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기자의 시읽기>
조말선
늙은 아버지는 내가 벗어둔 구두였네
가죽이 터져 못쓰게 된 구두
태어나기 전부터 신기 시작한 구두
아버지는 커다란 구두 안에
나를 놀게 했네
잔물결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내가 막 신고 다닌 아버지
헐렁한 뒤축이 빠진 날,
내 중심은 비틀거렸네
망치질 몇 번에 아버지는 고쳐지고
중심은 윤을 내고 일어섰네
스물의 숨막히는 푸른빛이
뒤꿈치의 물집으로 팅팅 불어
터질까 터질까 가슴 졸이던 때
다 자란 내 발을 기뻐한 아버지의 생애는
내가 부수어야 할 문
너무 조이는 구두였네
엄지발가락이 삐져나오는 구두를
벗어던졌네
속이 빈 구두는
냄새나는 가죽에 엉킨
질긴 추억을 오래 우물거렸네
조말선 시인은 65년 경남 김해출생으로 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고 다시 98년 현대시학에 시가 추천되었다. 2001년 제7회 현대시동인상수상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