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펴낸 이은희 작가

- 책을 짓는 고양사람들 (3)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 펴낸 이은희 작가

후곡마을에 사는 이은희씨는 쌍둥이를 포함한 세 아이를 키우며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다. 하지만 그가 필명 ‘하리하라’로 불리울 땐 얘기가 달라진다. 과학교양서 분야에서 하리하라는 하나의 명품 브랜드다. 전문성과 대중성, 그리고 상품성까지 갖춘 과학 커뮤니케이터이기 때문이다. 최근 『하리하라의 눈 이야기』라는 또 하나의 재밌는 책을 출간한 이은희 작가를 파주의 한 출판사 작가실에서 만나보았다.  

 

경력을 소개해달라.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1999년 한 포털사이트에서 개인 칼럼 페이지를 제공받아 과학에 관련된 글들을 올렸다. 요즘의 블로그 같은 공간이랄까. 소소한 과학 지식과 실험실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을 3년 동안 연재하니 독자층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 칼럼이 한 출판사의 눈에 띄어 첫 책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를 냈다. 하리하라는 인터넷에서 사용하던 ID를 그대로 필명으로 가져 온 것이다. 처음엔 별 반응이 없었는데, 1년 뒤에 상도 받고 추천도서에도 이름을 올리면서 책이 팔려나가고 작가로서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과학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전달한다는 콘셉트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듯하다. 첫 책을 낸 후 '과학저술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과학 저술 분야가 블루오션이던 시절이었다. 과학자와 저술가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다가 과학 칼럼니스트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과학언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 후로 10여년이 넘도록 이런 저런 글쓰기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 교양서가 10여 권, 어린이용 책 10여 권 가량을 냈다.

과학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초기에는 나 역시 과학자의 이야기, 과학의 놀라운 사례를 소개하는데 급급했다. 이런 게 과학이야, 신기하지? 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글쓰는 이의 입장이 아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운 글을 쓰려고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쉽게 쓰는 건 아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 어려운 이야기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과학의 이야기를 생활 속으로 끌어오기 위해 문화, 예술 등의 흥미로운 요소를 적극 도입했다. 최근에는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두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과학적 생각들을 담아내며,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과학 칼럼니스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지식전달자의 역할이 어느 곳 보다도 중요한 분야가 과학이다. 최근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명칭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과학 분야 전문 번역자들이 눈에 띄는 활약을 하며 대중과의 접촉점을 늘리고 있다. 전문 과학자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대중과의 소통 역시 과학자의 중요한 책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도권 바깥의 인문학 수요계층도 과학의 재미에 눈을 떠가고 있다. 강연과 온라인 등 매체가 다각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을 최종적으로 깊이 있게 담아 낼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책이다.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과학적 지식이나 에피소드 소개가 아니라, 과학적 사고 자체를 조금이라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지식의 전달에만 집착하면 과학이 암기가 될 수 밖에 없다. 생물학이든 물리학이든 천문학이든 과학적인 문법과 사고의 체계를 익히는 과정은 동일하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보편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험도 100% 보편적일 수 없다. 과학의 특성은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 논리성과 보편성, 그리고 해석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을 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풀리지 않을까. 물론 과학적 사고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유용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확실하다.『하리하라의 과학 24시』를 읽었다는 어떤 청소년은 “과학책인 줄 알았는데 철학책이네요.”라는 소감을 남겼다. 책을 제대로 읽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새 책을 소개해달라.
눈에 대해 일반인이 품고 있는 일상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한, 눈에 대한 꼼꼼한 여행서다. 인간에게 입력되는 정보의 80%가 눈을 통해 얻어진다. 국어사전을 보면 ‘보다’라는 말의 뜻이 스무가지가 훨씬 넘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눈은 우리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눈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나는 과연 세계를 제대로 보는 것일까와 같은 원론적인 물음을 던져보고 싶었다.

내용이 전문적이면서도 흥미롭다.
눈을 매개체로 삼아 다양하게 이야기의 소재를 넓혀가는 전략이 반응을 끌어낸 것 같다. 책을 쓰기 위해 국과수 부검도 참여해봤고, 해부학 실습실과 안과수술실에도 들어가봤다. 원래 이 책은 한겨레신문에 격주로 25회 연재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매 번 새로운 소재로 끌어가는 것이 벅차기도 했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연재를 끝나고 났는데도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예쁜 눈을 갈망하는 성형외과 이야기, 실제 맹인의 세계, 신경학과 유통이 만난 아이비전 마케팅 등이 더 다뤄보고 싶었던 분야다. 칼럼은 사실 오락가락하며 자유롭게 썼지만,  책을 묶는 과정에서 얼개를 다시 짜고, 빠진 부분을 보충했다. 칼럼을 보신 분들이라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좀 더 완성도가 높아진 창작물이다.

작가로서의 삶은 행복한가.
사실 나는 전업작가로 자리를 잡은 성공적인 케이스다. 시기적인 운도 따랐던 것 같다. 해야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니 나에겐 가장 행복한 직업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자유로운 프리랜서 저술가라는 위치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는 피드백을 전해 올 때 보람을 느낀다. 얼마전 어느 대학에 강의를 갔는데 석사과정 학생으로부터 “선생님 책을 보고 과학에 흥미를 느껴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인사를 받았다. 벌써 그런 시기가 되었구나, 하는 감회와 함께 말과 글에 좀 더 무게와 책임감이 얹혀지는 느낌이었다.

힘든 점도 없진 않을텐데. 
소속이 없으니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자기 시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작가로서의 경쟁력을 잃으면 언제고 잊혀질 수 있다는 점이 두렵긴 하다. 또한 늘 새로운 글의 소재를 찾아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남들이 볼 땐 매일 쉬는 것 같지만, 내 스스로는 하루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다는 느낌이랄까. 늘 머릿속에서 글감을 굴려야 하니 말이다.   

고양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럽나.
둘째와 셋째를 쌍둥이로 태어난 후 넓은 집을 찾아 고양으로 이사왔다. 초등학생인 첫째도 동네가 맘에 든단다. 육아와 주거의 환경이 좋다. 서울 살때는 좁거나 답답하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고양으로 이사 오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고 푸근해졌다. 이웃과 소통하며 정을 만들며 살기 좋은 동네다. 후곡마을에 다자녀 가정이 많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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