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일산사랑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성혁 이사장

중도장애 입은 자신의 구체적 경험 토대로
장애인 위한 정보 제공과 권익 활동 펼쳐


기자의 호기심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지난 연말, 사랑의 김장 전달 행사를 펼쳤다는 보도자료와 함께 첨부한 사진 속에는 포장된 김치 상자를 가운데 두고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나란히 담겨 있었다. 당연히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김장을 전한 것이겠지 생각했지만 선입견에 의한 착각이었다. 장애인들이 직접 김장을 담가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전달했던 것. 주인공들이 궁금해 일산동구 하늘마을의 한 주상복합건물에 자리잡고 있는 일산사랑 장애인자립지원센터(이하 센터)의 문을 두드리자 휠체어를 탄 최성혁 센터장이 반가운 얼굴로 기자를 맞는다. 예측이 또 빗나갔다. 센터장이라고 해서 지긋한 나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젊고 인상도 해맑다.

사랑의 김장나눔 행사에 대해 말해달라.
비록 우리가 중증장애인들이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12월 30일 센터 가족들과 가까이에 사는 장애인 회원들이 함께 센터에 모여 김장을 담갔다. 정성으로 버무린 김장은 박스로 잘 포장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전달했다. 물론 회원 가족들이 도움을 주셔서 행사 진행이 가능했다.

일산사랑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들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사랑의 김장 김치를 담그고 있다.

센터의 가족들을 소개해달라.
센터는 2014년 6월에 문을 열었고, 2015년에 비영리민간단체등록을 했다. 현재 130여 명의 장애인 회원들이 가입돼 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은 나까지 7명인데, 사회복지사와 경리직원을 빼고는 다들 장애인들이다. 2명은 보장구 수리를 하는 기술자들이고, 2명은 외부에서 장애인들을 찾아 독려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문성원 회원, 오성훈 회원, 최성혁 센터장, 김남인 회원. (사진 뒷줄 왼쪽부터) 이명주 사회복지사, 이미선 부센터장.

센터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2011년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중도장애인이 됐다. 병원 진단서에 노동력 0%라고 표기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보장구를 판매하러 병원을 찾아 온 장애인에게 부탁을 해 일을 배웠다. 일을 하다 보니 정보와 소통 네트워크에 목말라 하는 장애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돼 보장구 판매 사업과 장애인 자립을 위한 센터를 함께 시작하게 됐다.

센터를 운영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센터 운영의 궁극적 목적은 집 안에 있는 장애인들을 세상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으로 고립돼 있는 장애인들이 세상과 접하고, 세상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펼치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일단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들려달라.
장애인이 혼자서 하기 힘든 일들, 다시 말해 나들이, 스포츠 활동, 문화활동 등을 센터가 주최해 함께 한다. 다음으로 구직이나 지원 등의 다양한 정보의 네트워크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의 권익 옹호, 권리 증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도 한다. 장애인들은 억울하거나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혼자 삭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센터 복도 벽면에는 장애인들과 함께 한 다양한 활동의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센터를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성우’라는 상호를 가지고 보장구(휠체어 등) 판매 사업을 병행하며 최소한의 센터 유지비용을 얻는다. 수익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보장구를 판매하거나 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들과의 접촉 기회를 얻는다는 면에서 장점이 많다. 장애인이 직접 찾아가 센터의 활동을 알리면 마음의 문을 수월하게 열고 회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문성원 회원이 수리 의뢰를 받은 휠체어를 손보고 있다.

고양시 장애인 현황은 여떤가.
현재 3만8000여 명이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다.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좋은 인프라를 갖춘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장애인 숫자 증가에 비해 지자체 지원을 받는 활동보조인력은 그대로라는 점이다. 장애인 기능서포트 사업의 활동보조단체가 보다 확대돼야 한다. 예전에는 선천성 장애인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교통사고, 레저활동 중의 사고 등으로 인한 중도장애인이 90%에 달한다. 중도장애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조건에서 세상과 다시 대면해야 한다. 선배 장애인들의 진정성 있는 도움과 조언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어떤 복지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장애인 정책에 대한 거대한 담론보다는 내 눈앞에 있는 장애인의 구체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주는 ‘1인칭 복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개인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고 변화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사회복지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보장구 수리 지원사업만 해도 그렇다. 현재는 보장구 업체들이 자신들이 취급하는 보장구 부품을 공급하고 수익을 얻는 수준에서 그친다. 이 사업이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하려면 단순한 수익사업을 넘어 긴급 상황 출동, 관리와 예방 정비 교육 등을 포괄하는 종합 서비스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 여건이 되면 장애인 입장에서 설계하는 제대로 된 수리지원센터를 운영해 보고 싶다.  

앞으로의 꿈을 말해달라.
아직은 센터의 역사나 규모가 일천해서 활동에 한계가 많다. 예산 지원을 받거나 인력이나 인프라가 확대되면 더 많은 회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 물론 오늘날의 환경은 예전에 비해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많이 개선됐다. 거저 된 일이 아니다. 누군가 선배 장애인이 앞장서서 장애인들의 현실을 알리고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작은 힘이지만 후배 장애인들을 위해 의미 있는 디딤돌을 놓고 싶다.

"누군가의 숨은 노력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작은 힘이지만 저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일산사랑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성혁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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