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용강서원(원장 이세준, 일산동구 성석동 상감천마을)에서 음성박씨 종친들과 풍양조씨 종친들 그리고 고양향교 유림 및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향제를 봉행했다. 초헌관은 윤명구전 덕양구청장, 아헌관은 유재경성균관 부관장, 종헌관은 이흥우 전주이씨 고양분원이 맡았다.
고양시에는 문봉서원과 행주서원 그리고 용강서원이 있다. 그중 고양시 동북쪽에 있는 용강서원에는 충정공(忠靖公) 박서(朴犀), 충민공(忠愍公) 박순(朴淳) 그리고 충민공의 외손(外孫)인 학당鶴塘) 조상경(趙尙絅)을 배향하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제1차 왕자의 난과 제2차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껴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린다.
용강서원에 배향된 박순은 차사로 이성계를 만나러 함흥으로 가면서 망아지 딸린 어미말을 타고 갔다. 태조가 있는 곳에 가까이 이르러 일부러 망아지를 나무에 매어 놓고 어미 말만 타고 가니 망아지는 울고, 어미말은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태조가 이상해 그 까닭을 물으니 “길 가는데 망아지가 방해가 되어 떼어놓았더니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비록 짐승일망정 지친(至親)의 정(情)이 있는 모양입니다”하고 빗대어 말하자 태조가 슬퍼하였고, 한양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박순은 돌아오는 길에 피살되고 만다.
용강서원은 영조 2년(1726)에 충민공의 외손인 조상경에 의해 함흥의 용흥강 가에 사우(祠宇)로 건립되었고, 9년 뒤에 비로소 서원으로 세워지게 됐다. 순조 때에 이르러 사액을 받았으며,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후 6·25 전쟁으로 국토가 분단되어 제사를 모실 수 없게 되자 1980년 박순의 후손인 음성박씨 종친회가 황룡산 자락 상감천마을에 있는 충민공의 부인 장흥임씨(長興任氏) 묘지 부근에 용강서원을 다시 건립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용강서원은 박순 이외에도 박순의 고조 할아버지이자 고려 때 명장으로 귀주대첩에서 전공을 세운 충정공(忠靖公) 박서(朴犀)의 위패와 용강서원을 처음 건립한 조상경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이세준 용강서원장은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주인공 박순 선생과 고려시대 몽고군에 대항해 귀주성을 지킨 박서 장군 등의 이야기는 지금도 귀감이 된다”며, “선현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장소로서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