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독거할머니 도운 이는 72세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 전화도 가스렌지도 없는 집에 변임순(오른쪽) 할머니가 의지할 거라고는 작은 지팡이가 전부다. 전기비를 아끼기 위해 겨울에는 냉장고를 끄고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물에 담가 놓는다. 거동이 힘들어 5년간 외출을 못했다는 변 할머니에게 유일한 희망은 일주일에 3번 정기적으로 들르는 이민자(왼쪽) 할머니다.

“언니 나 왔어!”
지난 27일, 일산동구 식사동 영심마을에 사는 변임순(80세) 할머니 댁을 방문한 날. 할머니 혼자 사는 작은 셋방의 철재문을 이민자(72세) 할머니가 문 좀 열어 보라며 흔들어 본다. 귀한 것 하나 없이 노인 혼자 사는 방이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잠시 후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문이 열리자 동그랗게 등이 굽은 변임순 할머니가 바닥에 앉아 힘겹게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반긴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섭다고 항상 문을 잠그고 지낸다는 변 할머니는 다리에 힘이 없어 서있지를 못 한다.

거동이 불편한 변 할머니를 일주일에 3번 방문해 직접 만든 반찬을 전하고 말벗이 되어 주는 적십자봉사회의 이민자 할머니는 변임순 할머니를 찾는 유일한 방문객이다. 72세의 나이에 적십자봉사회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이민자 할머니는 자신도 생활이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이자 독거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봉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민자 할머니가 이날 방문한 변 할머니도 기초생활수급자이기는 마찬가지다. 5년 전만 해도 아파트 단지에서 청소를 했다는 변 할머니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청소반장에게 미움을 받고는 쫓겨나 듯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 후 관절염과 근육통으로 몸이 불편해 지고, 설상가상 같이 살던 친언니 마저 세상을 떠나자 독거노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혼자 살게 된 변임순 할머니는 근 5년간 외출을 못 했다. 2년 전 영심마을로 이사를 오고는 대문 밖으로 나가본 기억조차 없다고 한다. 몸도 아프지만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다. 변 할머니는 “일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인데 사람들이 내 꼴을 보면 뭐라고 하겠어. 창피해서 못 나가”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할머니가 유일하게 방문 밖으로 나설 때는 셋방 출입문에서 5m 정도 떨어진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이 전부다. 5m 거리지만 한손은 지팡이를, 다른 손으로는 벽을 짚고 가야 하는, 하루 중 가장 고된 할머니의 일과다.

변임순 할머니에게 이민자 할머니의 방문은 외출도 없고 찾는 이도 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민자 할머니는 정기적인 방문으로 변 할머니가 건강이 악화 되지는 않았는지 체크하고, 별다른 심경 변화는 없는지 정신건강도 확인한다. 무엇보다 요리를 할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오는 것이 방문 목적의 가장 큰 이유다.

이민자 할머니는 “언니(변임순 할머니)네 집에는 없는 것 투성”이라고 말했다. 집에는 전화가 없다. 딱히 연락할 사람도 없지만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이민자 할머니는 항상 걱정이다. 가스렌지도 없다. 변 할머니가 오래 서 있을 수 없어 요리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이 문제다. 변 할머니는 ‘이’도 없고 ‘틀니’도 없어 음식을 씹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이민자 할머니는 변 할머니를 위해 음식을 찌거나 삶아서 잇몸으로 씹히게 요리를 해온다.

“언니가 겨울에는 전기세 아낀다고 냉장고도 꺼놓고 지내면서, 사람 목소리가 그리운지 하루 종일 텔레비전은 켜 놓는다”며 변 할머니를 안타까워했다.

이민자 할머니는 일주일에 3번 방문하는 것 이외에도 한 달에 1번 적십자사로부터 쌀, 김, 밀가루, 담요 등의 구호품을 가져오고 있다. 밝고 적극적인 성격의 이민자 할머니는 변 할머니네 방문 이외에도 틈틈이 봉사활동 중이다. 오랫동안 교회 권사로 있으면서 봉사와 나눔이 이제는 몸에 밴 덕이다.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적십자봉사회원으로 한 달에 1만5000원의 적십자회비를 내가며 봉사활동에 나서는 이민자 할머니. 넉넉지 않은 생활비에 이렇게 봉사까지 하는 이유를 묻자 이민자 할머니는 “이유가 뭐 있나.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사람들 만나고 몸을 움직여야 나도 행복할 수 있어요. 새해 겨울에는 우리 같은 어려운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덜 추웠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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