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사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역사란 원래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될 뿐이니 아주 간단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을 문자화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 하루 24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살더라도 보고 느끼는 것은 제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기록이란 얼마나 정확한 것이며, 얼마나 중요한 일을 기록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다 필자의 일기책을 꺼내보게 되었다. 필자는 날마다 중요한 일을 기록해 온지 십 수 년이다. 10여 년 전인 2006년 11월 5일 기록을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2006년 11월 5일 일요일, 구름 많음, 오전에 박영경 선생님차로 매경당 선생님과 행주서원 추향제에 참석 함. 오후엔 [행주얼] 원고를 씀.”
지금 읽어 보니 필자에겐 중요한 사건이라서 기록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경우 무가치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중요한건 남들이 보기에 무가치한 기록으로 보일지 몰라도 필자에겐 소중한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그 날 그 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겨서 선별하여 기록해 놓은 것이니까!
역사책도 중요한 사안을 기록한다는 점에선 필자의 일기책과 별반 다르지는 않을 거라 여겨진다. 하루하루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수히 많지만 기록자는 결국 자기의 안목에 의해 중요사안을 선별하여 기록할 것이니 기록자에겐 중요한 일일 지라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무가치한 일을 실어 놓았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기록자가 가진 가치관의 잣대에 의해 하나의 일도 다른 시각으로 기록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역사란 기록자의 관점에 의해 기사의 가치와 옳고 그른 평가가 아주 다양하게 기록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곧 기록자의 가치관과 도덕성이 어떠냐에 따라 역사서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기록물의 한계성 때문에 이미 쓰인 역사서도 아전인수격으로 쓰인 것들이 다수이지만, 앞으로도 이런 역사서들이 양산되어 나올 확률은 잠재되어 있다. 결국 바른 역사서를 만들려면 바른 집필자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에 귀결되게 된다.
어떤 사람이 바른 집필자일까? 동양에선 예부터 공자 같은 사람이라 여긴다. 유명한 역사서인 [사기]를 지은 사마천도 공자의 춘추정신에 입각하여 중국역사를 기술했노라 토로하였다. 그 요점이 <태사공자서>에 나와 있다. 호수가 사마천에게 공자가 춘추를 지은 연유에 대해 묻자 사마천은 “내가 동중서에게 들으니, ‘공자께서는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추구하려는 도도 세상에 행해지지 않음을 아시고 242년간 노나라 역사의 시비를 따짐으로서 천하의 본보기로 삼으려 하셨다. 천자라도 잘못이 있으면 깎아 내리고 옳지 않은 제후들은 폄하했으며, 직분을 지키지 못한 대부들은 성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일에 관한 일을 달성하려고 했을 뿐이다.”라고 언급한 뒤, “공자께서 춘추를 지으신 것은 위로는 삼왕의 도를 밝히고 아래로는 인간사의 기강을 논해 의심스러운 것을 판별하여 옳고 그름을 분명히 했다. 유예시키던 일을 확정지어 옳은 일은 옳고 그른 일은 그르다고 하였으며, 어진 이는 어질다 하고, 불초한 자는 천하다고 했다. 망한 나라의 이름은 보존하게 하여 그 끊어진 대를 잇게 만들었으며, 피폐해진 것을 보충하고 폐지된 것을 다시 일으켰으니 가장 큰 왕도를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위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천자라도 잘못이 있으면 깎아 내리고 옳지 않은 제후들은 폄하했으며, 직분을 지키지 못한 대부들은 성토하였다.”는 말을 통해서는 권력자와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옳고 그름과 바르고 삿됨을 기록했음을 알 수 있고, “인간사의 기강을 논해 의심스러운 것을 판별하여 옳고 그름을 분명히 했다.”는 말을 통해서는 옳고 그름의 잣대가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인간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인의예지신에 입각하여 판단해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옳은 일은 옳고 그른 일은 그르다 하며 어진 이는 어질다 하고 불초한 자는 천하다고 기록한 것을 일러 공자의 춘추정신이라 부른다. 역사기록자의 자질이 공자처럼 성인 급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혹 학덕과 품성이 그에 못 미친다 하더라도 춘추정신만은 갖춘 사람이어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서는 아전인수의 시각에서 미사려구로 꾸며지는 명문장의 집합물이 되어선 안 된다. 인의예지신의 자와 저울로 헤아려 사실이 진솔하고 정직한 직필로 기록되는 정의로운 기록물이어야 한다.
어느 시대든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은 있었으므로 좌와 우도 사회 속에 혼재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각 세력의 공과도 시대 속에 혼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라도 입맛에 맞는 일만 따로 떼어내어 기록할 수 없는 것이 역사다. 현재 역사교과서 문제가 집필의 단일화냐 다양화냐에 만 매달려 있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라 본다. 필자가 볼 때 더 중요한 문제는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바른 집필방향 설정과 바른 집필자의 확보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른 집필 방향이 서지고 자격을 갖춘 바른 집필자가 참여한다면 단 한 사람이 쓰더라도 바른 역사책이 써질 수 있지만, 무수한 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쓰더라도 바르지 못한 집필 방향과 자격미달의 집필진이 참여하여 쓴다면 바르지 못한 역사책이 써질 것이기 때문이다. 단일화를 반대하는 것이나 다양화를 반대하는 것도 그 원인은 서로가 내세우는 집필방향과 집필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서로 비방과 반대로 대립만 해서는 안 된다.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방책마련에 몰두해야 할 때이다.
김백호 회산서당훈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