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문화를 통해 '효도' 일깨우는 고양문화원 김우규 부원장 '경기도 문화인상' 수상

고양문화원 부원장으로서 그리고 ‘선공감 김감역 상여·회다지소리 보존회’ 회장으로서 고양시의 전통 장례문화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김우규<사진>씨. 그는 2010년 2월에는 독일의 비스바덴 카니발에 초청되어 고양의 상여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왔다.
또한 선공감 김감역 상여·회다지소리 공연을 통해 ‘효도’의 의미와 실천을 일깨우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8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광화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제를 거행해 큰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인생 고희를 넘긴 그가 불굴의 의지로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선공감 김감역 상여·회다지 소리는 고양시 송포지역 김녕김씨 문중의 선대조인 김성권의 장례의식을 재현한 것이다. 김우규씨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 고모들로부터 선공감에서 감역 일을 하며 선정을 베풀었던 존경받은 선조의 이야기를 늘 들으며 자라왔다.
“감역관을 지낸 선조께서는 밥 지을 때가 되면 하인들을 데리고 선산인 도당산에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는 집이 있으면 하인들을 시켜서 곡식 몇 되박을 갖다주었다”며, 한 번에 많이 주지 않은 것은 곡식이 넉넉하면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김감역 선조께서 홍제동 고개를 넘어올 때 최고 어른으로 대접 받았고, 고양군 군수의 자문 역할 책임자로 있으면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렇게 선정을 베풀어서일까,
김성권의 장례식 행렬에 만장기가 250여 개에 이르렀고, 운구행렬이 5리에 달할 정도로 조문객이 많았다고 한다. 선조의 덕행과 그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장례식에 대해 들어왔던 것을 오늘날 그가 재현해 낸 것이다.
1650년경 대화동에 정착한 김녕김씨의 자손이 크게 번성하였으며, 1780년대 제19세 선조의 효행이 지극해 정려문(旌閭門)을 하사받았다. 6.25전쟁 전까지는 붉은칠을 한 정려문이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인근에서 가장 큰 기와집이었던 그의 집에 인민군 본부가 들어섰다.
“주위에서 100칸짜리 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큰 집이었는데, 인민군 본부가 들어섰으니 미군이 그대로 둘 리가 없었죠. 가족들이 모두 피난가 있는 동안 불 폭탄을 터트려서 모두 불타버린 거예요.”
1961년부터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경찰공무원을 지낸 후 퇴직한 김우규씨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송포지역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송포호미걸이 예능보유자였던 고 동관 김현규 선생과 함께 문중 전통 장례식을 복원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장례문화는 살아 있을 때 효도를 다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며 자라나는 학생들과 젊은층들에게 선공감 김감역 상여·회다지 소리 공연을 접하게 함으로써 삶과 죽음, 효도와 불효를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제작비가 1억원 이상 드는 전통상여가 꼭 필요했다. “꼭두 하나, 매듭 하나도 몇 십만원이었다”며 조선왕조 왕실관련 물품 전문 제작자이며, 현재 고양문화원 이사인 이강연씨(가마장)를 통해 실비로 전통상여를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큰 어려운 점은 경비문제”라고 한다. 전통상여를 만들 때도, 비스바덴에 공연단을 이끌고 갈 때도,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 연습을 할 때도 늘 생각 외로 많은 경비가 필요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사재를 아끼지 않았다. 훌륭한 조상의 후손으로서 조상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상여소리를 보전하고, 조상님의 업적을 계승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사촌까지 13명의 남매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유독 김우규씨가 어릴 때부터 조상님에 대해 물어보길 자주 했다. “할머님이 호랑이 같으신 분이었는데, 제가 응석부리며 조상님에 대해 여쭤보니까 고모님들까지도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족보 연혁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우리 전통 장례문화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임진왜란과 36년간의 수탈했던 일본에게 우리 민족처럼 효도를 하며 그릇된 야욕을 없애라“는 뜻을 전하고 싶고,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에 우리나라 5000년 역사전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김우규 부원장은 “6.25전쟁 후 서양문화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우리나라 예의도덕윤리, 효자 효녀 효부가 일순간 소멸되고 말았다”며 ”전통 장례의식을 보며 효도의 중요성을 깨달아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막대한 사재를 털어 전통 상여를 직접 만들고 그 상여를 들고 독일 카니발로 간 그 뚝심이라면 모든 해낼 수 있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