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과 고규홍 작가가 함께 한 화정도서관 꽃글 여행

지난 21일 저녁 화정도서관에서는 꽃과 관련된 책을 쓴 저자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인 손택수의 꽃글 여행’ 첫 모임이 열렸다. 행사가 열리는 교양교실에 들어서자 앞 테이블에 소박하게 놓여있는 흰 색과 보랏빛 꽃 화분이 눈길을 끈다. 뒤편에서는 커다란 연꽃을 송이째 띄운 연잎차가 은은한 향기를 전했다.

첫 날 손님으로 초청된 고규홍 작가는 나무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여러 권의 책으로 펴 낸 대표적인 나무 칼럼니스트. 진행은 고양에 사는 이웃인 손택수 시인이 맡아주었다. 그는 <물푸레나무>라는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고규홍 작가에 대한 소개를 대신했다.

사실 고규홍 작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거수를 소개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날 은 ‘우리 곁의 나무들’ 이라는 주제를 내 걸고는 집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작은 식물과 꽃들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요즘 아파트 울타리나 도로의 보도블럭 틈새에서 자라는 작은 꽃들을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있단다. 지름이 채 1~2mm에 불과한 꽃나리, 꽃바지, 점나도나물 등의 풀꽃을 관찰하기 위해 나이도 체면도 잊고 길바닥에 바짝 엎드리기도 한다고. 
“풀과 나의 숨결을 일치시키는 순간, 온 세상의 소리를 잊고 몰입하게 되는 때가 있지요. 풀이 뭔가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만 같아요.”
작은 생명들을 눈여겨 보게 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수령이 수백년 된 커다란 나무나, 아스팔트 틈새에서 겨우 피어나는 작은 들풀이나 다를 것 없이, 모든 생명들을 더불어 살아가며 스스로의 가치를 짓는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이치가 그렇단다. 평범한 도심의 생활 반경 안에도 이처럼 다양한 생명들이 꿋꿋하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 밝은 작가는 일련의 글과 사진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날 강의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규홍 작가가 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와 동행하며 진행한 일 년 동안의 실험에 관한 이야기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에게 나무는 무척이나 불편한 장애물에 불과했단다. 하지만 고규홍 작가와 동행하며 나무를 만지고, 소리를 듣고, 쓰다듬으면서 나무라는 존재와 소통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작가가 관찰해 낸 결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이라는 감각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대상의 다양한 실체를 똑바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각을 내려놓은 피아니스트는 오히려 촉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을 총동원해 나무를 종합적으로 인지하고 그 사유와 느낌을 피아노곡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책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란다.

강의가 열린 화정도서관은 고양시 도서관센터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네 곳의 특성화 도서관 중 한 곳이다. 이곳의 브랜드는 ‘꽃’이다. 꽃과 관련된 책들을 모으고,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지속적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시인 손택수의 꽃글 여행’ 두 번째 초대손님인 문태준 시인과의 데이트는 6월에 열린다. 2층의 휴게공간도 꽃을 주제로 한 작은 전시를 열 수 있는 멋진 갤러리카페로 리모델링했다. 꽃 피는 봄, 화려한 지식의 화원을 꿈꾸는 화정도서관도 서서히 개화하고 있다.  

 

강의를 마친 고규홍 작가(사진 왼쪽 두번째)와 손택수 시인(왼쪽에서 세번째)이 새로 꾸며진 갤러리카페에 들렀다. 양 옆의 미인은 화정도서관 사서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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