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마표 영어’ 강사 박혜숙씨

▲ 원당마을 행복학습관 영어 강사로 활동중인 박혜숙씨는 엄마들과 함께 영어를 서로 가르치고 배움을 공유하는 ‘영어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박’ 영어학원장이었다가 이제는 사찰음식 전문가
천재 소리듣던 아들에 천만원대 사교육 시켜
2번 암투병과 우울증 끝 ‘교육 아니다’는 깨달음
엄마와 함께 가르치고 나누는 영어협동조합 계획

작은 눈이 웃으면 안보인다. 짧게 자른 머리에 동그랗고 홍조 띈 얼굴을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인터뷰를 시작하니 표현이나 살아온 이야기가 장난이 아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마술로 20대 처녀가 된다는 영화 ‘수상한 그녀’의 주인공 같다고 하니 ‘맞다’고 또 눈을 감으며 웃는다.

원당마을 행복학습관 인기강사
2월부터 원당마을 행복학습관 ‘엄마표 영어’ 강사로 활동중인 박혜숙(51세)씨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광명에서 ‘지구마을영어학원’을 운영했다. 수강생 24명이 전부인 학원을 인수해 600여 명의수강생을 받기도 했다. 그는 광명의 사교육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잘나가는’ 학원계 인사였다.

“그때는 무서운 게 없었어요. 광명시에서 가장 큰 대회의실을 빌려서 설명회하면 끝나고 바로 150명이 수강생으로 등록을 했어요.”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살리고, 아낌없는 투자를 하다보니 수강생과 돈은 저절로 모였다. 그렇게 잘나가던 학원을 2006년 팔고, 영어강사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왜 그랬을까?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내 맘대로 안되는 거에요. 돈 벌어서 아이에게 전부다 털어넣었다고 할만큼 사교육도 많이 시켰어요. 그런데 갑자기 회의가 찾아왔어요. ‘그동안 내가 했던 게 교육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책 줄줄 읽는 38개월 아들
마음에 회의가 찾아오면서 몸에도 이상이 왔다. 자궁암 초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는데 이어 갑상선 3기 진단을 받았다. 몸이 아프니 다시 우울증으로 마음이 병들어갔다. 사실 그 원인의 대부분은 정성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아이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고.

박혜숙씨는 대학을 졸업하고는 바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자신의 영어과외 교사를 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우리 아들에게 36개월 이후부터 파닉스를 가르쳤어요. 하루는 치과에 갔는데 우리 아들이 영어책을 줄줄 읽으니까 병원에 할머니들 다 ‘genius(천재)’라고 외치며 난리였죠.”

박혜순씨의 남다른 사교육은 그렇게 멀리 미국에서 일찍부터 시작됐다. 학원을 운영하며 바쁜 와중에도 아이에게는 모든 걸 다 해주었다. 피아노는 광명시립 오케스트라 반주자, 풍물은 광명 최고 풍물팀, 과목마다 강남 유명 학원이나 명문대 출신 강사들을 붙였다. 당시 유행하는 ‘역사 에푸코수업’을 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주말마다 광명에서 방배동을 다녔다.

엄마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아이는 초등학교를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서 박혜숙씨의 생각대로 아이가 움직여주지 않았고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의사말 듣고 모든 사교육 중단
“반에서 5등을 해온 거에요. 그 성적표를 받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어요. 아이한테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때부터 제가 아프기 시작했나봐요.”

우울증 상담을 6개월 정도 받으러 다녔는데 어느날 의사가 그에게 말했다. “나라면 박혜숙씨와 살지 못할 거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편과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모든 문제가 박혜숙씨에게서 비롯된 거에요.”

처음엔 의사의 이런 모진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박혜숙씨는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모든 사교육을 다 중단하고,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기로 했다. 박씨는 영어강사를 하지 않기로 했고, 학원도 팔게 됐다. 비평준화였던 광명을 떠나 아이를 평준화 고등학교에서 졸업시켰다. 그리고 3년전 고양시로 이사와 화정에서 살고 있다. 그 사이 아들은 재수를해서 성공회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아들은 올해 미네소타 주립대학에 합격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아들의 입시와 유학에 대해 박혜숙씨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영어가 계층까지 구분, 안타깝다”
박혜숙씨는 영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평소 자신있던 음식 실력을 살려 사찰음식을 사사받기도 했다. 지금은 군산과 고양에서 작은 영어모임을 꾸리며 좀더 가치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다. 우선 엄마들과 함께 ‘영어협동조합’을 만들 계획이다.

“영어소외가 사회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잖아요. 지역의 엄마들이 영어교육을 받아서 서로 가르치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영어협동조합을 생각하게 됐죠.” 그의 새로운 도전과 가치있는 삶을 찾는 귀결이 아름답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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