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창립 123주년 기념예배 드리는 능곡교회

경의중앙선 철길이나 자유로를 지나면서 능곡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능곡초등학교 건너편 언덕에 붉은 벽돌로 지은 웅장한 교회가 눈에 띈다. 예배당의 전체적인 외형은 하늘을 향해 모은 두 손의 모양을 모티프로 삼았다. 반대쪽에서 보면 한강을 바라보는 거대한 방주 모양이기도 하다. 123년의 역사를 가진, 고양시에서 가장 오래된 개신교 교회인 능곡교회다. 교회가 세워진 해가 1893년, 조선 말 갑오경장이 시작된 1894년보다도 한 해가 앞선다. 오랜 역사의 두께가 비로소 가늠된다. 3월 6일 창립 123주년 기념예배를 앞두고 있는 능곡교회를 며칠 일찍 찾아가보았다.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공간
안내를 받아 들어간 건물 1층에는 넓은 친교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요일에는 식당으로, 평일에는 주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개방된다고 한다. 친교실의 네 벽은 능곡교회의 123년 역사를 항목별로 일별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 패널과 함께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은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긴 역사의 든든한 자부심을 품고 열린 마음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능곡교회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기자가 윤인영 담임목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나이 지긋한 마을의 어르신들이 교회에 들러 담임목사와 허물 없이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휴식을 즐겼다. 이 역시 마을의 일상 속에서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회의 지향이 자연스럽게 응축된 광경이었다.

사랑의 빚을 갚아나가는 소명
윤인영 담임목사는 능곡교회의 역사가 곧 한국 개신교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1893년, 조선땅에 첫 발을 내딛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초기 교회 중 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개신교 선교사들은 인천 제물포를 통해 한반도에 들어와 인천지역과 평양을 거점으로 삼아 선교를 펼쳤는데, 인천과 평양을 오가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는 행주나루 인근 마을에 능곡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능곡교회는 스스로를 가장 먼저 사랑에 빚을 진 축복받은 이들의 후손으로 여기는 독특한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자연스럽게 이웃과 사회를 향해 사랑의 빚을 갚아나가고자 하는 건강한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핵심 가치의 첫 머리와 말미를 선교의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로 천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나긴 역사속에서 교회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가치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과 사회에 유익을 주는 교회가 되자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개화된 사상과 민족의식이 하나가 되어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조선 기독교 민족 계몽운동을 펼쳤던 보명학교 설립의 요람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3.1운동 당시에는 유현경 선생을 비롯한 능곡교회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고양에서의 만세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해방과 건국, 6.25 등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지역사회속에서 시대의 요구와 함께 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왔다. 무엇보다도 교회 공동체와 교육사업을 통해 지역에 뿌려진 씨앗들이 곳곳에서 건강하게 자라나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독거노인과 위기가정을 향한 특별한 관심
능곡교회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만을 자랑하는 교회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과 함께하려는 노력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구체적인 이웃 섬김으로 나타난다. 능곡교회가 섬기는 이웃은 멀리에 있는 막연한 이들이 아니다. 교회가 자리를 잡고 있는 능곡지역은 고양땅의 가장 유서 깊고 번창했던 마을 중 한 곳이었지만, 일산과 화정 등 주변 지역의 변화의 흐름에서 제외되어 현재는 발전이 가장 지체된 지역으로 손꼽힌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토박이들과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이주해온 이들이 뒤섞여 독거노인, 결손가정, 위기가정의 비율이 무척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능곡교회는 일찌감치부터 생활여건이 열악한 지역사회의 이웃들에게 믿고 기댈 만 한 든든한 언덕 구실을 해 왔다. 경로잔치, 경로대학, 사랑의 김장 나눔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 온 능곡교회의 일상이다. 지역의 700여 분 어르신들에게 독감예방접종을 실시하기도 했고, 명지병원과 협력하여 120명의 취약계층 노인들에게 의료서비스 지원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업에는 교회의 성도들 외에도 마을 주민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태곤 한다. 대외적으로는 봉사대를 조직해 벽제재활원과 희망맹아원등에 지속적으로 봉사활동도 펼치고 북한 동포 돕기, 월드비전과 연계한 국제 구호사업에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금 이 곳에서 출발하는 미래의 역사
능곡교회는 과거의 역사에 연연하지 않고 젊고 참신한 감각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40 후반의 윤인영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웠다. 윤인영 목사는 교회 신도와 비신도의 구분 없이 지역과 이웃을 위한 봉사와 교회라는 조직과 공간이 적극적으로 쓰임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당면한 현안으로는 재개발 추진으로 상징되는 지역의 변화에 대한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변화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될텐데, 그 안에서 교회가 유익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변화의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취약계층들의 고통을 보듬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겠지요.”
능곡교회가 열어 갈 새로운 미래의 역사는 여전히 지금, 이 곳의 현실로부터 출발한다. 윤인영 목사의 마지막 인사말이 그의 넉넉한 웃음만큼이나 푸근하다.
“다들 바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지친 분들이 능곡교회를 찾아와 위로와 휴식을 얻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