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우리 부부 이야기 영국인 부부 콜린과 헤더

 

영국인 레이너(Rayner) 부부가 한국에 온 것은 1년 반 전이다. 한국마사회의 기수양성 교관으로 남편 콜린씨가 채용되면서 신혼부부처럼 단출한 살림을 일산동구 백석동에 꾸렸다. 남편은 백석동 오피스텔에서 원당 종마공원까지 출퇴근하고, 아내 헤더씨는 낮 시간을 대부분 강아지와 보내며 쇼핑과 독서를 혼자 즐긴다.

50대 후반의 부부는 백석에서 단둘이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한국에 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이 부부는 과연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말 타는 사람끼리 만나 사랑
남편 콜린(Colin Reiner, 58세)씨는 리버풀 출신, 아내 헤더(Heather Rayner, 56세)씨는 웨일즈 출신이다. 둘은 경마장에서 말을 타는 기수로 일을 하다 사랑에 빠졌다. 직업이 같고 관심사가 비슷해서 서로에게 끌리게 됐고 2년간의 연애를 하면서 21세, 23세의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됐다.

아내는 딸 테리(Terry Rayner, 34세)를 임신하고 기수로서의 생활을 정리했다. 대신 영국에서 여러 가지 파트타임 일들을 하며 지냈다. 반면 남편은 계속 기수로 활동을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기수 트레이너로 전향을 해서 아직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말 못해도 문제 없어
남편 콜린씨는 “영국에서 일을 하다가 기수 교관으로 스카우트 돼 스웨덴에서 5년 정도 일을 했고 그 뒤 같은 일로 스웨덴에서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말을 못할 텐데 어려움은 없냐는 질문에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영어를 잘해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다”고 답했다. 아내가 옆에서 “나는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른다”고 하자 남편은 “공부 좀 하라”고 핀잔을 주면서 “자신은 한국말을 학생들에게 배워 조금 할 줄 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할 줄 아는 한국말을 부탁하자 기수양성 교관답게 “한바퀴! 두바퀴!”를 크게 외쳤다.

이어 “은행업무 같은 복잡한 일들을 처리할 때는 직장동료나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해결한다”고 한다. 또 “한국사람들이 외국인이라 그런지 예의 바르고 친절해서 좋다”고 했다.

외국생활 통해 부부만의 시간 더 갖게 돼
한국에서 지내니 좋은 점들이 굉장히 많단다. 먼저 교통이 너무 편리해 좋다고 한다. 스웨덴에 살 때는 거의 숲속에 살아서 어디를 가든지 차로 최소 20~30분을 가야 했는데 여기는 걸어서 10분 거리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버스나 지하철도 가까워서 이동할 때 편리하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부부끼리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남편 콜린씨는 원래 골프를 굉장히 좋아해 시간이 나면 골프를 자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골프를 딱 한 번 치러 간 후 더는 가지 않고 그 시간을 아내 헤더와 보낸다. 그 이유는 너무 비싸서다.

“한국은 골프가 다른 나라보다 두 배 이상 비싸서 할 수가 없다. 돈 낭비할 바에야 집에서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좋다”는 남편.
남편이 일하러 가면 아내는 집에서 많은 것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키우는 개(스웨덴에서 입양한 코카스파니엘)와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책은 살인 미스터리물을 가장 좋아한다. 요즘은 영국 추리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책을 읽고 있다. 또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책을 읽어도 시간이 남으면 온라인 쇼핑을 한다고 한다.

아내 헤더씨는 처음 한국의 온라인 쇼핑을 접했을 때 굉장히 놀랐다. 일단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충격이었다.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갈 필요도 없이 그냥 클릭 몇 번을 하면 바로 집으로 배달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보다 더한 충격은 배송 속도였다. 유럽에서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면 최소 몇 주일이 걸리고 늦을 때는 몇 달이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빠르면 다음날 바로 오고, 늦어도 3일 이내로 온다는 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결혼하고 이사만 14번
아무리 외국인 부부라 하더라도 삶의 스타일에 있어 일반적인 부부들과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내 부모나 형제들만 봐도 확실히 다르다. 부모님은 같은 집에서 이제 거의 50년이 다 되도록 살고 있고, 형도 한 집에서 산 지가 거의 30년이 다 돼간다. 그런데 우리는 일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사만 지금까지 14번을 했다. 또 여러 나라에서 장시간 사는 것도 드문 일이니 이런 점에서는 확실히 일반 부부들과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다른 부부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가 뭘 하고 싶어도 아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고, 어디를 가고 싶어도 아내가 안 된다고 하면 못 간다”라며 애처가를 자처했다.

누가 더 로맨틱한 편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뭐 둘 다 로맨틱한 것 같지는 않다. 남편은 “그래도 굳이 한 명을 꼽자면 나인 것 같다”고 했다. “기념일을 잘 챙기지는 않지만 간혹 챙길 때는 내가 챙기고 가끔이지만 기타연주도 하니까 말이다.”
아내도 이에는 동의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타연주에 대해 물어보자 아내는 남편이 기타연주를 할 때마다 “하~ 또 소음이나 내고 앉았네”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가 말하는 것보다 기타를 꽤 잘 친다”고 했다. 그리고 딸의 결혼식 때도 자신의 기타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미세스 로빈스’를 축가로 연주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삶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부부는 동시에 “결혼하기 하루 전”이라고 웃으며 입을 맞췄다. 한참 웃더니 이내 부부는 “행복했던 순간은 딸아이가 태어난 날”이라고 고쳐 말했다. 외동딸로 귀하게 키운 딸은 올해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딸의 결혼식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여주기도 했다.

함께 해외여행 다니는 것 행복해
부부는 주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집 근처 호수공원을 걷는다. 가끔 남편이 집에서 저녁식사(요리는 주로 남편 몫이다)를 준비할 때면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무엇보다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같이 여행 다니는 것이다. 부부는 지금까지 유럽의 각 나라는 물론 남미, 미국, 캐나다, 호주, 아프리카 등 모든 대륙의 나라들을 여행해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은퇴를 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세계여행을 할 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가본 많은 나라들 중에 호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바쁘고 각박하게 사는 영국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삶에서 여유가 배어 나와 좋았다”고 한다.

영국의 가족들과 반 년마다 만나
영국을 떠난 지 어언 7년이 다 되어간다. 그래도 가족들이랑은 6개월에 한 번씩 만난다. 부부는 영국에 가서 가족과 친척들을 볼 때도 있고,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만나 여행을 함께할 때도 많다고 한다. 내년에서 스페인에서 가족들을 만날 계획이다.

외국생활로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들은 끝까지 연락도 하고 곁에 남아있어 누가 진짜 친구인지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남편의 일 사정에 따라 외국생활을 하기 때문에 특히나 더 큰 희생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답했다. 또 “남편의 계약이 내년에 끝나지만 재계약이 되어 한국에 더 남아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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