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사람이 제일 중요한 자산

일산12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김병곤 일산신협 이사장은 지역 일꾼이다. 젊은 시절 일산에서 한우를 키웠고 유통에 관심이 생겨 정육점을 열었다. 김병곤 이사장의 첫인상은 푸근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지역에서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다져진 특유의 리더십이 인상에 드러났다. 개인보다는 ‘함께 성장’하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김병곤 이사장은 젊은 시절 고양군 700여 개 정육점 관계자들의 대표인 고양시 축산기업조합장으로 당선돼 리더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지역사회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일산경찰서 지역방범위원장, 경찰발전위원 부위원장, 일산의용소방대 지역대장·연합대장 등이 그의 이력이다.

김병곤 이사장은 신념이 확실했다. "지역과의 공존과 상생으로 일산신협을 한단계 더 성장 시키겠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앞 창고에서 시작
일산신협이 태동한 일산12리는 1970년대 초반 장항리 일대(현 일산서구 후곡마을)의 이북 피난민 등 경제적 삶이 어려웠던 이주민으로 형성된 자그마한 동네였다. 고양군이 가장 가난한 마을로 선정한 3개 마을 중 하나로 지역 유지와 단체에서 지원을 받으며 보릿고개를 견뎠고, 1할의 보리채가 난무하던 동네였다.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인 마을주민 23명이 2700원을 모아 1972년 2월 23일 마을회관 앞 창고에서 신동신협(현 일산신협)을 탄생시켰다. 2700원의 공동체 출자금은 그 힘이 대단했다. 신동신협은 조합이 설립된 지 4년만인 1976년 5월 일산12리에 자체 사무실을 마련했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엔 조합원 1300여명이 자산 20억원을 조성했고, 조합원에게 필요한 생활자금을 공급하며 가난 극복을 위해 애썼다. 마을공동체의 작은 투자는 신협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기폭제가 됐다.

2000년 자산 1천억 돌파
주민들은 신협을 애지중지 아끼며 튼튼한 마을조합으로 만들어 갔다. 그 노력으로 1982년 자산 1억 원을 돌파했다. 큰 규모였다.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신협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1990년 6월 일산2동 명성터미널에 첫 지점을 개설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산에는 신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농촌마을의 도시화에 가속도가 붙었다. 1992년 일산신도시 첫 입주가 시작됐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일산신협은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된다. 신도시에 큰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하고 본점을 건축하기로 한 것. 드디어 1994년 3월 일산동구 마두동 799번지에 본점 기공식을 가졌다. 1년 8개월의 공사 끝에 1995년 11월 본점이 준공 됐다. 신동신협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 18년 만에 이룬 값진 결실이었고, 2000년 자산 1000억원을 돌파한다.

다양한 경험으로 신협 이사장 당선
현재 1만2000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일산신협은 신도시와 함께 성장했다. 김 이사장은 1985년 일산신협 홍보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때부터 신협을 제대로 알아가기 시작했고 신협인으로서 조직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이후 홍보위원을 거쳐 여신위원과 부이사장도 역임했다. 일 욕심이 컸던 김 이사장은 지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업무능력을 키워나갔다.

이사장 대행을 하면서 조직의 장점과 약점, 지역에서의 역할을 보았다. 하지만 신협은 그 당시 안팎으로 위기감이 컸다. 제1금융권의 대중적인 마케팅은 고객들의 발길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이사장에 도전하게 된다. “신협이라는 큰 배가 변화해야 한다는 열망이 저를 이사장으로 이끈 겁니다. 방향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며 당시 도전을 회상했다.
실무적 경험은 2010년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데 결정적 배경이 됐다. 조합원 번호 644번 김병곤은 2010년 2월 25일 35차 정기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제18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오랫동안 신협의 실무를 경험한 그의 업무능력이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직원들의 활약과 노력에 힘입어 이사장직에 대한 부담이 확 줄었다”며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한없이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산동구 마두동에 위치한 일산신협. 사진은 본점 창구.

더욱 단단한 신협 위해 조직 슬림화
일산신협은 성장의 길목에서 어려움도 겪었다. 더 튼튼한 신협을 만들기 위해 조직과 업무를 단순화 시켜야 했다. 큰 배당금보다는 안정적인 배당을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 했다. “정말 훌륭한 직원들이었는데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미안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조직의 슬림화가 일산신협 성장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직원들이 스스로를 희생했을 때 정말 고마웠습니다”라며 함께해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인연은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닌가보다. 김병곤 이사장은 구조조정 이후 고통을 같이 한 용기 있는 직원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탄탄하게 신협을 성장시킨 주역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사람이 최고의 자산
김병곤 이사장은 안정적 성장이라는 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익구조의 다양성을 고민했다.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수익구조를 확대하는 데 제일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이 최고다’란 생각에 조직원 교육에 투자를 했다. 두 번째로 조합원들과 임직원들에게 경영환경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함께 대안을 마련하는 열린 경영을 펼쳤다.
또한 이사 등이 임원 추천에 관여하지 않고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임원진이 구성되도록 했다. 세 번째로 대외적인 활동과 행사보다는 조직의 내실화에 주력했다. 동기부여를 통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했다. 그는 “가슴 아픈 구조조정이 었지만 조직 슬림화와 투명경영으로 내부가 더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성장을 통한 지역 나눔으로 기쁨 두 배
일산신협의 성장과 지역나눔은 언제나 함께였다. 장학금 수여와 어려운 이웃돕기는 물론 각종 문화 행사에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있다. 신협의 수익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지역민들이자 조합원들이기에 지역복지를 더 확대했다. 고양이라는 지역사회에서의 점진적인 나눔은 조합원들에도 큰 자부심을 안겼다. 김병곤 이사장은 “앞으로도 일산신협은 수익과 환원의 공존으로 지역사회의 든든한 금융 버팀목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산신협의 45년 역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큰 변화와 아픔 속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했고 내일을 위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일산신협이 상록수처럼 푸르른 토종 금융기관으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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