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집『나는 언제나 술래』 펴 낸 과자장수 박명균씨

 

 19년 장사하며 영세상 몰락 생생히 목격
아무도 관심없는 얘기 나라도 쓰길 잘해”
가난한 이웃과 속터놓는 장 마련하고파
숨바꼭질 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박명균씨는 고양시 일산동구 강촌마을에 사는 과자장수다. 2.5톤 트럭 하나 가득 과자를 싣고 하루 종일 수퍼나 문구점을 돌며 과자를 판다. 아침 일곱시에 집을 나서면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거래처에 들를 때마다 주인들과 팽팽한 밀당을 한다. 이길 때도 있고 적당히 져줄 때도 있다. 그렇게 한 군데 들르면 1만원 정도가 남는다. 하지만 장사를 하며 박명균씨가 챙기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챙긴 이야기들을 모아 최근 『나는 언제나 술래』라는 책을 펴냈다.

놀던 마당에 끝까지 남아 있는 술래
책 속에는 그가 살아 온 47년 삶의 이야기가 골고루 담겨있다. 전라도 끄트머리 시골마을의 꼬맹이 ‘맹긴이’가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가난한 도시민 가정의 아이로 자라난 이야기가 서두다. 중학교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세상에 눈을 뜬 그는 마침 학교 현장을 휩쓴 참교육의 세례를 받는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본격적인 고등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친구들과 학습을 하고, 학생 인권을 주장하고, 교육 현장의 모순에 부딪혀 싸우다가 무기정학을 당한다. 이어서 대학에 뜻을 두지 않고 사회로 진출해 막노동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야기, 군대에 다녀온 후에 결혼을 하고 친구의 권유로 과자장수로 나선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이력을 이렇게 짧게 요약하는 게 미안해진다. 그가 바늘 끝 같은 세상에서 치열한 인내로 삶의 고비 고비를 버티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잃지 않고 살아 온 흔적이 책의 페이지마다 올올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삶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나는 언제나 술래’다. 친구들과 행복하게 뛰놀던 마당을 떠나 하나둘 개인의 공간으로 숨어버린 시대지만, 그는 끝까지 함께 놀던 마당에 남아 여전히 친구를 기다린다. 남들이 싫어하는 술래의 역할을 자처하며 말이다.
“글을 쓰며 열심히 내 마음을 들여다봤고, 누군가의 마음을 담아냈어요. 책까지 나왔으니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과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글쓰기의 문이 되어 준 페이스북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바쁜 과자장수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짬에 글을 썼을까? 우연히 시작하게 된 페이스북이 계기가 됐다. 일상의 감상을 담은 짧은 글에 친구들이 하나둘 ‘좋아요’를 눌러 주는 게 응원이 돼 꾸준히 글을 올렸다. 그는 트럭안에서, 또는 거래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남긴 메모에서 시작된 자신의 글을 담뱃갑 은박지를 눌러 그린 이중섭 화가의 그림에 빗댔다. 페북에 글이 쌓이자 조기축구 모임의 멤버 하나가 그의 글에 관심을 보였다. 알고 보니 1인출판사 대표였다. 

출판사 대표의 구체적인 제안으로 그는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모으는 것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진했다. 트럭 안에서 글거리를 구상하고, 하나의 장면이 머리에 포착되면 그 메시지가 품은 진심을 하루 종일 마음 속에서 굴렸다. 그러는 과정에서 차 안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울음으로 터져 나온 이야기들을 집에 돌아와 잠을 쫓아가며 글로 썼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비로소 한 권의 책이 손에 쥐어졌다.
“책을 쓰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아내와 마음을 등지게 됐어요. 하루 중 집에 들어와 보내는 짧은 시간을 글 쓰는 데 몽땅 썼으니까요. 정말 미안했지만 중간에 멈출 수가 없더군요. 멈춰버리면 영영 오해를 풀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밖에서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별짓을 다 하지만, 삶의 고단한 찌꺼기를 풀어놓아야 할 가정에선 오히려 날카로워지는 고단한 대한민국 가장의 모습을 어쩔 수 없이 그도 지녔나보다. 그렇다면 책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을 향한 사과와 화해의 편지이기도 하다.

막노동판에서 이름을 얻은 이야기
책 속에 담긴 60편이 넘는 이야기 중 인상적인 글꼭지 하나를 살펴보자. ‘바닥에 선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노가다'를 시작하던 스무 살 시절의 이야기다. 아저씨 둘과 함께 하루 일거리로 철거일을 나갔는데, 일을 시작하자마자 아저씨 한 명이 못을 밟고 말았다.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꾸역꾸역 점심시간까지 버티고 반나절 일당이라도 챙겨가려는 아저씨의 절박한 모습을 보고 철없는 그가 나섰다. “(제가) 다 해놓고 갈게요.”

애송이 젊은이의 당돌함이 인상적이었는지, 현장소장은 세 사람 일거리를 둘이 마무리한다는 조건으로 다리를 저는 아저씨에게 온전한 하루 일당을 줘서 보냈다. 그는 자기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쉬는 시간도 반납하고 일을 했다. 고맙게도 다른 한 명도 그를 도와 두 말 없이 손발을 움직였다. 신체의 극한을 넘어서는 노동으로 하루가 저물기 전에 약속된 일을 마무리한 그에게 '노가다'판 최고의 찬사가 돌아왔다. “젊은 친구가 독하네. 독해.”

그 일 이후 ‘어이’, 또는 ‘거기’로 불리던 젊은이는 ‘박명균씨’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렇게 그는 막노동판의 뜨내기 애송이에서 당당한 한 명의 일꾼이 된 것이다. 삶의 밑바닥 현장에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소리없이 몰락해가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기록
책 내용의 많은 부분은 그가 과자장수 일을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과자장수 일을 시작했을 때는 고양시 주변이 활동반경이었는데, 아파트 상가마다 수퍼가 있고, 고양에만 문구점이 350여 개 있던 시절이었다. 상황은 해가 갈수록 달라졌다. 자영업자들이 아등바등 나눠먹던 골목상권에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오면서 덩어리가 뻔한 수익을 블랙홀처럼 빨아먹어버렸다. 10여 평에 불과한 매장 한 곳 한 곳이 한 가족의 생계요 생명인데, 유통 구조의 변화에 깔려 아무 대책 없이 가게가 무너지는 모습을 그는 줄줄이 목격했다.

수퍼와 문구점이 하나둘 줄어들면서 과자장수들도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는 일을 그만둔 사람이 남긴 거래처를 넘겨받아 장사 규모를 유지하며 버티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부천, 인천, 서울 등으로 활동반경이 넓어졌다. 예전에 4명이 일하던 지역을 혼자서 돌고 있다. 누군가가 삶의 마지막 자리에 남기고 간 것들을 우직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과자장수를 한 19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대한민국 영세 자영업의 몰락의 역사가 됐다. 비명조차 못 지르고  죽어가는 소리가 박의 귀에는 들린단다. 
“일반인이 보는 것과 장사꾼이 보는 골목길 세상은 다르지요. 번듯한 아파트촌 구석구석에 밑바닥의 빈민촌이 숨어있는 셈이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이야기를 나라도 쓰길 잘한 것 같아요. 누군가 매 맞고 쓰러져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요.” 

 

밑지지 않는 장사꾼의 저력  
책이 나오자 그는 초판 인세로 받은 돈으로 몽땅 자신의 책을 사서 문구점 여사장, 수퍼 아저씨, 도매상 형 동생들에게 한 권씩 돌렸다. 피차 익숙한 구도로 자리잡은 관계들인데, 괜히 뜬금없는 짓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글의 소재를 제공한 당사자들에게 당당히 책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책을 읽게 하기 위해 나름 전략과 잔머리도 동원했다. “저자가 사인한 책 받고 안 읽으면 3년 동안 재수 없다네요”라는 농담으로 협박(?)하기도 하고, “건너편 문구점 사장님은 벌써 절반이나 읽었다네요”하면서 은근히 경쟁도 부추겼다.

두 주가 지나자 반응이 왔다. 점주들이 과자장수를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 문구점 사장은 말 없이 손을 잡아주기도 했고, 무뚝뚝하던 여사장이 커피를 건네며 전에 없던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괜히 뭐라도 하나 더 팔아주려고 마음 쓰는 게 역력한 사람도 있었다. 다들 자신들의 보잘 것 없는 이야기를 장삼이사 처지인 과자장수가 글로 남겨 준 것에 대해 감동을 먹은 표정으로 말이다. 점포 주인과 떠돌이 장사꾼의 갑을 관계가 작가와 독자의 관계로 역전됐다며, 결과적으로 책을 돌리기 위해 투자한 돈을 뽑고도 남았다고 싱글벙글이다. 역시 밑지지 않는 요령을 아는 장사꾼답다.
“내 글이 좀 당기는 맛이 있나봐요. 바빠 죽겠는데 들르는 곳마다 붙들고 이야기를 거는 통에 요즘엔 퇴근 시간이 자꾸 늦어지고 있어요.”  

사람책 읽고 만든 책
본인의 자부심 섞인 평가처럼, 그의 글에는 읽는 이의 마음을 건드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문장 자체는 중학생도 읽을 수 있을만큼 쉽지만, 평범한 문장 속에 뭔가 진심을 담아내는 나름의 '글발'이 있다.
“사람들이 웃고 우는 이유가 사실은 굉장히 단순하다고 봐요. 100군데 거래처를 다니며 사람의 감정과 상태를 관찰한 게 진짜 공부가 됐어요. 사실 책을 거의 못 읽었어요. 대신 사람책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읽은 셈이죠.”
타인의 마음결을 읽을 때는 누구보다도 겸손한 그이지만, 자신의 책에 대해 말할 때는 겸손을 사양한다.
“이 책을 보잘 것 없는 이야기라고 말하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글은 제가 썼지만, 글에 담긴 것은 책에 나오는 이들의 진심이니까요. 그걸 최선을 다해 썼으니, 이 책은 아주 가치 있는 책입니다.”

비정한 세상과 눈물로 싸우다
그는 누군가의 순수했던 이상이 세상과 타협하며 변질되는 모습에 민감하다. 하지만 타인을 향한 고발과 지적의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백을 통해 눈물을 흘리는 방식으로 발언한다.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꼭지인 ‘친구의 하루가 쏟아졌다’에서는 모진 세상에 상처받고 절망과 미움에 사로잡혔던 마음이 친구가 베푼 호의로 인해 눈물과 함께 녹아내리는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지키는 싸움에서 늘 이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악마가 된 과자장수’에서는 장사가 망하기 일보 직전에 몰리면서 인간성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악마처럼 독해졌던 스스로의 경험을 아프게 참회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향한 눈물을 무기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다시금 벼린다.
“송곳이라는 만화를 좋아해요. 세상이 다 관습에 젖어 살아도, 누구든 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 인간이 있다잖아요. 송곳처럼 삐져나오는 인간 말이죠. 그 하나가 시작점이 돼 둘이 되고, 열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반대로 하나가 없으면 열도 의미가 없는 거죠. 최초의 제대로 된 하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죠. 왜냐하면 세상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 그걸 이겨낼 힘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하나를 만나는 길 밖에 없어요.”

숨바꼭질 할 사람들 모여라
책을 낸 후 그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과 함께 이 땅의 가난한 이웃, 몰락해가는 자영업자, 숨통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인의 삶에 대해 속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고 싶단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의 꿈은 순진한 얘기로 들린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쏟아져나오는 신간 중 한 권에 불과한, 이름 없는 과자장수가 쓴, 마케팅 능력에 한계가 분명한 1인출판사에서 낸 에세이집 한 권이 도대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남들이 포기하는 자리에서 뭔가를 다시 시작하는 박명균씨, 이번에도 전략이 만만찮다.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이 책의 진짜 독자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책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기자양반 당신부터 이 책을 가슴으로 읽어달라’고 주문한다. 고백하자면, 그 주문에 내가 말려들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책을 성심껏 소개하겠노라 덜컥 다짐을 해 버렸다. 그러자마자 그는 다짜고자 트럭으로 달려가 책을 한 아름 들고 와서 내게 안겨줬다. 고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여섯 명에게 꼭 책을 전해달라면서. (고양신문 기자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명균씨의 추진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덕분에 다음날 기자는 수첩을 넘겨가며 책을 전달할 ‘고양의 주요 인물’ 선정을 하기 위해 고민을 좀 해야 했다. 도서관센터 사서, 가장 큰 지역서점의 문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실장, 고양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인문학모임의 총무의 이름을 메모했다. 그리고 참교육 운동 1세대 교사였던 작가, 고양에서 청년운동을 펼치고 있는 씩씩한 젊은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며칠 후 한밤중에 퇴근하는 그를 다시 만나 한 권 한 권 받는 이의 이름을 적은 작가 사인을 받았다. (혹시 이 기사를 읽고 왜 자신의 이름이 빠졌는지 항의하고 싶은 독자는 기자에게 메일을 주시라. 심심한 사과와 함께 책 한 권을 꼭 전해드릴 것을 약속한다. 그것도 저자 사인본으로.)


박명균씨가 책을 미끼로 불러내는 놀이의 마당에서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술래를 자처하는 이가 꽤 재밌는 사람이니 크건 작건 놀이판도 신명날 게 분명하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보다 더 재밌는 놀이가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박명균씨가 자신의 책을 흔들며 골목마다 외치고 다닌다.
“숨바꼭질 할 사람 여기 붙어라!” 

 

한밤중에 박명균 작가(가운데)의 집 앞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에서 『나는 언제나 술래』저자 사인본 증정식이 있었다. 참교육 1세대 교사 출신의 김윤용 작가(왼쪽)와 고양에서 청년모임을 꾸리며 사람도서관 리드미를 이끌고 있는 신정현씨(오른쪽)가 함께 했다. 나이로 치면 각각 열 두 살가량의 터울이다.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반가움과 감동이 있었다.

 


골목길 이야기 담은 에세이집『나는 언제나 술래』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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