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제목 외모도, 모는 택시도 별난 이사람 행신동 오병기씨

62세에 비대칭수염에 귀걸이
택시 내부 기념품으로 치장  
10여년 고양신문 통신원 활동

덕양구 행신동에 거주하는 오병기씨는 개인택시 운전기사다. 53년생, 올해 나이 62세지만 청년처럼 팔팔한 기운이 느껴진다. 넓은 어깨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얼굴은 만화책에 나올법한 털보아저씨의 푸근한 인상이다. 수염을 자세히 보니 코 밑으로 양쪽에 있어야할 콧수염이 오른쪽은 말끔하고 왼쪽만 수북하다.

“아니 수염이 왜 이렇게 났어요? 몸이 안 좋은 건 아니시죠?” 당황스럽기도 하고 걱정된 마음에 기자는 불쑥 이런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오병기씨는 허허 웃으며 “한쪽만 면도 한 거예요. 요즘 같은 시기에 손님들이 내 얼굴이라도 보고 좀 웃었으면 좋게다 싶어 이렇게 다녀요”라고 말한다. 지인들에게는 이미 ‘광대’로 소문이 나있는 오병기 택시기사는 ‘좋은하루 산악회’ 홍보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산악회 모임에서도 “자신이 빠지면 사람들이 심심해할 정도”라고 한다.

▲ 오병기씨의 택시에는 각국 여행지에서 찍은 오씨의 사진과 함께 각종 기념품들이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다.


주인이 광대인데 택시라고 평범할 리는 없다. 비대칭의 수염에 귀걸이를 착용한 오병기씨의 택시에 올라보니 휘황찬란한 실내 장식에 정신이 없어진다. 천장에는 각국의 여행지에서 찍은 오씨의 사진이 붙어있고 운전석과 조수석 앞쪽에는 각종 기념품들이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다.

오씨가 이렇게 택시를 꾸미고 다니게 된 것은 손님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다. 사진과 소품에 대해 손님과 묻고 답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심심할 틈이 없다고 한다.

오씨의 소품 중에 첫 번째 보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다. 오씨는 “이 사진이 시초가 됐어요. 제가 젤 좋아하는 정치인인데 이 사진을 택시에 붙이고 나니 타는 손님들마다 말도 걸고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 주더라고요. 그 후부터 여행사진과 기념품을 모아 택시에 붙이고 다녀요”라고 말했다.

이렇듯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오병기 택시기사는 본지 고양신문과도 인연이 깊다. 1989년에 창간한 고양신문은 창간 3년 후인 1992년에, 고양경찰서 소속 모범운전자회 12명을 교통통신원으로 위촉하는데 12명 중에는 오병기씨도 포함돼 있었다.

오씨는 “당시 이은만 고양신문 사장님이 직접 통신원증을 달아준 사진을 지금도 스크랩해서 갖고 있다”며 “고양시 곳곳을 누비면서 교통사고, 뺑소니 사고 등의 정보와 사진을 고양신문에 제보하는 역할을 하면서 자부심도 컸다”고 전했다.

▲ 오병기씨가 스크랩해서 가지고 있는 1992년 고양신문 기사. 당시 고양신문 이은만 사장이 오병기씨에게 직접 통신원증을 달아주고 있다.
“고양신문 통신원 생활도 뜻 깊은 일이었지만 그때는 모범운전자회 주최로 매년 열었던 ‘효도관광’이 우리에게는 큰 행사였다”고 오씨는 회상했다. 당시 효도관광은 고양시 치매·독거노인 80여 명을 택시에 태워 사우나에 들렀다가 필리핀 참전비 운동장에서 무명가수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오병기씨는 군대에서 22살에 운전병으로 운전대를 잡은 후 지금껏 계속 운전만 해왔다. 군 제대 후 서울에서 회사용달차를 운전했지만 복잡한 서울길이 어려웠던지 목적지에 가서 회사까지 돌아오지 못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은 후 서울생활을 접었다. 한적한 ‘고양군’에서 같은 길만 돌아다니는 버스를 운전하겠다고 이곳에 이사 온 오씨는 동해운수, 명성운수에서 10년간 운전하면서 모범운전자회에도 가입하게 됐다.

“제가 사람을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사람 복이 많았던 것 같다”며 “어디서 뭘 하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오병기씨. 그는 일산동구 지영동과 서울 불광동을 오가는 버스를 운전하면서는 장에 내다 팔 할머니들의 농산물 보따리를 버스 위로 수없이 날라 주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할머니들이 고맙다며 쌀이며 과일이며 채소 등을 한 아름씩 안겨주기도 했다. 오씨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노인들이 짐이라도 들고 버스에 탈라 치면 직접 실어주었다”고 말했다.

올해로 개인택시 영업을 시작한지 22년째인 오병기씨는 내년에는 가족과 함께 호주 시드니까지 가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슬하에 미장원 원장인 딸과 회사원인 아들을 두고 있고 아내와 함께 1급 지체장애 처남을 5년간 돌보고 있다.

오병기씨는“10년 넘게 통신원으로 활약했던 고양신문과 다시 만나게 돼 기쁘다”면서 “올해는 택시를 타는 손님들에게 더 많은 웃음을 선사하고 싶다”고 희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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