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인 비율 전국 최고' 고양의 새 정치 흐름 읽기
돈과 인맥 얼키고 설킨
남성 위주 정치에 실망
여성은 깨끗하고 성실
고양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성 정치인의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다. 여성의 정치 활동이 예전에 비해 두드러진 것은 물론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은 바 있다. 가령 비례대표의 경우 1번부터 홀수번호에 여성을 배정하는 제도, 강제성을 띄지 않는 권고사항이긴 하지만 여성의원 30% 할당제도 등은 여성의 의회 진출을 도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전국에 적용되는 것으로, 고양에서의 여성 정치인의 높은 활약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여성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 이 시점에서 고양에서 여성 정치인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 국회의원 3명·시의원 11명이 여성
고양은 한명숙이라는 첫 여성총리인 배출해낸데다 여성시의원 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다. 제6대 고양시의회 30명중 여성 의원이 11명이 여성이다. 전반기에는 김필례, 후반기에는 박윤희 의원이 시의회의장을 차지했다.

지난 1991년 4월 15일 출범한 시의회는 현재 제6대 의회에 이르기까지 점차 여성의원의 비율을 늘여왔다. 제1대 고양시의회에서는 의원 15명 중 여성의원이 없었다.
38명이 활동하던 제2대 고양시의회에서 여성정치인으로 처음으로 이순득 의원이 시의회에 진출했다. 제3대 고양시의회에서는 재선의 이순득 의원 외에 김유임·김소희 의원이 가세함으로써 31명의 시의원 중 3명의 여성 정치인이 활동했다.
2002년 제4대 고양시의회에 진출한 시의원은 32명으로 이중 김유임·김태임·김혜련·박윤희 등 4명이 여성의원이었다. 고양시의회 전체의원중 여성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12.5%에 불과했지만, 당시 전국 평균 2.2%보다는 훨씬 높은 편이었다. 제5대 고양시의회에서는 31명 시의원 여성 의원의 수가 6명으로 늘어났다. 재선의 김태임·박윤희 의원 외에 김경희·김영선·김필례·박규영 의원이 의회에 새롭게 진출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전국 평균 13.7%에 비해 고양시의회에서 여성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19.4%로 상대적으로 높았다.
여성 국회의원을 고양만큼 많이 배출한 곳도 드물다. 17대 총선에서 고양시 4개 지역구 가운데 여성의원이 절반을 차지했다. 17대 총선 때 여당의 한명숙 총리와 김영선 한나라당 의원이 나란히 당선된 것. 18대 총선에서는 일산서구에서 김영선 의원이 4선에 성공해 4개 지역구에서 유일한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다가 19대 총선에서는 4개 선거구중 김태원 덕양을 지역구를 제외하고 3개 선거구에서 심상정·유은혜·김현미 국회의원이 당선됐다. 지역구에서 75%의 여성 국회의원을 가진 곳은 고양이 유일하다.
경기도의회에서 고양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의 활약도 눈여겨볼만 하다. 제8대 경기도의회 고양 지역구 6석 중에 김유임·송영주 등 2명이 여성의원이다. 경기도의회 전반기에 김유임 의원은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위원장, 송영주 의원은 건설교통위원장을 맡아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 젊은층 많고 학력수준 높아
여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 없어

고양에서 이렇게 여성 정치인의 활동이 두드러진 이유는 무엇일까.
고양은 여성의 비율이 높고 30~40대의 비율 역시 높으며 학력 수준이 높다는 통계상 특징을 가진다. 이런 통계상 특징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다른 지역에 비해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을 덜 가지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남녀 정치인을 구분하지 않고 ‘정치행위’로 만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빠르게 진화시키는 토대가 됐다.
우선 고양시 전체인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 전체인구에서 여성 비율이 높은 지역이 8곳이다. 2011년 기준으로 고양시 전체 인구 96만1239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48만6818명으로 50.6%다.
그리고 고양시 인구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30~40대로, 약 40%에 육박한다. 그만큼 고양은 젊은 도시다. 젊을 뿐 아니라 학

력 수준 역시 매우 높다. 고양에서 전문대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 학부모는 44.25%에 달한다. 전국 265개 시군구 중 10위를 차지한다.
고양의 유권자들은 젊은층이 많고 시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아 ‘정치는 남성이 해야 한다’는 기존의 인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빨리 파괴됐다. 박윤희 고양시의회의장은 “고양의 유권자들의 교육 수준이 높다보니 남녀 성별을 떠나 어떠한 정치행위가 바람직한지를 보고 유권자들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경향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10년 전에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많았는데 현재는 오히려 정치는 여성이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는 비단 고양의 젊은층뿐만 아니라 노인층도 동조하고 있다. 여기에 여성의원들의 정직함이나 사심이 없음, 그리고 성실함이 유권자들에게 더 어필하고 있다”고 말한다.
● 여성이 여론 주도하는 특성에다
기존 남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도 한 몫
통계적 특징에다 신도시가 가지는 특징, 이를테면 고양에 거주하는 남성들은 주로 서울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경향이 높다는 점도 여성 정치인의 활동을 두드리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김경희 시의원은 “문화센터의 프로그램도 여성중심으로 마련되고 식당 등 고양의 자영업자들도 여성을 대상으로 영업을 잘 해야 성공한다.

여성이 지역의 여론을 주도하기 때문에 여성이 정치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그다지 없다”고 말한다. 김 경희 의원은 또한 “선거운동을 할 때 ‘수지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유권자를 만났고 선거운동원들에게도 앞치마를 입혔다. 누구 엄마라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부각시키니 우리 이웃이 시의원을 한다라고 인식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윤희 의장은 “수다를 떨어도 같은 여성끼리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다. 여성 의원들이 여성 유권자들에게 접근하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있다”고 했다. 유은혜 국회의원도 “같은 여성, 혹은 엄마끼리 공감할 수 있는 꺼리가 많다. 육아나 학교문제를 놓고 여성 유권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남성 정치인의 기존 정치행태에 대한 반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김경희 의원은 “여성 의원들이 뒷돈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형성되어 있다. 인맥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남성의원에 비해 여성의원은 인맥보다 일 자체에 집중한다”며 “여성이 정치를 하면 깨끗하

고 성실히 활동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문정 고양파주여성민우회장은 “민우회가 시정감시 차원에서 의회경청을 한 결과 남성정치인들 위주의 의사결정구조에서는 주부들이 현실에서 겪는 불편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고양의 여성단체들이 계획적으로 여성을 의회에 진출시키려는 노력도 고양에서의 여성 정치인의 활동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한 몫 했다. 지방자치가 시작될 1990년대 초 고양여성민우회 고양 YWCA 등 여성단체들이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청원 운동이 한계에 부딪히자 여성이 직접 ‘정책결정구조’에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성단체들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꾀했다. 여성단체는 기초 의원으로 여성들을 발굴하고 추천했으며 선거운동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이들을 지원했다. 이 때인 1998년 제3대 고양시의회에 진출한 가장 대표적인 의원이 당시 고양시 여성민우회지역자치위원이었던 김유임 도의원과 김소희 전시의원이었다. 이같은 맥락에서 박윤희·김혜련 시의원도 제4대 고양시의회에 진출했다.
김유임 도의원은 “90년대 초 지방자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정치 세력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있었다. 그런데 여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고양시에서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 같다. 이런 토양에서 한명숙 전총리 같은 여성 정치인이 고양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