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대 학교’ 고양중학교 교육프로그램 탐구

교사들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의하며 창의적 프로그램 개발
매주 1시간 책읽기, 전 과목 책읽기 연계, 과목별 융합수업

학교가 달라질 수 있을까. 늘 부정적이었던 답을 긍정으로 바꾸는 학교들이 있다. 고양시의 혁신학교들이다. 혁신학교의 전국적 모델이 된 덕양중학교에 이어 고양중학교가 주목할 만한 결실을 맺고 있다. 고양중학교는 올해 ‘대한민국 100대 학교’에 선정됐다. 고양은 물론 경기서북부에서 유일하다. 100대 학교 선정보다 더 반가운 점은 아이들이 학교를 즐겁게 다니고 있다는 새로운 현실이다. 성적이 좋은 학생이나 뒤처지는 학생이나 수업에 재밌게 참여한다. 다양한 융합수업을 통해 각자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학교와 선생님은 무조건 싫은 사춘기 절정의 중2 교실에도 잠자는 학생이 없다. 도대체 어떤 수업을 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다른 걸까. 고양중학교를 찾아갔다.       이영아 발행인

 




교사들의 열정과 노력이 핵심
학교 문을 열고 교육과정을 살펴보았다. 금세 답이 보였다. 학교를 다르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교사의 헌신적인 준비와 열정이었다. 교사들은 겨울방학을 쪼개 1년 동안 학생들에게 가르칠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학년별로 주제별로 과목별로 겹겹이 모여서 교육 목표를 정하고 세밀한 수업계획까지 세운다. 어느 누구도 혼자 독단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끊임없이 토론하고 발표하고 협의하며 공동의 계획안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점은 교과서에 의존하지 않는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해보지 않은 교재와 프로그램이 탄생된다.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내는 프로그램의 맥은 두 가지이다. 모든 교육을 책읽기와 연계하고, 적게는 2과목, 많게는 6과목까지 접목되는 융합수업을 추구하는 것이다. 교사들은 맥을 잡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토론해야 한다. 학기 초, 기본 계획을 세울 때는 물론이고 매일매일 끊임없이 공유하고 협의해야 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은 후 학생들은 시인을 아이돌 가수만큼 좋아하게 됐다.

 

 

교사들 스스로의 힘, 교사도 배운다

손유록 국어교사.
"교사가 조금만 준비하면 아이들은 늘 훌륭하게 배운다."
수업이 끝난 후 바로 퇴근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수업준비와 모임, 회의가 수시로 이어진다. 교사들은 이 고된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느 학교나 꿈을 꾸지만 매번 좌절하는 이유는 교사들의 반감과 포기였다. 열정이 있는 교사 몇몇이 앞장서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하는 공동의 도전이자 실험이다. 고양중학교는 탁월한 한 명의 교장이 주도하는 혁신학교가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교사들 스스로의 힘으로 준비하고 선택한다. 교장은 늘 교사를 응원하는 자리에 서있다. 고양중학교에 새로 온 교사들은 마치 스폰지에 흡수되듯이 이 학교만의 교사 문화에 익숙해진다. 교사들은 무엇보다 자신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학생들처럼 숨겨진 재능을 발굴하기도 하고, 교사들 간에 가족보다 진한 애정이 싹트기도 한다. 고되지만 아이들이 확확 달라지는 것을 보면 신이 난다. 학교가 달라질 수 있구나, 수업이 재밌을 수 있구나, 성적을 넘어 꿈을 키워줄 수 있구나, 고양중학교 교사들은 스스로도 놀란다.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 교사들이 조금만 더 준비하면 아이들은 무한정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고 또 절감하고 있었다.

 

 

책읽기와 융합체험 교육에 집중

심지영 국어과 부장
"고양중학교에서는 성적과 관계 없이 색다른 재능을 발굴해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고양중학교 교육과정은 읽기에 초점을 맞춘다. 모든 과목은 책읽기와 연관된다. 국어시간은 아예 4시간 중 1시간을 독서교육으로 편성했다. 매주 한 시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책 카트에 책을 담아 교실에서 나누어 본다. 기존의 교육과정에서 독서교육 시간을 아예 1시간씩 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교육관계자들은 안다. 읽기 교육이 모든 교육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느 학교도 읽기 교육을 위해 과감하게 혁신하지 못하고 있다.
읽기는 단순한 읽기로 끝나지 않는다. 읽으면 꼭 질문하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읽은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단계를 거친다. 토론은 둘이 짝이 되어 묻고 답하고 가르치는 유태인식 교육방법 ‘하브루타’를 활용한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학생들은 읽기로 터득한 내용을 생각과 말로 정리하고 교류하는 과정을 통해 기대 이상의 교육효과를 얻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 다양성에 대한 인정 등이 덤으로 붙는다.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미술 체육 음악 등 모든 과목을 읽기와 연계한다. 모든 교육은 읽기로부터 시작되고 읽기는 융합적 프로그램을 통해 심화되고 체화된다.

 

동백꽃 소설 읽고 생생한 모의재판

수업시간에 각 반으로 배달되는 책 바구니를 챙기고 있는 지하정 사서.
1학년 교과에 갯벌생태교육이 있다면 갯벌에 관한 책을 읽고, 서로 질문하고 가르쳐주는 ‘하브루타’를 통해 읽은 내용을 잘 소화시킨다. 어느 정도 지식이 정리되면 갯벌 생태체험에 나선다. 갯벌 생태체험에서는 도덕과목의 미션도 주어진다. 친구 돕기, 갯벌마을 사람 돕기 등등. 체험이 끝난 후에는 갯벌신문을 만들고 전시회를 갖는다.
국어 시 수업은 시집을 읽고, 시인을 만나고, 시를 쓰고, 시화 작품을 만드는 창작까지 이어진다. 마무리는 항상 공유이다. 시 수업도 시낭송 발표회와 시화작품전시회를 갖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2016년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고 시인이 사는 공주까지 찾아갔다. 얼마 후에는 나태주 시인이 학교를 찾아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시를 깊게 느껴본 학생들은 이제 친구 생일날 시집을 선물하거나 시집을 스스로 사보는 문화적 감성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소설 수업 때는 ‘동백꽃’을 읽고 점순이의 괴롭힘에 대한 모의재판을 진행했다. 5~6명씩 한 모둠이 되어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을 각각 맡았고, 의상도 역할에 맞춰 입었다. 학생들은 몇 번이고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느낌표 하나까지 의미를 따졌고, 재판 시나리오를 썼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진짜 판사가 학교를 찾아와 토론하며 재판에 대한 의견이나 조언을 해줬다. 모의재판 후 판사와 검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생겼고, 공부에 대한 태도도 사뭇 진지해졌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 대한 모의 재판. 학생들은 재판을 준비하며 느낌표 하나에 담긴 의미까지 깊게 생각해본다.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하다. 나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응원하는 역할을 한다. 교장이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을 투자하며 헌신적으로 일한다. 학부모님들도 너무 적극적이다. 학교로 출근하신다. 동문들의 지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홍규 교장의 응원리더십은 고양중학교가 교사와 학생 중심의 혁신학교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즈의마법사 뮤지컬 창작’ 6과목 융합
영어 교과 ‘오즈의 마법사’ 편에서는 국어와 음악 미술 기술가정 도덕 등 여러 과목의 융합수업이 진행된다. ‘오즈의 마법사’를 창의적인 뮤지컬 스토리로 재구성하고 음악과 안무, 의상과 소품을 창작하며, 이야기 속의 핵심 가치를 토론하는 시간을 통해 도덕 교과를 접목시킨다. 마지막 절정은 뮤지컬 공연이다. 13차 정도의 수업을 진행한 후 각 모둠별로 창작한 뮤지컬을 발표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발표는 일주일 내내 이어진다. 학생들은 누구나 공연자인 동시에 관객이다. 관객은 익숙한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고, 공연자는 무대로 내려와 다시 관객이 되어 공연을 즐긴다.

 

뮤지컬 발표회. 일주일 동안 반별로 돌아가며 공연한다.


학교 곳곳은 1년 내내 전시회가 열리고 강당과 운동장 자투리 공간에서는 공연과 발표회가 이어진다. 성적으로 우열이 갈리거나 특별히 뒤처지는 학생도 없다.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 외에 따로 해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수업과정에서 쓰고 만들고 발표하는 것들이 다 수행평가로 쌓인다.

 

학업성취도 평균 웃돌고, 국어 최고수준

문영애 학부모회 부회장과 안종순 학교 운영위원장(사진 왼쪽부터).
교과서를 뒤로 놓고 교사들 스스로 만든 창의적인 교육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부모들의 걱정도 컸다. 다른 학교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지는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매년 공개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를 보면 오히려 성적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눈에 띄게 높은 과목은 역시 국어였다.
고양중학교의 국어 학업성취도를 보면 보통학력 이상이 93.9%이다. 서울 89.1%, 경기 90.2%, 전국평균 90.1% 보다 높다. 영어 성취도는 78.4%로 서울 76.6%, 전국 74.7%보다 높다. 수학(고양중 69.0% 전국 68.2%)도 낮지 않다. 국어는 고양시 중학교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하다. 나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응원하는 역할을 한다. 교장이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시간을 투자하며 헌신적으로 일한다. 학부모님들도 너무 적극적이다. 학교로 출근하신다. 동문들의 지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1학년 오민용 학생과 김태형 학생회장(사진 왼쪽부터)
이홍규 교장의 응원리더십은 고양중학교가 교사와 학생 중심의 혁신학교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학교가 싫으면 아이들이 떠나야 하고 성적이란 잣대로 저마다의 재능까지 재단되는 현실, 소외와 반감을 엎드려 자는 것으로 풀었던 아이들이 활기차게 일어나고 있다. 교사도 학생도 좌절했던 학교에 재미와 즐거움, 행복감까지 심고 있는 고양중을 보면서 우리들의 학교도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커졌다. 보이지 않는 문제도 많겠지만, 일단 교사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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