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기네스 ⑦최초의 교회 ‘행주교회’

▲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의 선교활동에 감화된 신화순 등 신자들에 의해 세워진 행주교회의 예전 모습. <사진 제공 : 행주교회>
 

한국 기독교 전래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1859~1916)에 힘입은 바가 크다. 고양지역의 최초 교회인 행주교회의 설립 역시 언더우드 선교사의 선교활동에서 출발한다. 1890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주선으로 전도사 신화순, 도정희 등이 와서 복음을 전하고 한귀련의 집에서 10여명의 신자가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행주교회는 그 출발을 알렸다.


특히 신화순은 질병이 창궐한 조선에서 헌신적으로 의료 선교를 실시하는 선교사에게 감동을 받고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믿음생활을 시작했다고 전한다.
행주교회 설립에 큰 역할을 한 신화순은 언더우드의 사역지인 정동에서 서대문으로 나와 연희동 고개를 너머 고양군 행주지역을 전도했다. 이후 언더우드가 지역을 순회 방문할 때는 어린 아이들이 언더우드를 환영하는 찬양을 강변에서 부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다.
그런데 1928년에 발행된 ‘조선예수교 장로회 사기’에서는 행주교회의 출발을 1894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서 ‘1894년에 선교사 원두우는 전도의 방침을 확장하여 서상륜, 김흥경, 박태선, 유흥렬 등으로 경성지방을 전도케 하고 신화순, 도정희, 이춘경 등으로 고양 김포 등지에 전도케 하니 4, 5개의 교회가 신설되고….’라고 기록한다.


‘조선예수교 장로회 사기’에서는 교회가 신설된 것은 1894년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한 4,5개의 교회 중에는 행주교회가 포함된다. 물론 그 이전에 전도인들이 복음을 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행주교회 설립에 대한 기록은 언더우드의 부인 릴리아스 홀튼이 지은 저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행주였다. 이곳은 서울에서 10마일 가량 떨어진 강가의 지저분한 어촌이었다. 이곳에는 콜레라가 유행하던 직후인 1895년 가을에 신화순이라는 조선 사람의 가르침을 통해 전도가 시작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무튼, 사기나 언더우드의 기록에는 행주교회가 1894~1895년에 세워졌다고 기록하지만 행주교회는 1890년을 정식 교회 설립연도로 보고 있다. 행주교회는 지난 1990년 10월 9일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연혁소개를 통해 ‘1890년 언더우드의 주선으로 신화순과 도정희의 전도로 교회가 세워졌다’고 했다. 


행주교회가 설립된 1890년은 언더우드가 조선에 온 지 5년만이며 한국 개신교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설립된 지 3년만이다.
행주에 비교적 빠르게 복음이 전파된 이유는 행주가 가지는 지리적 요인에 기인한다. 고양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이며 한강을 끼고 있는 수도권의 요충지로서 선교사들의 순회 전도가 쉬운 지역이었다. 고양은 또한 서울에서 개성과 평양을 오가는 교통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서쪽으로는 행주교회, 북쪽으로는 1897년 고양동 지역에 고양감리교회가 세워진 후 점차 내륙으로 들어가면서 고양의 각 교회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1897년에는 점차 행주교회가 부흥하는 중에 예배당이 협소한 관계로 능곡에 거주하는 신자들이 능곡교회를 세우고 분립하기 시작했다. 1897년에 예배당이 협소하므로 행주교회는 초가 8간 예배당을 신축하기도 했다.
지금의 행주교회 위치인 행주외동 201번지에 자리잡은 것은 1955년 대지 800평을 매입해 목조함 석가28평을 신축하면서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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