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은 현대사회의 신이다"

풍동에 문 연 순수미술 전시공간 아트스페이스 애니꼴

개막전으로 '박제된 욕망' 전시하는 박찬용 작가

지난 13일 전시공간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이 풍동에서 문을 열었다. 카페 애니골 2층에 공간을 마련한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은 고양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순수미술 전문 사설 갤러리다. 오픈 기념 전시작가로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성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펴고 있는 박찬용 작가가 선정되었다. 그의 작품은 선 굵고 힘 있는 작가의 외모를 닮은 듯 하나같이 강렬한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비판의식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섬세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박제된 욕망'이다. 전시와 작품에 대해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총들이 진열되어있어 놀랐다.
전시 제목이 ‘박제된 욕망’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폭력성을 총이라는 상징적인 소재로 표현하고자 했다. 모델이 된 총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AK 소총이다. 공산권이나 아랍권에서 많이 쓰는 소총으로 게릴라전, 또는 혁명을 상징하는 총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공산권은 이미 몰락했고, 혁명의 시대도 이미 끝났다. 두 개의 AK 소총이 대칭으로 놓여진 작품 제목은 ‘박제-농부의 총’이고, ‘미스터 빈’이라는 작품은 오사마 빈 라덴을 떠올리며 만든 작품이다. 농부도 빈 라덴도 혁명을 더 이상 꿈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인 ‘박제된 욕망’과 의미가 연결된다.

작품명 : 미스터 빈

작품명 : 농부의 총

▶ 제작 과정을 설명해달라.
철로 만든 부분은 2년전부터 만들어놓고 일부러 녹이 슬게 두었다. 나무는 강물을 타고 떠내려 온 부유 목재들을 바다에서 건져 사용했다. 세월의 흔적이 밴 느낌이 나오는 게 그 탓이다. 쇠락한 느낌을 담고자 했다. 미리 만들어 둔 소품 조각들을 올 해 조립해서 작품을 완성했다.

▶ 형태는 총이지만, 농가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연장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예전에 혁명의 주체는 농부나 노동자였다. 이제는 그들이 주체가 되는 혁명이 불가능해졌다. 세상이 체계적으로 고착되어 일체의 변화나 혁명을 시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쇠락한 혁명의 꿈을 표현했다.

▶ 반대쪽에 있는 총들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미군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에서 저격용으로 사용했던 M110이라는 총이다. AK가 제3세계의 총이라면, M110은 국제경찰을 자처하는 미군이 쓰는 총이다. 두 총이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체급이 전혀 다른 복싱선수가 맞붙는 격이다. 두 총을 전시공간의 양쪽 벼에 마주보도록 배치한 이유다.

작품명 : 골리앗의 시

▶ 총에 동물의 털가죽을 덧붙인 작품도 있다. 어떤 의도인가.
인간의 문명이 기계적으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공격성이라는 측면은 동물을 잡아 가죽을 벗기던 원시 수렵시대나 변한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본질은 동일하지 않냐는거다. 나는 늘 인간이 육식동물이라는 전제를 강하게 느낀다. 육식동물들은 숫자가 늘어나면 스스로 숫자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은 현재 엄청나게 과잉 번식을 하고 있지만 숫자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상실했다. 전쟁이나 질병이 조절의 역할을 하곤 했는데 오늘날에는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차단된 것이다. 물론 재앙을 옹호하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더 큰 비극을 피하려면 우리들 스스로 인간에게 무서운 폭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치유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저격용 총인 M110의 표면에 여러 가지 동물의 털가죽을 붙였다.

▶ ‘god’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도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의 동기가 된 작품이다. 새로 꾸미는 아트스페이스의 개막전시를 의논하러 온 김희성 대표가 저 작품을 가장 맘에 들어하더라. 총을 신전의 느낌, 또는 우상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표현했다. 과도하게 과학화된 무기들이 어떻게 보면 현대의 신이잖나.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게 신이지 다른 게 신인가. 총을 든 사람의 조준경 안에 들어간 사람은 죽고 살고가 방아쇠를 겨누는 손가락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작품명 : god

▶ ‘박제-110:6’이라는 제목은 무슨 뜻인가.
구약성경 110편 6절을 말한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성경에서 재밌는 걸 발견했다. 총 이름이 M110인데, 재밌게도 다윗의 시라고 알려진 시편 110편의 내용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라고 쓰여있다. 오늘날 총이 하는 짓과 너무 같은거다.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던 성경의 대표적인 영웅인 다윗의 이야기와 맞물리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작품명 : 박제-110:6

▶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 대해 얘기해달라.
처음 김희성 대표가 갤러리를 하면 어떨까, 하는 말을 꺼냈을 때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해 만류했지만, 워낙 의지가 있으니까 결국엔 하시더라. 고양은 인구 대비 밀도로 보자면 제일 많은 문화예술인이 사는 도시임에도 제대로 된 전문 아트갤러리가 없다. 김 대표가 그런 사정에 대한 아쉬움이 많더라. 나도 그 부분은 동감했다.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의 생산적인 운영에 대해서는 확실한 신뢰가 있다. 김희성 선생 자체가 조각을 하신 분이라서 안목이 깊기 때문이다.  

▶ 미술작품 감상이 낯선 일반인에게 팁을 준다면.
여기 왔던 꼬마가 내 작품속의 총을 계속 흥미롭게 보더라. 보기 좋았다. 누구든지 자기 소견만큼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작가들이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남준 작품은 아이들이 봐도 신기하고 재밌잖나. 일반인들도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자신감 있게 즐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술작품은 작가가 정답을 미리 감춰놓고 관람자들에게 맞춰보라고 내는 퀴즈가 아니다. 하나의 작품에 여러 개의 정답이 있는 것 아닌가.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 찾아와서 자신들만의 느낌과 생각을 발견해보시라.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

“피노와 카페 애니골, 아트스페이스의 든든한 스폰서”

외식사업의 성공 밑거름 삼아 문화공간 마련한 김희성 대표 

행복한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고양이지만 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를 제외하면 순수 미술을 만날 수 있는 전시공간이 전무하다. 작은 미술관이 흔치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으로 계산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새로 문을 연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의 경우도 공간 유지비는 차치하고서라도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데만 일년에 천만원 가량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바로 피노 레스토랑과 카페 애니골이다. 외식사업장을 운영해 얻은 수익금으로 문화공간의 유지비용을 충당하는 구조다.

문화공간 꿈 미루고 마련한 외식사업장의 성공
상업공간과 예술공간의 이상적인 조화를 실현시킨 주인공 김희성 대표는 몇 해 전까지 영남대학교에서 조각을 가르쳤다. 그는 일찍부터 전시공간의 불모지인 고양에 순수 미술을 소개하는 갤러리를 꾸미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설계도까지 완성했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갤러리에 앞서 지금의 애니골 피노 레스토랑을 차린 게 4년 반 전의 일이다. 일년 후엔 카페 애니골도 연이어 문을 열었다. 다행히 피노 레스토랑과 카페 애니골은 김희성 대표와 아내 배순교 사장의 각별한 애정과 세심한 경영에 힘입어 각각 격조 있는 레스토랑,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한 카페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며 자리를 잡았다. 

공간 구석구석을 작품을 꾸미는 정성으로
피노 레스토랑과 카페 애니골의 성공비결을 두고 남들은 고급화전략이 먹혔다고 쉽게 말하지만, 김희성 대표 부부에게는 혼신을 기울인 진실 경영의 보답에 다름아니다. 시각적 감각이 예민한 조형 예술가답게 김희성 대표는 공간의 가치를 다듬는 데 남다른 공을 기울였다. 작은 소품 하나, 꽃 한송이도 진품을 고집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구석구석에는 김희성 작가의 조형 작품도 곳곳에 숨어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레스토랑 앞을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성실함도 몇 년째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고 있다. 피노와 애니골의 안정된 경영의 이면에는 사제관계를 맺은 후 30년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운영의 파트너가 되어 준 신경훈 부사장의 수고와 역할도 무척 컸단다.

1년간의 리뉴얼 통해 갤러리 오픈의 자신감 얻어
늘 꿈꿔왔던 멋진 전시 공간의 탄생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던 김희성 대표는 선행 작업으로 지난 1년동안 피노와 애니골의 경영을 합리적으로 리뉴얼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재무구조를 면밀히 분석하고, 직원들의 근무 형태와 운영 스케줄을 재배치했다. 성과는 여실히 드러났다. 매출이 갑자기 증가된 건 아니지만, 투자되는 비용과 수익, 그리고 문화공간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를 투명하게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성과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비로소 카페의 2층을 아트스페이스로 재단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4년전 대책 없이 전시공간을 먼저 차리지 않고 외식업공간을 먼저 시작한 게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된 셈이다. 전시공간의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심했지만, 단순하게 마을 이름인 애니골의 마지막 글자를 모양을 뜻하는 꼴로 바꾸었다. 지어놓고 보니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워 만족스럽단다.

매 해 세 명의 작가에게 파격적인 지원 계획
“상업공간에 베풀어주신 고객들의 사랑을 문화적인 프로그램으로 돌려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개막전을 시작으로 지원이 필요한 미술 작가에게 지속적으로 전시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그의 말대로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에서는 일년에 세 명의 작가를 초빙하여 각각 두 달간의 전시를 열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전시 비용과 홍보비용, 오프닝 행사비까지 일체를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작가 선정의 범위는 회화, 입체, 설치미술, 사진 등 순수미술 분야로 국한된다. 초청된 작가는 갤러리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다음 전시를 위한 추천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도 고려중이다. “연령과 커리어에는 제한을 두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작가는 지양하고, 능력과 작품성이 검증된 작가 중 전시 기회가 필요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려고 합니다.”

다채로운 공간의 문화적 시너지 기대해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의 오픈 소식과 더불어, 피노 레스토랑의 새로운 변신 소식도 들려온다. 피노 레스토랑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 너무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선입견이 그것이란다. 고급화 전략이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를 깨기 위해 2층을 새롭게 꾸며 예약제 단체석을 마련한 것. 공간을 나누는 파티션은 심플한 철제 프레임으로 직접 디자인해 제작했다. 칸칸마다 살아있는 화초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화분이 얹혀진다. 공간을 가변적으로 바꿀 수도 있어서 작게는 15명에서 많게는 70명까지 독립적인 공간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품격있는 식사 명소 피노 레스토랑의 2층엔 크고 작은 모임을 갖기에 적합한 공간이, 유럽형 카페 문화를 지향하는 카페 애니골의 2층엔 아트스페이스 애니꼴이 새롭게 자리하게 된 것이다. 다채로운 공간이 장점을 발휘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복합 문화공간. 김희성 대표의 오랜 꿈이 하나하나 현실이 되고 있다.

피노 레스토랑 2층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한 모임공간으로 새롭게 꾸며졌다.

통유리 너머로는 푸르른 나무들이 보이고, 파티션에는 예쁜 식물 화분이 가득하다.

 

피노레스토랑의 2층 테라스도 분위기 좋은 명소다.

유경종 기자 duney789@naver.com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