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 펴낸 신기철씨


▲ 신기철 인권평화연구소장의 신간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은 이승만의 적으로 희생된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규명하고자 했다.

[고양신문] 금정굴인권평화재단 부설 인권평화연구소장인 신기철씨가 이번에 다섯 번째 책을 내놓았다. 앞서 4권의 책이 그랬듯 이번에도 역시 국가범죄와 대량학살에 대한 내용이다.

이전의 책들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또는 전쟁범죄 등을 백과사전식으로 빽빽이 담고 있다면 이번 책은 10명의 인물에 집중했다. 500페이지에 달하던 이전의 책들에 비해 훨씬 날씬해졌고 대중적인 책이 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했던 신기철 소장은 지난 10여 년간 국가범죄의 생생한 사례들을 규명해왔다. 그리고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문을 닫은 후 지금까지 5권의 책을 냈다. 1년에 1권씩 5권의 책을 써낸 저자의 진념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위원회를 통해 수십 권의 보고서를 써냈지만 지난 과거사 기구들이 발굴한 진실을 알리지 않고 오히려 파묻은 것 같다”며 “저작들을 통해 과거사의 진실을 다시 꺼내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신작 『아무도 모르는 누구나 아는 죽음』은 ‘한국전쟁의 희생자들은 누구인가?’를 규명하고자 했다. 과거사위원회에서는 이들의 죽음이 절차상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조명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애국이나 반공이란 이름으로 저질러진 반인류 범죄뿐 아니라 희생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재조명해 명예를 복구시키고, 더 나아가 당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 활동의 정당성까지 복구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책에서 다룬 희생자 10명은 판결문, 사진, 증언 등의 교차확인을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한 자료가 명확한 이들이다. 조사 이후 10명의 희생자를 구분지어 봤더니 민주주의혁명가, 숙청군인, 항일운동가, 상식적인 시민들로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이승만의 적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이승만의 적들이 되어 산 구텅이, 들판, 무인도, 폐금광, 바다 곳곳에서 학살당했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전쟁과 이승만의 거대한 적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꼬리표처럼 달려있다.

책에는 고양 금정굴 희생자가 2명 소개된다. 어수갑과 이봉린이다. 김포의 저명한 항일운동가 어수갑은 국군의 서울수복 후 경찰의 체포를 피해 다니던 중 금정굴에서 희생됐다. 항일운동가가 해방 후에도 좌익활동이 의심된다며 다시 친일경찰 출신들에게 역 청산당했다.

오히려 더 비극적이고 억울한 죽음은 이봉린같은 사람이다. 그는 전쟁 중 인민군이 점령했던 지역에 살았다는 것 외에 처형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봉린은 지역의 유지였다. 일산금융조합에서 일했던 그는 일제에 크게 저항하지 않았으며 해방 이후에는 오히려 이승만의 지지자였다. 또한 마을에서 잘나가는 이장 역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이유는 딱 하나 국군과 함께 후퇴하지 않고 고향을 지켰던 것뿐이다.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을 ‘장자 붙은 사람은 다 죽여라’라는 구호와 함께 아무런 절차 없이 무더기로 총살했던 것.

저자는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전쟁이 발발하고 후퇴하면서 죽이고 떠나게 되는데 그 수가 두 달 만에 30만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수복하는 과정에서의 학살이다. 불과 3개월 만에 서울을 탈환한 국군(미군)과 경찰은 민간인 처단 대상을 55만 명으로 더 늘렸다. 저자 신기철은 “떠나면서 이미 다 죽였는데 어떻게 반정부 세력이 50만 명이 더 생겨날 수가 있냐”고 반문하며 “숙청 대상에는 남은 가족들을 포함해 별다른 이유 없이 돌아가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고 말했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사 문제는 현재의 과제로 지금까지 남아있기 때문이며, 지금의 국가권력이 국민을 대하는 모습이 원론적으로 그때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책에 나오는 희생자들은 정권의 대항세력, 부정부패에 맞선 군인들도 나오지만 국가권력을 지지했던 평범한 시민들도 3명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인지 저자 는 사드(THAAD) 문제를 언급했다.

“이게 보면 자기 정권을 지지하는 곳에 해가 되는 시설을 앉혀요. 그런 것들은 과감히 저지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지지자들을 수단으로 쓰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의 국민관은 국민이 보호해야할 대상이 아닌 희생시켜야 할 대상이에요.”

▲ 신기철씨가 5년 동안 펴낸 5권의 책. 출판 순서는 왼쪽부터.

지배층의 그런 정치관과 국민관의 뿌리를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식민세력으로 봤다. 그는 “친일파라는 표현은 너무 가볍다”라며 “식민세력이란 표현이 오히려 적합하다”고 말했다. 지금의 권력층이 지지자를 희생시키는 방법은 전쟁시기보다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럴만한 상황이 오면 언제든 다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세월호 사건과 사드, 그리고 ‘국민은 개돼지’ 발언이 자꾸 겹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는 지배층이 전쟁에서나 있을 법한 외부 점령자처럼 행세한다는 점으로 설명했다.

저자는 끝으로 “국가권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과거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국민 주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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