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전순봉·권영춘 부부
전남 진안군 출신의 아내 전순봉(56세)씨와 충남 부안군 출신의 남편 권영춘(58세)씨는 올해로 결혼 32년차 부부다. 아내는 부녀회장, 통장, 어머니방범대 등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풍산동주민자치위원을 맡고 있다. 부부이야기 인터뷰를 위해 풍산동주민센터를 찾았던 날엔 마침 주민자치위원 심사가 있었다. 직장과 집밖에 몰랐던 성실한 남편과 지역 일을 도맡을 정도로 활달한 아내. 이들 부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마이산에서 만나 첫눈에 반해
두 사람의 첫 만남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대 첫 휴가를 나온 권씨는 동기와 함께 진안군 마이산에 놀러갔다가 전씨를 처음 만났다. 첫눈에 아내에게 반했다는 권씨. 눈 덮인 산을 함께 오르며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졌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너무 이쁜 여자가 와 있는 거예요. 물어봤더니 군대동기 후배라고 하더라구요.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권영춘
“원래 산행자리에 갈 계획이 아니었는데 친구가 지갑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서 갔다가 우연히 만났어요. 군대 복귀 후에도 계속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연락했죠.”-전순봉
휴가 나올 때마다 만남을 이어갔던 두 연인은 3년 뒤 결혼에 골인했다. 사실 친정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장남인데다가 집안형편도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전씨의 고집과 권씨의 우직한 성실함이 결국 승낙을 이끌어냈다.
“남편이 전역한 날이 마침 친정아버지 발인하던 날이었는데 군복을 입고 바로 왔던 거예요. 그전까지 반대하던 집안 분들도 생각이 많이 달라졌죠. 사촌오빠들도 ‘제 몸 하나는 간수 잘하겠다’며 좋게 봐주셨어요.”

시아버지 병수발 마다하지 않은 아내
83년 결혼한 두 부부는 서울 신월동에서 신혼살이를 시작했다. 당시 머물렀던 곳은 방 한 칸인 150만원짜리 반지하 전셋방. 돈을 빌려 결혼식을 치렀을 정도로 가난한 출발이었지만 ‘젊은 나이에 무언들 못하랴’라는 오기로 꿋꿋이 버텨나갔다. 다행히 외가쪽 친척의 소개로 남편이 대한항공에 취직하면서 집안형편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내도 삼촌이 운영하던 제과점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조금씩 살림에 보탰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데다가 시부모님까지 모셔야 하는 상황이어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당시에는 어른들 모시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는 데 행복을 느끼면서 지냈죠.”
설상가상으로 시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아내는 한동안 병수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편이 일 나간 사이 시아버지의 식사준비, 간병부터 목욕까지 다 혼자서 맡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어서 당시 살고 있던 화곡5동에서 효부상을 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어린나이라 쉽지 않았을 텐데 아무 불평 없이 묵묵히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남편은 지금도 말한다.

아내는 동네 마당발
신월동에서 화곡5동, 화곡본동으로 옮겨가며 떠돌던 부부는 결혼 14년 만에 일산 주엽동 강선마을에 번듯한 집을 마련했다. 이때가 97년, 두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다닐 시기였다. 고양시에 정착한 뒤 아내는 동네반장, 부녀회장, 어머니방범대 등 다양한 지역 활동을 하며 동네일에 앞장섰다.
“그동안 신용과 약속을 첫 번째로 생각하고 살아오다보니 주변에서 신뢰를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오지랖도 넓어서 남들이 마다하는 동네일까지 도맡아 해왔죠. 이런 면은 자식들이 좀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역시나 피는 못 속이더라구요(웃음). 자기잇속 못 챙기고 살까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애들이 착하게 컸다고 칭찬을 해주어서 다행이에요.”
바깥활동이 많았던 아내는 집안에서도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다. 자식들이 하고 싶다면 웬만해서는 다 시켜주는 편이라고 한다. “아들이 염색하거나 딸이 짧은치마를 입고 다닐 때도 다 허락해줬어요. 늦게 들어올 때도 미리 연락만 하라고 하는 식이죠. 대신 약속한 거는 꼭 지키도록 했어요.” 심지어 남편에게조차 간섭이 없어서 가끔은 서운한 적도 있었다고 남편은 말한다.
자식들을 워낙 자유롭게 키운 까닭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화곡5동에서 화곡본동으로 이사할 당시 5살된 딸을 예전 집에 두고 왔다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도 풍동으로 이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아 곤란을 겪었다. 최근에는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려다 딸이 여권기간이 만료돼 홀로 공항에서 출발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단둘이 전국일주 여행
남편은 올 5월 32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쳤다. 그동안 직장과 가정밖에 몰랐던 남편도 이제는 아내를 따라 지역 활동에 조금씩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받은 만큼 베풀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못했던 봉사활동도 하고 동네모임에도 나가보고 싶어요. 아내가 동네 마당발이다 보니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지난달에는 단 둘이서 차를 타고 보름 동안 전국일주도 다녀왔다. 영광에서 굴비정식도 먹고 목포에서 유달산도 구경하고 남해에 있는 오토캠핑장에서 캠핑도 즐겼다. “캠핑장에 갔더니 젊은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고 부러워하기도 하더라”는 남편. 아내도 “늦게나마 이렇게 여유롭게 둘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맨몸으로 시작해 32년을 쉼없이 달려온 이들 부부. 이제는 같이 드라마도 보고 호수공원도 걸으며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남편 권씨는 “가끔씩 아내 얼굴에 생긴 주름을 보면 여태껏 나를 위해 많이 고생한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며 이제는 고생없이 함께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