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 인문학자 ‘행복한 책방’에서 강연

 

인문학자 김경집씨가 대화동 '행복한 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고양신문]‘삶에서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인문학자 김경집씨가 대화동 ‘행복한 책방(대표 한상수)'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인문학을 통해 꿈꾸는 새로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열강을 펼친 김경집씨는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다 마음껏 글을 쓰고 세상과 소통하며 문화운동을 펼치기 위해 학교를 떠난 후 『인문학은 밥이다』, 『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등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고양에 거주하는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건강의 위기를 넘기고 최근 미래의 가치를 구현하는 실천과 대안을 담은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골든타임』이라는 책을 출간하며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출판도시 인문학당에서 진행하는 ‘책방과 함께 하는 강연’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강연에는 봄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40여 명의 청중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강연 내용의 일부를 요약해 소개한다.

우리의 삶이 정말 행복한가?

보통 사람들은 군사정권에서 그나마 잘 한 일이 그린벨트 정책으로 대변되는 산림녹화 사업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 땅의 산이 푸르러진 것은 녹화정책 때문이 아니라, 목재 연료가 화석 연료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간과하고 결과만을 왜곡하지 말자.
그린벨트 문제도 그렇다. 그게 필요하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린벨트에 사는 이들은 경제적 약자가 됐다. 다수가 강자의 논리로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언제까지 당연시 해야 하나? 그린벨트가 필요하다면 비용을 지불하고 녹지를 공공재로 만들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행복한가? 대개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하며 자족하고 살지만,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어릴 적 내가 꿈꿨던 삶인지를 솔직하게 물어야 한다. 더 이상 ‘의무의 삶’을 살지 말고 ‘권리의 삶’을 좀 누리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소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데, 현실이 아프고 외로워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잃어버린 맑고 순수하고 따뜻한 정서가 어린왕자에겐 있으니까 ‘예전엔 나도 그랬지’ 하는 회고의 대상으로 적합한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을 떠올려보자.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물론 연령으로서의 ‘어린 왕자’는 못 돌아온다. 하지만 내 안의 순수한 ‘작은 왕자’는 언제든 품고 살 수 있다.

현대는 ‘각자도생’의 시대

오늘날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말하면 ‘각자도생’의 시대다. 교류와 소통은 끊어진 지 오래고 각자 알아서 생존해야 한다. 문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대 사이에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20세기는 속도와 효율이 존중받는 시절이었다. 교육은 너무도 정확하게 그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가진 인간을 길러냈다.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는 생각을 깊이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21세기는 코디네이션과 큐레이션이 중요해졌다. 다양한 정보 중 필요한 것들을 끄집어내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당연히 교육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먹방의 유행이 슬픈 이유

청년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살펴보자. 매일 7명의 청년들이 자살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위로와 공감의 능력이 우리에겐 결여됐다. 40~50대 세대들은 안정된 직장을 찾을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다. 그러한 까닭에 불행히도 기성세대는 현재 젊은이들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한다.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 청춘이 사랑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다는 말과 동일하다. 짐승도 짝짓기를 하는데 우리의 자녀들이 짝짓기를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내 아이는 예외이겠거니 하며 살면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청년들에게 미래를 돌려줘야 한다.

인간에게는 본능적 욕망과 의지적 욕망이 있다. 행복과 명예는 의지적 욕망이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의지적 욕망을 강제로 거세당하고 있다. 빚쟁이가 되어 세상에 나오고, 이력서를 수백 통 넣어도 연락이 한 건도 안 오는 현실을 살며 어떻게 의지적 욕망을 유지하겠는가.
방송에서 채널을 돌릴 때마다 먹방이나 노래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최저 생계비를 벌고, 친구도 안 만나며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가능한 욕망은 의지적 욕망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식욕밖에 없어서다. 노래는 최소한의 사치스런 디저트일 뿐이다.

먹방에 대해 한 가지만 더 짚어보자. 방송계를 휩쓴 먹방의 주역인 B모씨를 보면 분노가 인다.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누군가? 음식평론가도, 식품영양학자도, 요리사도 아니라 프랜차이즈 외식사업자다. 그런데 어떻게 방송이라는 공공재에서 특정 사업자를 끊임없이 홍보해 주는가? 자신의 식당을 알릴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망해 넘어지는 이 땅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적 정의의 문제는 이렇듯 아주 가깝고도 전방위적이다.  

성찰 결여되면 고통의 원인 진단 못해

우리는 20년 전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불행히도 각자도생의 생존 원리를 내면화해버렸다. 당시 습관을 바꿔 성공을 쟁취하자는 자기계발서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모두들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그런 책들을 사 봤다. 하지만 결과가 뭔가? 숨가쁘게 책이 요구하는 덕목들을 실천했는데 정말 사는 게 나아졌나? 오히려 사회는 더 불안정해졌고 공허는 더 커졌다.

이유가 뭘까. ‘성찰’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고통의 원인이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성찰해야 사회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더 이상 개인 탓을 그만두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고쳐야 한다.        

독서 통해 생각의 근육 키워야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책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오랜 기간을 투자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폭이 있고, 깊이가 있고,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의 호흡이 있다. 며칠만 읽으면 그게 당신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곧바로 전문가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첨단 정보가 담기는 ‘저널’을 이해하는 힘을 독서가 길러준다.

책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사유의 근육을 키우는 실용적인 노하우를 제시하겠다. 특정 기간을 둘로 나눠 상반기에는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 하나를 골라 5권에서 10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보자. 눈이 트이고 독서와 사유의 근육이 생긴다.
하반기에는 평소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억지로라도 읽어보자. 생각보다 재밌을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과학책 같은 분야도 아주 섹시하다. 낯선 분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 사고의 영역이 확장되는 쾌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좋아하는 분야는 전문화하고,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분야로 조금씩 외연을 확대하길 권한다.   

 

 

‘나’를 넘어 ‘우리’로의 연대를 모색하자

다음 세대를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뭘 해야 하나? 사고의 혁명이 필요하다. 이제 집단 지성의 힘에 주목해야 한다. 강요와 반복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발표체험과 감상체험을 교차하면서 ‘나’와 ‘친구’를 연결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윤석중이 노랫말을 만든 ‘옹달샘’이라는 동요를 소재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노랫말 속 토끼가 어른 토끼일까, 어린 토끼일까를 질문했다. 새벽에 일어나는 걸 보면 새벽잠 없는 어른 토끼인 것도 같고, 눈 비비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어린 토끼인 것도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 젊은이가 손을 번쩍 들고 자기는 청소년 토끼인 것 같다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세수를 하러 온 것 아니겠냐는 거다. 그 청년을 만나기 전까진 그 생각을 전혀 못 해 봤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만나면 이렇듯 생각의 지평이 한없이 넓어진다.   

토끼가 왜 세수를 안 하고 갔을까, 라는 질문에도 어린 아이들이 기막힌 답변을 했다. “물이 더러워지면 다른 동물들이 못 먹잖아요.” 그렇다. 아이들은 정답을 알고 있다. 내 행복이 누군가의 행복을 가로막으면 그것은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이게 연대의 시작이다. 나를 넘어 ‘우리’로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대의 방법을 모색하자.

그 중 하나로 제시하고픈 운동이 동네 서점을 기반으로 하는 ‘책 선물 펀딩’이다. 내가 기부한 돈으로 마련된 책을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다. 그 책을 읽은 누군가가 다시 이름 모를 누군가를 위해 다시 기부를 하는 순환이 일어나면 좋겠다. 책의 향기와 사람의 향기가 나는 운동을, 비 오는 밤 일산 대화동의 한 작은 동네책방이 발원지가 되고, 여기 모인 여러분이 기원이 되어 시작해보면 어떨까. 

 

김경집 작가가 집필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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