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수 행복한아침독서 이사장 칼럼
승자독식 경쟁구조의 슬픈 시스템
경제수준 상승해도 행복수준 하락
미래 바라보는 독서문화운동 절실
최근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서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의 재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성들을 성적으로 비하하며 물의를 일으킨 성희롱 사건이나 대다수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며 평등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교육부고위관리의 망언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인식 수준에 대해 심각한 걱정이 됐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두 사건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사건들의 근저에 깔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치열한 승자 독식의 경쟁 구조가 괴물들을 양산하는 절망적인 시스템에 우리가 살고 있다. 슬픈 일이다.
이 사건들을 접하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서울 강남의 초등학생들을 인터뷰한 장면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매일 밤 10시가 넘도록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장면은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여기에 나온 아이들이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이런 생활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점이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우리 사회의 지배 엘리트가 되는 현실이 무척 염려된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공존하기 보다는 오로지 나와 우리 가족의 부귀영화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매진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자라 운영할 우리 사회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못하다. 미래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런 암울한 일이 비근하게 일어난다. 기업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아 구속된 현직 검사장 사건도 우리 사회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과거와 비교할 때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그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많아진 것 같아 안타깝다. 아이들은 비인간적인 교육제도 속에서 신음하며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저당잡힌 채 힘겨운 학창생활을 보내고 있다. 3포 세대를 넘어 5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은 결혼도 미루고, 결혼한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기를 주저한다. 내집 마련에 대한 꿈을 포기한 지는 오래다.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어렵게 구한 직장도 그리 오래 다니지 못한다. 한편 직장에서 밀려난 중장년세대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늘어난 노후를 걱정하며 계층 하락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형편이다. 충분한 노후 준비를 못하고 맞은 노령층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살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세대를 불행하게 만든 괴물같은 사회가 됐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파이는 커졌지만 그 커진 파이를 어떻게 나누면 모든 사회구성원이 행복할 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도 정책적 고려도 모두 부족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이 일반 국민들이나 사회적 약자의 입장보다는 기득권층의 입장에 서서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공산당이라고 주장하는 검사 출신 고위층 인사의 언행은 상식을 가진 많은 국민을 슬프게 만든다. 학창 시절에 도서관과 서점을 다니며 다양한 책을 접하기 보다는 참고서와 고시용 책들만 파고들면서 암담한 사회 현실은 애써 외면했던 이들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학창시절에 도서관과 동네책방을 다니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얘기하는 책들을 읽으며, 다양한 가치관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고가 몸에 밴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된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는 훨씬 따뜻하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독서운동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운동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책 안 읽는 시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암울하다”고 말하면서 책 안 읽는 우리 사회가 ‘생각하지 않는 인간, 태도가 없는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처럼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아이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고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아이들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꼭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 읽은 『서점은 죽지 않는다』(시대의창)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만났다. 바로 ‘후세의 현명함을 기대한다’는 말이다. 작가, 출판사, 도서관, 서점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양산업이라고 홀대받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것은 바로 후세의 현명함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혼자 살기 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려는 따듯한 마음을 간직하며 지혜롭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주 특별한 책의 도시 고양’과 같이 책 읽는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들이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

한상수 대표는
아이한테 책 읽어주면서 어린이책을 만난 것을 계기로 백석동에서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며 독서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독서운동단체이자 사회적기업인 '행복한아침독서'에서 책과 도서관으로 우리사회가 더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며 일한다. 요즘에는 동네책방에 꽂혀 매 월'동네책방동네도서관'을 발간하며 동네마다 멋진 책방이 들어서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