거기보다 새가 많다고 놀라더군요. 여기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으니 이제 그저 감사하며 하나씩 헤쳐 나가야죠.”
처음 수목원을 가꿀 때는 반대했던 아내도 이제 자주 이곳을 찾는다. 서른 일곱이 된 큰아들은 수목원 일을 돕고 있다. 결혼한 둘째아들이 낳은 손주들을 데리고 수목원을 걸을 때가 정말 행복하다는 박정원 대표. 고단한 시간이 많았지만 자연에서 삶의 행복과 일의 성취까지 얻은 그의 얼굴이 편안해보였다.


| 500만송이 국화 화려한 자태, 4색 매력, 계절축제 환상이야 |
| 벽초지수목원은 자연만으로도 사계를 느낄 수 있지만 색깔 다른 축제로 색다른 계절을 경험하게 된다. 4~5월에는 봄향기 가득한 ‘튤립축제’.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직접 수입해온 100여 종의 다른 튤립과 야생화, 알뿌리 꽃들을 즐길 수 있다. 백합향기에 취하는 여름축제 ‘알뿌리&백합축제’. 6~8월 약 10만개 이상의 백합이 수목원을 향기로 채운다. 가을에는 단연 ‘국화축제’. 9~11월 80품종, 500만송이 국화들이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파리의 에펠탑, 버섯모양, 하트모양 등 여러가지 테마의 국화모형의 포토존이 준비돼있다. 추운 계절, 눈의 호사만으로도 겨울이 기다려진다. 12~2월 겨울 ‘조명축제’. 국내 최초의 오로라광장은 LED빛과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북극의 오로라를 보는듯한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


| 유럽과 한국 전통의 공간이 한자리에 |
| 벽초지수목원은 한국식 정원과 유럽식 정원인 ‘더솔(the sol)’(sol은 스페인어로 태양이라는 뜻)로 이루어져 있다. 유럽식의 조각공원은 유럽의 유명 조각상들과 분수대로 꾸며져 있으며, 체스가든, 돌아가는 공분수대가 있다. 가장 유명한 벽초지는 수많은 드라마와 CF의 촬영지로서 수목원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 파련정은 한국의 미를 최대한 살린 정자로 수많은 사극 등 방송을 통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