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벼농사의 기원, 고양 가와지볍씨 재조명 세미나

1991년 6월 일산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일산 대화동 가와지마을에서 볍씨가 발굴되었다.
첫 발굴조사 작업은 매우 형식적이었다. 큰성과물이 없는 상태로 1차 발굴조사가 끝났고 조사단이 해체될 즈음 발굴에 참여했던 이융조 충북대 교수와 이은만 당시 고양문화원장이 반기를 들었다. 제대로 된 발굴조사 작업을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토지공사 등 개발사업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착공해야하는 상황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융조 교수 등은 일산신도시 지역의 역사적 가치와 발굴조사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끈질기게 설득했고 2차 발굴조사 작업을 위한 시간과 예산을 확보했다. 당시 발굴에 참여한 50여명의 충북대 학생들은 초가 한 채, 방두칸에서 무려 102일을 숙식하며 볍씨 107알을 찾아냈다.
5000년전 한강하류 고양땅에 정착해 새로운 문명을 꽃피웠던 한반도 인류의 진화를 증언하고 있는 가와지볍씨. 발굴 이후 20여년 동안 제대로 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소중한 기록들이 2013년 이날 다시 세상을 향해 또렷한 목소리를 냈다.
“오늘 벌어진 세미나는 학술토론회가 아니라 결의대회같다”는 최성 시장의 표현처럼 29일 킨텍스 고양600년 기념 학술세미나 현장은 소중한 역사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자부심으로 달아올랐다. 모두가 가와지볍씨의 재발견을 가슴벅차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가자 입을 모았다.
한반도 일본 벼농사 전파 입증
고양 가와지볍씨의 발굴로 한반도 벼농사의 기원은 청동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고, 기존 일본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파되었다는 학설을 뒤엎고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벼농사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자료가 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일산신도시 문화유적 발굴조사와 가와지볍씨 발굴의 의미에 대해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이 가장 먼저 발제를 전했다. 이융조 이사장이 최근 수술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우종표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이 대독했다.
최정필 세종대학교 명예교수는 농경문화의 기원과 한반도 전파, 박태식 전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원은 고양 가와지볍씨의 특성과 가와지볍씨가 한반도 선사시대 농경에 미친 영향, 김주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고양 가와지볍씨 출토지(토탄층)의 고고지질학적 환경에 대해 각각 설명했다. 1부 발제에 이어 2부 발제는 고양가와지볍씨의 역사콘텐츠 활용방안을 주제로 이영아 고양신문 발행인이 사회를 맡았다.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이 ‘쌀의 역사와 새로운 도시공동체를 말하다’를 주제로 출판단지가 추진하고 있는 ‘북팜시티’의 구체적인 구상에 대해 설명했다. 이은만 전 고양문화원장은 고양 가와지볍씨 발굴 당시의 환경적·문화적 배경에 대해 발제했다.
토론자로는 박동석 문화재청 활용정책과 사무관, 박한남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 안재성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회장이 참여했다.
이융조 이사장 투병 중 참석 박수
“1989년 4월 일산신도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한국선사문화연구소와 단국대학교 박물관이 1989년 8월~11월에 실시하였고, 손보기 교수(한국선사문화연구소 소장)가 단장으로 4개의 조사팀으로 구성하여 1991년 5월~9월에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현재의 고양시 일산서구 일원은 중기 구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시대까지 문화가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토탄층에서 331점의 볍씨와 씨앗, 식물자료 등 벼농사와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였다. 가와지볍씨는 여러 분석을 통해 재배벼의 특징을 지니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 연구원 이사장은 우종표 원장의 대독에 이어 쉰 목소리로 다시한번 가와지볍씨와 이날 세미나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가와지볍씨의 새로운 가치 조명이라는 영광은 제가 아니라 고양시민들이 받아야한다. 오늘 말이 안 나와도 이 말은 꼭해주고 싶었다. 충북대에 수백개의 볍씨를 갖고 있다. 가와지볍씨 박물관을 세워 고양시의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규산질 성분 확실한 증거
최정필 세종대 석좌교수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농경문화의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700만년전 인류가 모습을 나타냈다. 1만년 전부터 시작된 농경문화는 2000년전부터 보편적으로 전파됐다. 농경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문화는 지금까지도 수렵, 채집의 경제형태를 띠고 있다. 아프리카 에스키모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등이 그러하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벼농사가 양자강유역에서 1만여년 이전에 시작됐다.”
최정필 교수는 “고양 가와지에서 발견된 볍씨는 재배벼로는 가장 오래됐다. 인디카종인지 자포니카종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산동반도에서 발견된 것이 대부분 자포니카종이어서 가와지볍씨도 자포니카종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태식 전 국립식량과학원 연구원은 현장에서 새로운 주장을 펴 눈길을 끌었다. 박 연구원은 논란이 되고 있는 재생벼와 야생벼 여부를 원형을 보존하게 해준 규산질 성분으로 설명했다. “야생벼는 잔디처럼 옆으로 번져가며 자란다. 타가수분으로 종자번식을 하면서 15~20일이면 이삭이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와지볍씨는 떨어진 부위가 거칠어 재배종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한 뻘층에 들어가있는 볍씨는 쌀알이 토지미생물 때문에 껍질만 남는데 5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은 다시말해 규산이 집적돼 있다는 것이다. 쌀알이 통통히 배어있을 때 훑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박 연구원은 또한 “가와지볍씨는 품종 중 인디카형태를 나타내면서도 자포니카 계열로 분류된다. 오늘부터 이러한 종을 가와지벼로 부르고 싶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원소로리볍씨에서 종의 분화
한반도에서 발견된 야생형태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청원 소로리볍씨와 관련한 연관성도 제기됐다.
박태식 연구원은 “한반도 최고벼인 소로리볍씨는 최대 빙하기 이후 한반도가 중국대륙과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됐을 당시 이동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조상 중 남방계의 한 부류가 볍씨를 가지고 중국 남부 지역에서 해안을 따라 동북진하다가 옛 금강하류를 따라 소로리로 이동했을 것이다. 유전적변이가 큰 소로리볍씨는 빙하기 이후 지리적 생태적 격리가 발생해 오랫동안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변이가 적은 고대벼인 가와지벼로 종의 분화가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김주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원은 “일산 1, 2, 3 발굴 지역의 지표지질 변화, 볍씨 및 화분 산출 특성 연구를 보면, 가와지토탄층의 하부 갈색토탄층과 이의 상부에 나타나는 흑색토탄층의 형성시기와 토탄층에서 산출되는 볍씨는 대개 기원전 약 2000년의 서해안 중북부 지역에서 신석기 말부터 청동기의 전환기부터 나타나는 벼농사에 대한 자연환경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기웅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파주 출판도시가 고양에서 쫓겨났다. 당시 토지공사가 땅값 450만원을 제시하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며 파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출판도시가 고양으로 오게 해달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출판도시 3단계가 북팜시티다. 송포 송산의 절대농지에는 지금도 가와지볍씨의 후손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책농장의 도시라고 출판도시를 부르고 싶다. 책농사 쌀농사를 잘하면 사람농사를 잘하게 되는 그런 꿈을 고양시에서 키워보고 싶다.” 이 이사장은 현재 추진 중인 고양시와 파주를 잇는 330만5785m2(100만평)규모의 북팜시티 그림을 설명했다.
킨텍스 가와지볍씨 출토탑 세워야
“세계적인 보물인 가와지볍씨가 오늘 저를 여기에 서게 했다. 1994년 발굴 당시 50여일 비가 오는 장마에도 수고해주신 발굴팀과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미 이런 내용들이 22년전에 다 발표된 것인데 그동안 인정을 안 해주고 거짓말이라고도 했다. 22년 된 봇물이 터져나온것 같아 가슴벅차다.”
이은만 전 고양문화원장은 발굴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이은만 전 원장은 “신도시 개발에 반대하며 자살해서 상여가 군청 앞마당으로 들어올 때 200만호 건설이라는 대 명제 앞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누구하나 지켜준 사람이 없었다”며 “킨텍스 지을 때 담당자에게 여기에 가와지볍씨 출토탑 하나 세우고, 가장 좋은 자리에 박물관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아직도 실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박동석 문화재청 활용정책과 사무관은 “가와지볍씨를 보면서 과거에 배웠던 역사와 전혀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 20년전 일인데 아직도 사회적 이슈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가와지길이나 도시락처럼 고양시가 브랜드로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박한남 국사편찬위 연구관은 “아마도 교과서 속에 가와지볍씨, 고양에 관한 벼농사의 기원이 수록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부른 것 같아 교과서 진행 과정을 살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교과서 검정을 하고 있는 단계로 선사시대에 대한 교과서 기술범위까지 살펴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하지만 중등과 대학교육 현장에서는 ‘일산지구 성저리(1지역)와 가와지(2지역)토탄층에서 볍씨가 출토’라는 내용이 국사편찬위 교재에 수록돼있다”고 말했다.
안재성 고양시향토문화보존회 회장은 “고양시 북한동 1-1번지에 위치한 북한산을 고양의 역사성과 정주의식을 제고하기 위하는 상징으로 삼아야 한다. 이의 일환으로 지하철 3호선 일산선 출발역인 지축역명을 북한산역으로 교체하고, 효자동을 ‘북한산동’으로 행정동명을 교체해 북한산이 고양의 것이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각인시킬 것”을 제안했다.
토론회가 마지막에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와지볍씨는 세계적인 발견이다. 1만~1만2천년 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다. 가와지볍씨는 소로리 볍씨를 기원으로 재배볍씨임이 명확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