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연재 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김선종·김구영 부부

도둑이 허탕칠 정도의 신혼살림
1년에 이틀 쉬면서 빵집 운영
“이제는 부부의 시간 갖고파”
처녀 총각 ‘빵쟁이’들이 만나 연애를 했고 1년 만에 결혼했다. 2000만원 보증금으로 시작한 신혼생활, 그리고 결혼 6년 만에 부부는 이름난 유기농 빵집의 주인이 됐다. 현재 식사동에 제과점 ‘파비올라스’를 연 지 4년째인 김선종(41세), 김구영(39세) 부부 이야기다.
빵으로 만난 인연은 지금도 현재진행형
27살에 아내 김구영씨가 행신동의 한 빵집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다. 케이크를 만들던 김구영씨는 당시 임시 공장장으로 온 김선종씨 얼굴에서 환한 빛이 났다고 수줍게 웃었다.
“후광을 봤어요(웃음). 지금도 그렇지만 하얀 옷을 깨끗하게 다려 입어서 더 그랬을 거예요.”-아내
“나한테 콩깍지가 씐 거죠(웃음). 저도 호감은 갖고 있었어요. 주방에서 궂은일 다해가면서도 건물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들 안아주고 인사하는 모습이 마음씨가 참 예뻐 보였어요.”-남편
일 잘하는 모습에 서로가 반했다는 부부는 만난 지 한 달 뒤 정식으로 연애를 시작했고 사귄 지 11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의 말을 빌리면 정말 ‘불꽃 튀는 연애’를 한 셈이다.
그렇게 둘의 연애는 시작됐고 그 후 아내의 추천으로 남편은 같은 빵집으로 스카우트 됐다. 둘은 더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됐고, 지금은 부부가 함께 빵집을 운영한다.
“엄마, 빵쟁이랑 결혼은 꼭 말려야 해”
“지금은 안 그렇지만 20년 전만 해도 제과점 공장장들은 이미지가 안 좋았어요. 술, 여자, 놀음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서 빵쟁이 만나면 엄마에게 말려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아내는 가족들에게 남편을 소개했을 때 당연히 반대할 것을 알았다. 하지만 장모님은 서글서글한 매력의 남편에게 결국 마음을 열었다. 눈웃음을 치며 ‘장모님, 구영이 저 주세요’하고 팔짱을 끼는데 누가 허락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결혼생활은 넉넉치는 않았어도 행복했다. 양가 도움 없이 보증금 2000만원으로 정발산동에 신혼집을 잡은 부부는 세간살이도 자취할 때 쓰던 걸 그대로 썼다. 신혼 초에는 도둑이 들었는데 허탕을 치고 간 적도 있단다. 다 뒤져놓고 가져갈 게 없어 그냥 나갔더라는 것.
맨주먹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월급쟁이 제빵사 부부는 딸 둘을 낳고 알콩달콩 예쁘게 키웠다. 서로 대화도 잘 통했다. 다들 즐기며 노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부부는 퇴근도 못하고 바쁘게 일했지만 그것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부였다. 그리고 결혼 6년 만에, 그리고 빵으로 돈을 번 지 17년 만에 드디어 빵가게를 열었다. 더 늦으면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뚝심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부모님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3년 만에 갚겠다고 약속했는데 1년 반 만에 다 갚았다.
주방 다락방에 가둔 아이들,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식사동 ‘파비올라스’는 이제는 꽤나 유명해진 유기농 빵집이다. 장사가 잘돼 계산 하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다. 하지만 부부는 이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도 부족하다는 듯 각오를 다지는 모습엔 힘이 넘친다.
하지만 아이들 얘기를 할 땐 좀처럼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딸 둘(9살, 7살)에 아들 하나(4살)를 둔 부부는 힘들게 육아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핑돈다.
“장사하면 정신 없어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가게 열고 하루에 3~4시간씩 잤어요. 그래도 내 가게라는 것 때문에 즐거웠어요. 하지만 개인시간이란 건 꿈도 못 꿔요. 장사라는 게 그런 거죠. 인건비 아끼려면 저희가 직접 매장에 나와 있어야 하잖아요.”
부부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해 눈물을 흘린단다. 셋째가 생기고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장모님을 부르긴 했지만, 그 전까지 딸 둘은 가게 주방 천장에 다락방을 만들어 키웠다. 작은 TV로 만화를 틀어주고 엄마, 아빠 일하는 거 보라고 나무 창살을 만들어 줬다.
“우리보다 아이들이 고생 많았어요. 딸이 창살 사이로 ‘아빠 나가고 싶어’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라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남편 김선종씨, 이제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게 목표라며 가정적인 가장을 꿈꾼다.
“이제는 우리들의 시간이 필요해”
부부는 빵에 미쳐 살았다. 가끔 정도가 심한 게 아닐까 스스로 곱씹어볼 정도다. 부부의 빵가게는 1년에 이틀 쉰다. 부부가 같이 쉬는 날이 그렇게 딱 이틀이다.
얼마 전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큰마음 먹고 부산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부부는 빵집투어로 황금 같은 이번 여행을 보냈다. 편히 쉬고 오라고 숙박권을 선물한 직원들은 여행 중에 사장부부가 빵사진을 보내오는 통에 한숨만 쉬었다는 후문이다.
빵 만들기에만 온통 신경을 써온 부부에게 최근들어 작은 변화가 생겼다. 4개월 전 배드민턴 클럽에 가입하면서 매일 아침운동을 하는, ‘팔자에 없던 호사’를 누리고 있다.
아내는 자신만의, 그리고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 것에 처음엔 낯설어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뒤늦게나마 그 고마움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아침에 가게에 조금 늦게 나가고 혼자 동네를 산책하며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게 허세인가도 싶었지만 이렇게 나한테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스스로에게 고마웠어요.”
이제는 부부가 함께 배드민턴 운동을 즐긴다. 부부가 하루 중 빵을 생각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다. 남편은 “운동하러 가면 우리가 뭘 하는 사람들인지 잊고 홀가분하게 즐긴다”며 “집에서도 가게에서도 하루 종일 보는 사이인데 이젠 취미생활까지 함께한다”며 웃는다.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빵쟁이부부의 모습이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