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쓴 달빛마을 고상만 씨 인터뷰

▲ 고상만 전 조사관은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상근간사로 시작해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부장,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최근까지는 서울시교육청에서 감사관을 지낸바 있는 고상만 씨. 지역에서는 시민회 운영위원, 입주자대표회장, 본지 편집위원까지 맡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가 최근 몇 달동안 한 사건에 얽힌 진실규명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선국면과 맞물리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사건. 바로 그가 의문사위원회 활동당시 전담 조사했던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 논란이다. 
지난달 26일 고상만 씨는 사건내용을 담은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이라는 책 한 권을 발표했다. 두 자식을 둔 아버지인 그가 서울교육청 감사관직까지 내놓으면서 말하고자 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화정 달빛마을에서 고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출간한 책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책의 서두에도 밝혔지만 원래 이 사건에 대해 쓸 생각이 없었다. 올해 고 장준하선생의 묘지이장과정에서 두개골에 상흔이 발견된 것이 전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저에게 많은 전화가 걸려왔지만 국가기록원에서 조사기록을 찾으라고 답하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 기록이 70년간 비공개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결국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장준하사건의 진실이 묻혀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두 달 동안 집필에 매달린 이유다
 
고 장준하선생은 1975년 당시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추락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문사위원회 조사 당시에도 ‘진상규명불능’으로 결정된 사건을 다시 제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건에 대한 조사는 완벽하게 이뤄졌다. 단 유골조사와 사건에 대한 국가정보기관의 비밀문서 확보, 이 두 가지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진상규명불능’으로 남겨둔 것이다. 이미 유일한 목격자였던 김용환 씨의 진술이 허위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실족사가 아니라는 결론까지 낼 수 있었지만 만약 타살이라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백범김구선생이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졌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고 있지만 암살의혹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진상규명불능’은 나중에라도 두 가지 의문점에 대한 실마리가 마련되면 바로 국가차원에서 재조사가 가능한 결정이다.
이번에 유골감정이 이뤄지면서 두 가지 의문 가운데 하나가 해결됐다. 두개골에서 상흔이 발견되고 타살이 의심되는 이상 국가차원의 재조사가 꼭 필요하다.

재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는 것은 부분은 어떤 것인가
유골에 대한 정확한 약물검사가 필요하고 장준하선생 사망당시의 중앙정보부 중요상황보고문 및 보안사령부에 보고된 16절지 텔레타이프(인쇄전신) 보고문도 조사해야 한다. 이 부분만 확보된다면 이 사건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고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타살로 보고 있는가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실족사인지 공권력에 의한 타살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결론내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밝혀야 될 진실이 있다면 마땅히 나서서 밝혀주는 게 민주주의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장준하라는 걸출한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유족들이 그 죽음의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의문사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인을 규명해줘야지 유족들의 요구를 귀찮아하거나 떼쓴다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장준하 사건 외에도 150여건의 군 의문사를 담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의문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학생운동을 할 당시 함께했던 선배 한 명이 2시간 30분 실종 끝에 숨진 채 사망했다. 죽음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싸우다가 결국 학교에서 제적되고 감옥에 갔다 오면서 나처럼 힘이 없어 억울한 일을 겪는 이들을 위해 인권운동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그 후 민가협 간사,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활동을 통해 재야에서 의문사에 관한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도 참여하게 됐다.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기준이 있다. 군 의문사의 경우 대부분 자살인 경우가 많은데 국방부에서는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지 누가 줄로 맸는지 여부를 판단해 자살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살을 했다면 왜 자살을 했는지를 규명하는게 중요하다. 군에서 자살을 했다면 누군가로부터 구타를 당했거나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지 않겠나? 이런 부분에 대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장준하사건의 진실규명이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준하사건에 대해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미친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논쟁은 한심하게 과거문제로 싸우는 게 아니다. 무려 37년 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싸워오고 있는 과정들은 우리나라가 정말 훌륭한 민주주의국가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게 매우 모범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다. 또한 향후 제,2제3의 억울한 죽음도 막는 매우 의미 있는 싸움이다. 당연히 국민들이 지지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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