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방법론 관련 책 펴낸 백장현 통일시민학교 교장

흡수통일보다 점진적 합의 통일 지향해야
화해 단초 찾고 남북교류가 절대적 필요
 
북핵 문제와 사드 문제로 남북관계가 최고조로 경색된 현재, 통일의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다룬 책이 나왔다. 책을 펴낸 이는 고양·파주 지역에서 지난 6월 창립된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 산하 통일시민학교 교장을 맡은 백장현(56세)씨다. 책 제목은 ‘통일 코리아 가는 길’이고 부제가 ‘독일·예맨·베트남의 사례로 본 한반도 통일방법론’이다.

한신대 초빙 교수로 재직하면서 카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는 백장현씨는 통일 전문가다. 통일시민학교와 카톨릭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관하는 민족화해학교 강사로 통일 관련 강의를 펼치고 있다. 추천사를 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 책에 대해 ‘한 권의 책속에 통일이론과 주요 현안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통일학 교과서라고 불러도 될 듯 싶다’고 밝혔다.

백씨는 “남북관계, 통일문제는 왜곡과 편견이 난무하고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지속가능성에 빨간 불이 켜진 우울한 한국경제에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돌파구가 통일”이라고 말했다. 자본과 뛰어난 기술이 있는 남한의 경제와 광물자원과 엄청난 예비노동력이 있는 북한의 경제는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통일을 이룰 경우 새로운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백씨는 “통일은 도둑처럼 갑자기 한밤중에 오는 것이 아니다” 며 “통일은 어느 역사적인 날에 역사적인 회의에서 역사적인 결정으로 이뤄지는 한번의 행위가 아니라 수많은 이정표와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라고 역설했다.  
      
백씨는 또한 “고향을 북에 둔 부모를 두지도 않고 가족 중에 월북한 사람도 없는데 제가 왜 통일문제에 천착하는가를 돌이켜보면 저뿐만 아니라 남북한 사람 모두에게 잠재적으로 통일에 대한 열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안내서로서 이 책은 기여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백씨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     

- 현재의 북한 핵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금의 남북 상황을 ‘해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의 상태로 보고 있다. 오래치 않아 해뜨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는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사안이다. 남북 간, 북미 간 적대와 불신,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중국의 부상과 이를 억제하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남남갈등 등 모든 문제가 집약된 것이 북한 핵문제다. 따라서 풀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북한 핵문제를 잘 해결하면 이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볼 수 있다. 핵문제를 풀면 바로 통일의 중간 단계인 ‘남북연합’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지만 오히려 핵문제를 풀 수 있는 여건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구사한 대북 압박 정책으로는 남북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현상황이 입증하고 있다. 다음 정부에서는 6자 회담을 복원시켜 남북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 백장현씨는 “흡수통일론에 경도되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우리의 통일은 한반도의 현실을 점검해볼 때 ‘점진적 합의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통일문제과 관련해 국민들이 가진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남과 북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본다. 이번 책의 가장 큰 줄기는 통일 방법론에서 남과 북이 합의점을 도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통일과 관련된 편견이 강하기 때문에 그 합의가 나오기 어렵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편견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통일이 강대국의 합의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편견이다. 통일은 외부가 아닌 남북한 내부에서 먼저 이뤄야 한다. 남북한이 먼저 화해의 단초를 찾고 교류의 폭을 넓힌 다음 외부 주변 국가들로부터 양해를 받고 협력을 거치는 것이 통일의 순서다. 독일이 이 순서에 따라 통일을 이뤘다.  

또 다른 하나는 남한의 국력을 키우기만 하면 통일이 된다는 편견이다. 국내 보수파들은 남한이 북한과의 국력 격차를 더 벌려서 북한이 붕괴하면 미국과 협조해서 점령한다는, 소위 흡수통일론에 호응한다. 그런데 이 흡수통일론으로는 통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입증되고 있다. 주변국은 남북한 통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분단을 지속시키려는 한반도 주변국가의 힘을 ‘원심력’이라 하고, 남북한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려는 힘을 ‘구심력’이라 할 때,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가. 원심력이 비해 구심력이 현격하게 약하다. 이것을 역전시켜 구심력이 원심력보다 강할 때 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

 

- 우리가 독일통일로부터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독일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동안 준비를 했다. 1969년에 집권한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집권하면서부터 대동독 포용정책을 구사하며 줄기차게 통일 준비를 해왔다.

이에 비해 한국은 준비의 정도가 독일에 비해 많이 약하다. 남북한 교류협력의 기간이나 협력의 정도가 동서독의 그것에 비해 크게 모자란다.

우리에게 통일을 위한 준비는 바로 남북한 교류협력이다. 남북한 교류협력을 통해 동질성을 회복하고 상호의존성을 높이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는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 우리의 통일은 점진적인 방법으로 가야하고 점진적인 통일 방법의 핵심이 바로 남북연합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통일의 전단계로 ‘남북연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남북연합을 구성하려면 우선 정상회담이 정례화되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1년에 1번 정도는 열려야 한다. 1년에 1번 정상회담이 열리면 실무적인 일을 조율하는 남북 장관급 회담은 수시로 열리게 된다. 남북 정상회담과 장관급 회담을 통해 남북 각 분야별로 체계적인 교류협력을 제도화한 것이 남북연합이다. 이렇게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로 하여금 이러한 제도화에 얽히게끔 하면 통일에 탄력이 붙는다. 말하자면 통일의 구심력이 통일의 원심력보다 강해지는 것이다.   
 
남북연합이 오래되면 오히려 분단이 고착화된다는 보수파의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남북연합은 본질적으로 통일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이다. 남북연합의 기간이 짧으면 5년, 길어야 10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남북연합이 오래 유지되면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교류가 결국 비효율적이 되고 만다.     

- 책에서는 ‘점진적인 합의통일’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데, 지금의 김정은 체제는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한다고 보는가.
적어도 명분에서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체제는 김일성·김정은 주의를 계승한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 내세우고 있다. 남북은 2000년 6월 정상회담을 통해 최초로 통일방법에 대해 합의를 이뤘다. 그 핵심이 ‘6·15 공동선언’ 제 2항이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공통점이 있다면서 앞으로 중간 단계를 거쳐 통일을 추진해나간다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도 이 합의를 넘은 새로운 통일에 대한 합의를 내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의 행태는 2중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북한 경제가 취약하기 때문에 지원도 받고 개방을 하려는 의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자본주의에 노출되면 내부 동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제어하기 위해, 남측 용어로 ‘군사적 도발’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대통령은 보수파와 미국의 반발이 있더라도 북과 대화하려는 자세와 담력이 필요하다.

▲ ‘통일코리아 가는 길’은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 통일방법론과 관련된 통일이론을 제시하고 남북 간 주요 현안 분석 등 각론도 다루고 있다.

 

 

 

- 현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폐기하고 압박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현 정부의 이러한 대북정책은 ‘점진적인 합의통일’과 거리가 멀다. 현 정부의 이런 대북정책을 구사하는 이유를 무엇이라 보는가.

2가지로 본다. 하나는 ‘관성’이다. 과거로부터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고 그 결과로 압박 정책을 구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삼스레 남북문제를 성찰하고 접근하는 사람이 현 정부에는 별로 없다. 더구나 국정원을 중심으로 김정은 체제가 얼마가지 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현 정권이 지지기반인 보수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측면이다. 지지기반의 정서가 북한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필요하면 종북 공세를 벌이는 상황에서 보수언론이 이를 부추기면서 북한을 적대시하는 시각이 보수층을 중심으로 공고화 되고 있다.

 

- 북한과 대화하지 않고 압박정책을 펼치게 하는 기반인 ‘북한 조기 붕괴론’의 비현실성을 말하자면.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죽어서 북한의 통치자가 바뀐다 하더라도 북한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운영체제, 즉 중앙계획경제와 배급제로 대표되는 자원 배분방식이 현재 와해됐는데도 북한은 붕괴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붕괴는 이와 무관하게 북한의 통치제제가 작동이 되지 않는 상태다. 북한 지배층를 떠받치고 있는 군대 시스템, 공안 통치 시스템은 현재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다. 설령 김정은이 유고를 당하더라도 북한의 통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 책에서는 남북한이 SOC 등 전면적 경제협력을 할 때 통일비용이 줄고 통일시기가 앞당겨 진다고 했는데.  
현재 남한과 북한의 소득격차가 20대 1이다. 이 상태에서 남한과 북한이 합쳐놓는다 해서 통일이 되지는 않는다. 다시 갈라지는 것이 명약관화하다. 소득격차가 심하면 하나의 국가 공동체를 유지할 수가 없다. 독일 통일의 경우, 동독의 소득수준이 서독의 소득수준의 70%까지 다다르는데 약 17년 정도(1991년 독일 통일 이후 2008년 달성) 걸렸다. 북한이 남한의 소득수준의 5%인 현재 상태에서 소득격차를 줄이려면 전면적 경제협력을 해야 하는데 남북연합이라는 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국회 예산 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의 경우 전면적 경제협력을 했을 경우 북한의 소득수준이 남한 소득수준의 66%에 이르는 시점이 2060년이다. 그래서 남북 교류협력은 통일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통일 이후의 비용을 줄이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너무나 절실하다.

- 그러면 통일에 있어서 남북한 경제협력이 가장 큰 관건으로 봐도 되나. 경제협력 외에 다른 요인은 없나
경제협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고 그 이론적 원형이 ‘기능주의 이론’이다. 기능주의 이론을 거칠게 말하면 2개의 체제가 통합하려면 정치적 접근보다 경제적·과학기술적 접근을 해서 그 파급효과로 결국 정치적 통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 기능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노태우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발표됐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런데 경제협력만 가지고는 통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기능주의 이론의 가장 큰 결점은 정치적인 영역과 비정치적인 영역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분은 비현실적이다. 정치와 분리시 되던 개성공단 문제마저도 이제 정치적인 영역에 있다. 경제적 협력과 함께 정치적 협력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이제는 북핵문제로 대표되는 이 남북관계 현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 이 책에서 말하는 통일방법론을 요약하자면.
점진적인 합의통일을 이루기 위해 현 단계에서는 통일의 구심력을 키우는 것이 절대적이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남북한 대화와 교류가 99%이고 주변 국가의 협력이 1%의 비중을 차지한다.

대북 정책은 신축성이 있어야 한다. 협력도 싸우는 것 못지않게 역량과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경쟁하고 싸우는데 필요한 역량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러나 북한과 협력하는데 필요한 역량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부족하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물론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도발을 한다고 해서 개성공단을 패쇄하고 인도적 대북 지원을 모두 없애는 대응은 좋은 대응이 아니다. 군사적 대응을 하되 그 외의 교류는 그대로 이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한데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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