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항 찾은 고양시 자원봉사자들

고양자원봉사센터 20명, 밥차 봉사

까만 얼굴 유가족에 “같은 부모마음”

안산자봉 “고양 봉사자들 많이 왔다”

 

진도항을 찾은 고양시자원봉사센터 김동균씨가 간절한 기도를 하고있다.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고양시자원봉사센터의 20명 자원봉사자들. 고양시에서는 개별 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고양시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옵니다. 안산에서 차타고도 오고, 개별로 진도로 바로 오기도 하시고. 참 감사하지요.”

세월호 참사 120일째인 13일. 고양시자원봉사센터 20명의 봉사자들이 진도를 찾았다. 안산시자원봉사센터 김종섭 주임은 고양시 시민들이 이미 많이 다녀갔다며 고양시 자원봉사센터 일행을 환영했다. 실제 현장에서 고양시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100여일째 밥차 주방을 맡았던 박영규 목사도 얼마 전까지 일산 한소망교회에서 목회를 했던 고양시민.

13~14일 고양시 자원봉사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은 안산시와 전남도 자원봉사센터의 지원요청을 받아 식사준비, 식당운영, 상황실 지원 등의 자원봉사를 했다. 봉사자들은 봉사에 앞서 잠시 진도항을 찾아 상황을 둘러보기도 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봉사자들도 안타까움을 어쩌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원하지 않아 사진촬영을 금지합니다.’

진도항 곳곳에는 사진촬영을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두 가족, 3명의 유족이 남아있다는 진도항에는 관련 지원시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가족들이 지내는 가건물을 식당, 경찰, 유관기관의 컨테이너 박스가 둘러싸고 있다. 진도항 다리위에는 많은 시민들이 달아놓은 노란 리본과 메시지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은 가족단위의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세차게 부는 바닷바람에 노란 바람개비와 풍경, 리본이 나부끼며 보는 이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처음에는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에 취재 차량, 몽골텐트가 진도항을 가득 메웠습니다. 지금은 다 떠나고, 가족 3명과 경찰, 지원팀들이 일부 남아있지요.”

진도항에서 안내는 서인영(55세)씨가 맡았다. 서씨는 대한항공 직원으로 개인자격으로만 6번이나 진도를 찾았다. 3교대 근무라 쉬는 날마다 이곳을 찾은 것이다. 매번 주방부터 진도항 주변, 하수구 청소, 빨래까지 마다않고 일을 하다 보니 만나는 이들마다 친근하게 인사를 나눌만큼 인정을 받고 있다.

서씨는 “이번에 고양시에서 온다고 하기에 아들과 함께 왔다. 아들이 이렇게 중요한 현장에 꼭 오고 싶다고 해서 함께 왔다”며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우리 아들 또래라 마음이 더 아프고, 현장 봉사가 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아빠를 따라나선 현수(17세) 학생은 설거지부터 상황실 근무까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묵묵히 봉사에 참여했다. 아직도 실종된 10명을 찾지 못한 진도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다와 항구 주변의 늘어선 리본을 쳐다보았다.

 

진도를 6번이나 개별적으로 찾은 아빠 서인영씨를 따라나선 수현 학생.
13일 가족들이 먹을 저녁준비를 맡은 자원봉사자들. ‘경건한 분위기로 봉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더라도 식사봉사를 하는 봉사자들은 진지하고 조심스런 분위기로 접시를 나르고, 테이블을 치웠다. 세탁봉사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으나 비가 오는 바람에 상황실, 밥차 운영과 진도체육관 청소 업무만을 진행했다.

 

“시군 자원봉사센터별로 지원을 하기로 했는데 고양시는 지난번 방문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이번에야 오게 됐다. 더 많은 고양시민들이 오고 싶어했지만 중앙본부에서 20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이번에도 함께 한 자원봉사자들이 진지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임해주어서 센터 담당자로서 너무 감사하다.” 고양시자원봉사센터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배성연 사무국장은 봉사자들과 함께 같은 일정을 소화하며 함께 한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14일 아침, 점심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마친 일행은 오후 2시 업무를 마치고 고양시로 출발했다. 인수받을 서울시자원봉사센터 팀들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봉사자들은 담담하게 소감을 주고 받았다.

“까만 얼굴의 가족들을 보면서 마음이 먹먹했다. 의미있는 봉사였지만 같은 부모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탄현동에 사는 남성우(45세)씨의 소감이다.

진도체육관에는 아직도 7명의 가족들이 남편과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120일이 지난 지금 가족들의 표정은 많이 자연스러워졌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눈인사도 전한다. 그러나 까만 얼굴과 눈빛만은 끝나지 않은 아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온국민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위로하면서도 바라는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진도에 1박 2일 함께 한 고양시 자원봉사자들>

권경하 김학수 김현주 남성우 남현승 서윤민 서인영 서현수 서희경 안성진 어승덕 이종필 조호준 차승은 이찬식 임홍렬

고양자원봉사센터 배성연 국장, 장혜경 팀장, 김동균 팀원

 

 

 

 

 

 

“세월호 소식 듣고 4월 18일 진도체육관을 찾았지. 그때는 난리가 아니었는데 워낙 정신이 없으니 다들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있더라구. 사람이 안그래도 마음이 강팍해지는데 인스턴트를 계속 먹으면 더 그렇지.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구.”

 

자원봉사를 자청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말에 진도체육관을 떠났던 박영규(60세) 목사. 일주일만에 다시 진도체육관을 찾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100여일 동안 유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오고 있다.

13일 고양시자원봉사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을 누구보다 반갑게 맞은 박 목사. 사실 그는 2006년부터 3년여동안 일산의 한소망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정발산동에 살기도 했던 그는 고양시와 일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전하며 봉사단을 맞이했다.

“유가족들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어. 분노가 넘치니 건드리면 금방 터질 것같더라구. 그래서 내가 정성스럽게, 조미료도 전혀 넣지 않고 만든 음식을 들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지. 그렇게 그들 안으로 들어가게 됐지.”

정성껏 끓인 전복죽 한그릇, 맛난 밑반찬에 유족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이제는 진도체육관을 떠날 수가 없게 됐다. 박영규 목사는 ‘마음이 불편해서 하는 봉사’라며 스스로의 활동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박영규 목사는 젊은 시절 중식 셰프로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인기가 많았다. 갑자기 찾아온 삶의 위기에 목회를 선택한 박 목사는 갑자기 세월호로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이 ‘그분’의 뜻이라 믿기에 끝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내가 세월호 봉사했다고 하니까 목사들이 나보고 빨갱이라고 하는 거야. 거참. 목회자들도 좀 바뀌어야지. 그저 내가 만든 음식 먹고 유가족들이 마음 위로받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힘냈으면 하는 거 그거지.”

박영규 목사가 지나가는데 유족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서로의 안부를 믿고, 어려운 이웃을 위로하는 그가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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